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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진 May 22. 2022

밥 짓는 맘, 시 짓는 맘

 밥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생에 대한 건한 의지를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밥만 짓던 사람이 시도 짓기 시작하면 왜 갑자기 자서전이 쓰고 싶어지는 걸까? 삶이 보이는 걸까? 아니면 그 사이 성긴 어떤 틈새가 느껴지는 걸까?

 엄마다, 밥과 시, 그리고 자서전과 틈새 이야기는.




 십여 년 전쯤부터 엄마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예창작반에 꼬박꼬박 출석하기 시작하셨다. 이미 칠십 대 중반을 넘기신 연세셨다. 한 군데도 아니고 두 군데를 동시에 열심히 다니셨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밥보다 더 정성스럽게, 더 자주 시를 지으셨다. 그렇게 몇 년을 시를 짓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집도 내시더니 엄마는 문득 자서전이 쓰고 싶어 지셨다. 그리고 선전포고라도 하듯 자식들에게 자서전을 쓰고 있다고 모인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걸 책으로 내고 싶다고도 하셨다. 엄마 집에 들를 때마다 일하는 학원에서 뭉텅이로 나오는 이면지를 갖다 드리면 엄마는 거기에 당신의 이야기를 상을 펴고 앉아 끈기 있게 써 나가셨다.


 우리 자식들은 불안했고 불편했다, 유난스럽고 슬프며 짠내 가득한 가족사가 활자화되어 세상에 나온다는 사실이. 우린 응원을 하기보다 어떤 식으로 자신에 관한 챕터들이 엄마에 의해 묘사되고 전개되었을지 은근하게 촉각을 곤두세웠으며 저러시다 마시겠지, 하는 맘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꿋꿋하게 쓰셨고 마침내 꽤 많은 분량으로 원하는 이야기를 다 담아내셨다. 자식들에게 난 다 썼으니 너희 몫이라는 뉘앙스로 탈고 소식을 돌아가면서 전화로 알리셨다.

 그야말로 이제 식구 중 누군가는 엄마의 손글씨 원고를 윤문하고 타이핑해야 할 차례였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게 폭탄 돌리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다들 바쁘단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던 어느날 엄마는 최후통첩처럼 선언하셨다. 다니는 문예반에 책 내주는 사람이 있으니 그이한테 원고를 죄다 갖다 맡겨서 얼마가 들더라도 책을 내겠노라고. 그제야 우린 맘이 바빠졌다. 정제되지 않은 엄마와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을 원고가 낯선 사람에게 가장 먼저 읽히고 편집이 된다는 사실이 나를 포함한 자식들에겐 재앙처럼 느껴졌다. 결국 막내 누나가 타이핑을 하기로 하면서 엄마의 이야기는 안전하게 당분간 가족 안에서 필터링을 거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됐다.




 누나가 작업을 끝마치기까지 또 일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구성이나 내용의 변경 없이 비문과 오탈자만 바로잡고 타이핑만 끝낸 원고가 파일로 단톡방에서 공유되었다.

 완성된 엄마의 원고를 읽은 우리들의 반응은 대체로 허탈함이었다. 내용의 거의 삼분의 이는 부유하고 사랑 듬뿍 받던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아빠에게 시집온 뒤 한동안 계속된 고난의 시집살이 이야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아빠가 돌아가시고 서울에서 고생하셨던 이야기와 7남매를 키우면서 겪은 영광과 좌절의 순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간간이 들어 있긴 했지만 분량은 우리들의 우려가 무색할 만큼 미미했다. 치부라 여길 만한 각 자식들에 대한 처절하고 슬픈 서사는 생략되거나 신앙고백으로 매끈하게 이어졌고 이야기는 결국 고난을 극복한 당신에 대한 '추앙'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다. 나를 포함해 자식 중 누구 하나 대놓고 고해(解)하진 않았지만, 자식과 남편을 추앙의 소재로 가볍게 넘기는 엄마 글의 태도가, 단단하고 거친 알맹이가 빠진 듯한 전개가 불편한 식구들의 속내가 내겐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또 엄마의 원고는 책으로 모습을 바꾸지 못하고 외면당했으며 엄마도 그즈음엔 반쯤 포기하신 듯했다. 아빠의 제사나 어버이날 가족이 모일 때면 자서전 이야기를 엄마는 한 번씩 꺼냈지만 우리들은 대충 대답하고 넘기거나 꼭 출간해야겠냐는 반문으로 엄마의 의지를 꺾었다.


 왜 우리 자식들은 엄마의 자서전에 대해 이렇게까지나 할 말이 많은 걸까. 엄마 삶의 태도에 대해 왜 이토록 공정함의 잣대를 들이대고 판단하는 것일까. 엄마가 이제 우리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왜 아직도 온전히 분리되지 못하고 엄마의 말과 글들에 이렇게 단단히 포획되어 있는 걸까. 시집 온 이후 받아보지 못한 세상으로부터의 칭찬과 상장을 단 한 번 당신의 가슴에 스스로 달아주려는 일에 대해 맘이 왜 이렇게까지 난 불편해야 할까. 아직도 우린 얽혀 풀어내지 못한 상처의 실타래들을 풀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은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엄마를 엄마이게 하는 판단과 태도들이 비록 우리 자식들이 끝내야 하는 '직면'의 과제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들, 그건 결국 어른인 우리들의 몫이며 과제여야 한다.




 어쨌든 이렇게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와 엄마의 문제를 분리하고 나니 내 안의 얽혀 있던 마디 하나쯤은 스르륵 풀려나간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작년 말 엄마의 집으로 이사 들어오기 전 덜컥 약속을 하나 했다. 늦어도 내년(2022년) 봄까지 엄마 자서전을 꼭 책으로 탈바꿈시켜 드리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읽어도 우리 자식들은 엄마의 자서전이 불편했고 세세한 묘사는 없었지만 궁색한 우리 가족의 연대기가 여전히 싫기도 했다.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제안했다, 자서전 대신 시집을 내보는 건 어떠시냐고.


 엄마는 몇 날 며칠을 고심한 끝에 그러자고 하셨고 난 지난 몇 달간 틈틈이 엄마가 추려서 건네주신 백여 편의 시를 다듬고 주제별로 묶는 작업을 했다. 엄마의 신앙고백 그리고 자신의 삶이나 자식들에 대한 짤막한 산문은 앞쪽에, 자식들이 엄마를 주제로 쓴 시와 글은 뒤쪽에 각각 배치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주 난 엄마의 시집이 세상에 나오기 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작업을 마무리한 뒤 표지 작업과 필요한 나머지 편집 작업을 해주기로 한 친구에게 원고를 넘겼다. 이제 늦어도 6월 말이면 엄마의 시집이 종이책으로 인쇄되어 우리에게 찾아올 듯하다. 형과 누나들도 시집에 대해선 큰 저항 없이 내 노고를 격려해 주고 있다.     

                     

 엄마의 시집이 어서 나왔으면 한다, 엄마를 위해서도 나와 다른 식구들을 위해서도. 바라건대 그래서 낡고 오래된 매듭을 풀어내고 엄마의 맘으로부터 넉넉하게 떨어져 나와 더 큰 각자의 바다로 나아는 출항의 퍼포먼스가 되어주길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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