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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람 Jul 12. 2022

[토요고요 에세이] 00은 사랑입니다

사랑이란 뭘까

    

‘볼따구는 사랑입니다.’ 아기의 찐빵 같은 볼살을 장난스럽게 찌부시키고 있는 인스타그램 사진에 달았던 댓글이다. 이백일 정도 된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학교 선배인데, 출산 이후 올라오는 모든 게시물은 이 볼따구가 통통한 딸에 관한 것들이다. 사랑에 대한 글을 쓰려다 문득 떠올라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다. 사랑이 별건가. 사랑은 귀여운 볼따구를 곁에서 매일 귀여워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랑’이라고 하면 으레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떠올리기 마련이다. 나도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한 번 쯤은 심오하고 철학적인 정의를 내려보고 싶지만, 절절했던 사랑의 감정은 이제 까마득하거니와 더 이상 그것에 간절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마 그런 강렬했던 감정은 사랑이라기보다 설렘, 흥분과 같은 교감신경에 가깝지 않았을까.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짝사랑하던 여자가 애인과 헤어졌다는 얘기를 듣고 심장이 뛴다는 두환의 말에 미정이 묻는다.      


“난 그 말을 이해 못 해. 심장 뛰게 좋다는 말. 

내가 심장이 막 뛸 땐 다 안 좋을 때던데. 

당황했을 때, 화났을 때, 백 미터 달리기 하기 전, 다 안 좋을 때야. 

한 번도 좋아서 심장이 뛴 적이 없어. 

정말 좋다 싶을 땐, 반대로 심장이 느리게 가는 것 같던데. 

뭔가 풀려난 것 같고.”    

  

지금 내게 떠오르는 ‘사랑’이 그렇다. 애타고, 아깝고, 막 심장이 뛰고 조바심 나는 게 아닌,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편안하고, 그리고 조그맣게 웃음이 나는 무언가다. 우리가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을 다시 그리워하게 되는 건 그 대상만이 가진 아주 사소하고도 사랑스러운 점 아니던가. 가슴을 뛰게 하는 운명 같은 상대나 인생을 던질만한 꿈과 사랑에 빠지면 좋겠지만 그런 건 일상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 작게 작게 사랑을 찾는다. ‘곱창은 사랑’, ‘주말은 사랑’, ‘연차는 사랑’. 인스타그램에만 접속해도 사랑 고백이 넘쳐 난다. 이를테면 나는 같이 살고 있는 동생이 잠에서 깨어 짓는 멍청한 표정과 그녀가 오래 입어 헐렁해진 잠옷 바지를 사랑한다. 물론 그런 사랑 뒤에는 어느 정도의 희생이 따른다. 맛있다고 소문난 곱창을 먹기 위한 기나긴 웨이팅, 인기 있는 공연에 가기 위한 살 떨리는 티켓팅, 해외로 휴가를 떠나기 위한 피나는 절약과 피곤한 야근. 나는 동생의 얼굴과 잠옷 바지를 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대신 집을 어질러 놓는 습관과 설거지를 바로 하지 않는 게으름을 참는다. 하지만 견딜 수 있는 정도다. 이건 곱창이든 사람이든 다르지 않다. 가지고 있던 마음이 바닥날 정도로 고달픈 희생을 요한다면 아무리 행복감을 준다 한들 그건 사랑이라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작고 가볍게 웃음이 나는 사랑을 많이 하고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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