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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람 Sep 16. 2022

태명을 지었다.

남편도 없고 결혼도 안 했는데.

남편도 없고 결혼도 안했고 임신도 안 했는데, 태명을 지었다.


우습게도 나는 가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이미 겪은 것처럼 글로 쓴다. 비행기 티켓도 결제하기 전에 여행책 제목 먼저 짓는다든지, 퇴사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퇴사 소식을 알리는 sns글을 쓴다든지, 사귄 지 얼마 안된 남자친구를 대입해서 혼인서약서를 써본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다. 총소리보다 총알이 빠른 것처럼, 몸보다 마음이 급해서 써내려간 이 글들은 물론 내 메모장 안에만 잠들어 있다.


자려고 침대에 누운 어느 밤이었다. 피임약 휴약 기간이었는데 복용 기간엔 유독 땡땡한 느낌이던 아랫배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아랫배에 손을 갖다대고 통통 두드리니 무언가 콩콩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맥박이겠지) 만약 이 안에 살아있는 무언가가 들어있다면 내가 이것을 무척이나 귀여워할 것 같다는 예감이 아주 짧은 순간 본능적으로 스쳐 지나갔다. 작은 편에 속하는 내 손이 다 가리는 이 자궁보다도 작다면 대략 손가락 크기만큼 작을 것인데, 그걸 귀여워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작은 것의 이름은 뭐가 좋을까. 인스타그램에서 스치듯 보았던 무수한 태명들을 떠올려봤다. 

콩콩이 찰떡이.. 귀엽긴 한데 맘에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일단 아픈데 없이 무사했으면 좋겠고,

어디서든 당당했으면 좋겠다. 무사하다..무사..너의 이름은 무사다! 


그 순간 내 삶에 대한 모든 집착과 희망과 염원들이 상상 속의 이 작은 것에게로 옮겨 가는 것이 느껴졌다. 

삶에서 끝내 건강하고 당당한 사람이고 싶은 바램이 영혼처럼 빠져 나와 

내 속에 새롭게 생성된 작은 행성에 ctrl+v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요한 밤, 작은 침대 위에 순식간에 평행 이론을 가진 두 개의 지구가 누워있었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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