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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May 10. 2020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29살의 윤동주 시인, 29살 우리의 인생의 농도에 대하여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책날개에 쓰인 작가의 연대기를 먼저 읽는다. 연도별로 한 사람의 인생이 짧은 문장들로 나열된다. 태어난 년도, 작가가 겪은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작가가 쓴 작품들과 그것에 대한 당대의 평가, 마지막으로 갑작스러운 불치병이나 불행했던 불의의 사고로 작가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삶의 시작과 마지막이 그 작은 종이 안에서 짧게 요약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인생의 허무함이 새삼 느껴지다가도, '만약에 내 책이 만들어진다면 나는 그 안에 어떤 인생의 사건들이 기록될까?'라고 상상해 보곤 한다.  


2020년에 29살이 된 나는 4월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서점에 들러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샀다.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난 소설을 좋아했고, 시는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시집을 산 건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시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에, 시인을 많이 알지 못하며 아는 시인은 손에 꼽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윤동주 시인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감성적이고 세심한 느낌을 가지고 있어서 읽을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뭉클한 기분이 몽글몽글 샘솟는다. 내가 책을 처음 접하면 항상 그래 왔듯이 이번에도 책날개에 쓰인 윤동주 시인의 연대기를 첫 줄부터 눈으로 한 글자씩 천천히 따라 읽어본다.



1934년(18세)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한지>, <내일은 없다> 등 3편의 시 작품을 쓰다. 이는 오늘날 찾을 수 있는 윤동주 최초의 작품이다.

1936년(20세) 신사 참배 강요에 항의하여 숭실학교를 자퇴, 광명학원 중학부에 편입. 간도 연길에서 발행되던 <가톨릭 소년> 11월호에 동시 <병아리>, 12월호에 <빗자루>를 윤동주란 이름으로 발표했다.

1938년(22세) 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4월 9일 서울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 문과에 입학.

1939년(23세) 산문 '달을 쏘다', 시 '유언'을 발표.

1941년(25세)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77부 한정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43년(27세)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되고 작품, 일기가 압수되었다.

1944년(28세) 후쿠오카 형무소(복강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1945년(29세) 해방되기 여섯 달 전, 2월 16일 규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의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윤동주 시인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삶은 짧았던 만큼 강렬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일제 강점기였고 시인이 되고자 했던 윤동주 시인은 시로써 세상과 맞서 싸우고자 했다. 영화 <동주>를 보면 윤동주의 오랜 친구 송몽규가 의견을 펼치기엔 시(詩)보다는 산문이 좋다고 하자, 윤동주가 반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시도 자기 생각을 펼치기 부족하지 않아.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 있는 진실을 드러낼 때 문학은 온전하게 힘을 얻는 거고, 그 힘이 하나하나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거라고.


그런 힘이 어떻게 모이는데? 그저 세상을 바꿀 용기가 없어서 문학 속으로 숨는 것밖에 더 되니?


문학을 도구로밖에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문학을 이용해서. 예술을 팔아서. 뭐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데? 누가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켰는데?


애국주의니 민족주의니 공산주의니 그딴 이념을 위해 모든 가치를 팔아버리는 거. 그게 관습을 타파하는 일이야?



내성적인 성격의 윤동주 시인은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서 독립운동을 하기보다는 오로지 한글로만 시를 쓰면서 시대의 비극을 아파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고자 했다. 하지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할 만큼 적극적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한 독립운동에 나서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했을 것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한 윤동주 시인은 꿋꿋하게 본인의 신념을 지키면서 29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나는 올해로 29살이다. 윤동주 시인이 돌아가셨던 나이와 똑같은 나이가 되었다. 윤동주 시인의 책날개에 빼곡히 새겨진 그의 29년의 여정과 비교한다면 내 삶의 농도는 옅다. 3줄 정도로 쓸 수 있을까? 길어봐야 5줄 정도? 그리고 그 내용은 세상과 연결되어 있기보다는 나 자신의 꿈과 이기적인 욕심들,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연애사, 화려한 이름의 자격증과 각종 숫자들로 채워질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이런 세상에 태어나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했던 것을 부끄럽다 했지만, 나는 내가 29살이 될 때까지 윤동주 시인처럼 농도가 진한 인생을 살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러움을 느낀다. 누군가는 지금은 윤동주 시인이 살던 시대와는 다르게 개인의 꿈과 야망을 쫓을 수 있는 아주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동주는 그 누구보다도 정말 진한 삶을 살았기에 나는 그의 빼곡히 쓰인 29년의 삶에서 깊은 존경과 벅찬 감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




1945년 29살의 윤동주 시인과 2020년 29살의 우리들을 본다.


나는 윤동주 시인이 살지 못했던 29살 이후의 삶을 잘 살아 보고 싶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짧은 거리를 전력 질주하다가 넘어지고 다쳐버린 윤동주 시인의 바통을 이어받아 그가 살지 못했던 29살 이후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달려보고 싶다. 몇십 년 후에는 그의 책날개에 쓰인 인생의 연대기처럼 나도 내 인생의 연대기를 강렬하게 채워 넣을 수 있을까? 내가 지금 가진 옅은 인생의 농도가, 윤동주의 짧았지만 진한 인생의 농도만큼 정말 진해질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내 인생의 나머지를 살아보지 않았으니까. 그가 세상에 태어나 숨을 쉬며 실제로 살아갔던 인생은 짧았지만 그와 동시에 짧지 않았다. 6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진한 향기를 풍기며 나에게 닿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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