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것들을 표현하기로 결심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칸 영화제 수상 소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몇몇의 지상파 방송이 텔레비전 채널의 전부라서 제한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던 과거에 비해 다양한 형태의 매체를 접하고 있으며 자기가 능동적으로 정보를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은 텔레비전을 틀면 종편 방송을 포함한 수 백개의 채널이 존재하고, 누구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거나 아프리카 TV를 이용해서 본인이 직접 콘텐츠를 기획하고 방송할 수 있는 1인 채널 시대가 되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는다면 가장 개인적인 것을 쉽게 표현하고 대중들에게 알릴 수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몇십 년 전에 예측했던 프로슈머(Prosumer)*가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가 된 것이다.
(*프로슈머(Prosumer):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ustomer)의 합성어)
나는 MBTI 성향 분석 결과에서 INFP 성향이다. 77억 인구를 겨우 16개의 성격 분류로 나눈다는 것에서부터 크게 신뢰는 가지 않지만 '나'라는 사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꼼꼼히 읽어보았다. 이 MBTI 분석표에 의하면 나는 '신념이 뚜렷하여 겉으로는 주장을 안 해도 속으로는 열정이 있'으며 '내면의 세계를 추구하여 늘 무엇을 갈구하고 추구해 나가'고, '아이디어가 많으나 실행에 잘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 나는 혼자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아성찰을 즐기는 편이지만 자신의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다. 나는 ‘개인적인’ 생각들을 혼자만 간직하고 기록하는 것에 익숙했다. 나만의 생각들을 블로그에 글을 써서 비공개로 보관했고, 혼자 카페에 앉아서 멍 때리며 떠올렸던 아이디어나 책 속의 구절을 휴대폰 메모장에 쓰고 혼자 곱씹어 보곤 했다. 나는 나만의 개인적인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표현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익숙하지 않았다. 나만의 사색의 흔적들을 평가받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다.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을 공유하고 타인과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조금 변했다. 어디서나 부끄러움을 잘 타는 소심쟁이였던 나는 요즘 들어 조금씩 나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사진과 함께 글을 쓸 수 있는 SNS인 인스타그램에 별다른 설명 없이 사진만을 올리곤 했던 나는 나만의 생각들을 10줄 정도의 짤막한 글로 담담하게 써서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영상 편집 기술을 배우고 싶었던 나는 작년 12월부터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여 나와 친구들의 일상을 찍어 올리는 브이로그를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SNS와 유튜브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모습과 나의 생각들을 보여주면서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이렇게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첫 번째 영상을 업로드하려고 마음먹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나는 매일 수많은 유튜브 영상을 소비하기만 하면서 항상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올려야 할지 정해놓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과연 내가 가진 콘텐츠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었을 때 매력적으로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자신감이 없었다. 더군다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이폰 카메라뿐이었으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려면 기본적으로 영상을 편집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영상 편집은 살면서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고 심지어 간단한 포토샵도 사용할 줄 몰랐다. 프리미어 프로, 애프터 이펙트, 파이널컷 등과 같은 영상 편집 프로그램들은 이름만 들어도 너무 어렵게 느껴졌다.
소심쟁이면서 게으름뱅이기도 한 나는 그렇게 생각만 품고 있다가 바쁜 일상에 쫓겨 어느새 시간은 1년이 흘렀다. 2019년 12월 31일, 올해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와 다가올 내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다짐하는 날, 나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를 켰다. 그 날, 고등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들과 연말 파티를 하려고 한 집에 모였고, 다른 친구들이 사진을 찍을 동안 나는 휴대폰으로 짤막한 영상을 여러 개 찍기 시작했다. 친구들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요리를 하는 모습을 찍고,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당시의 대화 소리, 움직임,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를 내 휴대폰에 담았다. 친구들과의 소중한 추억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싶었다. 나와 소중한 내 친구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만 가진 고유한 색깔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난 내 채널에 올릴 첫 번째 영상 편집을 시작했다.
영상 편집을 하려면 먼저 내가 만들 콘텐츠의 재료들을 모아야 하고,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 영상 편집 프로그램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도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며 대학교에 다니다가 군대에 가버린 동생의 컴퓨터에는 ‘프리미어 프로’라는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있었다. 먼저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영상 편집 강좌들을 기초부터 들으면서 프리미어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익혔다. 어느 정도 기본적인 방법을 익힌 나는 내가 짤막하게 찍은 영상들과 친구들이 찍은 사진들을 모두 모아서 시간별로 분류를 하고, 그것을 순서대로 프리미어 프로그램에서 나열한 뒤 컷 편집을 했다. 그리고 영상마다 자막을 넣었는데, 정말 그야말로 ‘막노동’이었다. 단 1초라도 영상과 자막의 싱크가 맞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1초 단위로 신경 써서 영상과 자막을 맞춰야 했고, 영상을 반복해서 보면서 작업해야 했다.
그리고 배경 음악 선택은 또다시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배경 음악은 저작권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저작권 상관없이 무료로 배포된 배경 음악을 사용해야 했고, 대략 몇 백 개는 되어 보이는 배경 음악 중에서 내가 직접 들으면서 상황과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골라야 했다. 자주 머리를 쥐어뜯어서 머리카락은 한 움큼 빠졌고, 삼십 분마다 깊고 긴 한숨을 내쉬었고 한 시간마다 거북목이 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자세를 고쳐 앉아야 했다. 오래전에 사용해서 어디 있는지도 까먹은 블루라이트 차단 안경을 다시 찾아서 꺼냈고, 세 시간마다 코에 눌린 안경 자국을 없애려고 콧등을 움직였고 눈 운동을 해야 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영상 편집에 매달렸고,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엄습했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내 첫 번째 영상을 만드는데 온 정성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만든 영상의 길이는 고작 11분. 일주일 동안 거의 하루 종일 매달려서 만든 시간에 비하면 결과물은 단 11분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11분 동안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기 위해 보이지 않는 몇 백배의 시간을 고민하고 노력하고 생각해야 했다. 나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아니지만 올림픽 선수들이 경기 당일 보여주는 단 몇 분의 퍼포먼스를 위해 4년 동안 인고의 시간을 버티는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유튜브를 통해서 나만의 개인적인 것들을 간직하지 않고 표현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외향적이고 활발한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표현하는 능력도 나에게는 많은 연습과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도전이었다. 나만 가지고 있는 것들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재의 나는 이 진리를 믿고 이제 행동하기로 했다. 아직 영상을 세 개 정도 업로드한 초보 유튜버에 불과하지만 나는 이 첫 시작이 시작에만 머물지 않도록 계속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싶다.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올려야 할지 고민이 많지만 '나'만이 가진 매력과 창의적인 생각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연습은 계속될 것이다.
(나의 첫 번째 유튜브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2qDXzrEljOE&t=28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