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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람 Jun 29. 2022

[토요고요 에세이] 독거 말고 동거

8살 어린 막내 동생과의 생활


내게는 아래로 형제가 둘 있다. 그 중 나이가 가장 어린 형제는 나보다 여덟 해 늦게 태어났지만, 지금 나보다 팔 센티미터가 크다. 그런 그녀는 작년 전부터 나와 같이 살고 있다. 물론 본가에서 십 년가량 함께 산 바 있지만 단둘이 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말과 몸으로 아웅다웅하며 자란 세 살 차 남동생과 달리, 서로 언어가 안 통하는 시기가 길었기 때문에 사이가 엄청 좋지도 않지만 나쁘지도 않게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해 돌이켜보니 우리의 관계는 굉장한 애증에서 시작되었다.


일남 이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녀는 우리와 달리 편애를 받으며 자랐다. 특히 부친은 나와 남동생을 혼낼 때 우리가 울음소리를 내면 곧장 회초리를 들었지만, 그녀의 눈에 눈물이라도 고일라치면 팔자 눈썹이 되어 본인이 잘못한 것 마냥 도로 달래기 바빴다. 또 나와 남동생보다 더 자주, 후한 용돈을 받았다. 사사건건 그녀는 예외, 열외였다. 혼나다가 울어도, 밥 먹으며 텔레비전을 봐도, 젓가락질을 마음대로 해도.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니지만 당시엔 엄청난 차별이었다. 그건 태생적으로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몹시 불평등을 느꼈던 나는 부모님이 없는 틈을 타, 좀 더 일찍 태어난 인간의 능숙함으로 그 억울함을 갚아 주었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레퍼토리는 기본, 놀이에 끼워주지 않기, 별명 만들어 부르기, 울 때까지 간지럼 태우기 등 남동생과 합세해 힘껏 놀려먹었다. 다섯 살, 여덟 살 위 형제들보다 말하는 것도 힘쓰는 것도 약한 그녀는 별다른 저항을 하지 못하고 늘 서럽게 울음만 터뜨렸다. 미안하지만 정말 많이 울렸다. 그 때문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스물 한 살이 된 그녀는 지금 ‘어떤 말을 들어도 덤덤하기’나 ‘어떻게 간지럽혀도 간지럼 타지 않기’ 대회에 나가면 일등 할 것 같은 사람이 되어있다. 물론 지금은 매우 사이가 좋다. 여덟 살 차이가 무색하게 비슷한 개그코드와 생활패턴을 가진지라 대체로 무던하고 즐겁다. 결정적으로 내가 경제력을 비롯해 전반적인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사이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녀가 집에서 주로 하는 일은 스마트폰 하기와 과제하기, 잠자기이다. 이 세 가지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다.'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느라 과제를 늦게 시작한다 - 밤을 새고 학교를 간다 - 돌아와서 잔다 - 저녁에 일어나서 밥을 먹으며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한다 - 밤늦게 과제를 시작한다' 인데 아침에도 내가 조금 더 일찍 나가기 때문에 내가 집에서 보는 건 대부분 ‘잠자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퇴근하고 현관에서 보면 다리만 보여서 약간 총 맞아 쓰러져 있는 것 같다. 나는 동생을 깨워 앉힌 뒤 밥을 차려 먹인다. 먹을 게 없으면 장을 보러 간다. 처음엔 햄이나 김, 참치캔 같은 공산품 아니면 반찬가게에서 사온 걸로 때웠지만 요즘엔 웬만하면 만들어 먹으려 한다. 반려동물에게 맨날 같은 사료만 주기보다 좀 더 건강한 재료의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반려인들의 마음을 조금 헤아리게 된다. 밥 챙기는 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가 됐다.


장을 보고 집에 오면 음악을 틀어놓고 나는 요리를 시작하고 동생은 사 온 것들을 냉장고나 찬장에 넣어 정리한다. 나는 소시지 야채볶음, 시금치 무침, 무 조림 같은 시시한 반찬들을 만들면서 생색내고, 먹으면서 또 생색낸다. ‘솔직히 너무 맛있다.’ ‘진심 반찬가게 해야 한다.’ 그리고 맨날 묻는다. ‘별점 몇점?’ 아쉽게도 충격의 김볶밥을 재현한 이후로 5점은 안 나오고 있다. 입맛 한번 냉철하다. 가만히 앉아 받아먹는 주제에 복에 겨웠다고 생각하면서도....솔직히 받고 싶다 5점.


식사가 끝나면 음악을 틀고 동생의 설거지 타임이 시작된다.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양치를 하거나 후식을 먹으며 노트북을 한다. 평일은 거의 이 패턴인데 이 정해진 패턴의 안정감이 썩 좋다. 혼자 살 땐 거의 느끼지 못했던 ‘안전한 고독’이다. 스마트폰 안에 있는 것이 아닌, 실제로 불을 켜고 소리를 내고 화장실을 함께 쓰고 잠잘 때 옆에서 코를 고는 ‘존재’라는 것이 주는. (쓰고 보니 거의 고양이와 다름없지만..) 반려동물을 들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겠지. 태워 먹으면서도 굳이 요리를 해먹고, 칭찬을 강요하고, 물소리와 섞여 들리는 음악 소리에 안심하는 것. 어쩌면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하루하루 덜 심심하게 보낼수 있다면 그걸로도 괜찮은 인생이 아닌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한다.


여전히 설거지 안 해놨다고 겁나 잔소리하고, 왜 꼭 밤늦게 불 켜고 과제하냐고 개짜증 낸다. 그렇지만 나는 이 '동거'라는 것이 퍽 마음에 든다. 행여 미래 남편이 이런 존재라면 결혼은 생각 좀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한 동시에, 남편이든 간병인이든 고양이든 그 종(種)이 무엇이 되었든 말년에는 반드시 독거보다는 동거를 해야겠다, 결정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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