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은 이미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람을 대신해서 더 정확하고 더 전문적으로 업무를 대신
하는 기계들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이미 사라져버린 직업들도 많고 그들의 번식으로 위태로운 직업군은 도처에 널려있다. 최고의 전문직으로 알고 있는 의사들도 긴장한다고 한다. 환자의 데이터를 입력하면 그에 맞는 처방을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내릴 수 있다고 하니 그럴 듯 하다. 법률계에 있는 직업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판례들이 입력된 인공지능이 사건의 해결을 보다 빨리 처리할 수 있다니 마냥 환영할 것은 아니다.
감정이 없는 그 것들이 인간의 잘잘못을 판단 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야할 우리자녀들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할 일만 같다. 무엇이든 사람이 직접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천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사람의 감정을 배제한 오판으로 희생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정확하다는 것은 또 다른 빈틈을 만든다.
4차산업 혁명에서 다른 직업군보다 늦게 사라질 것이라 믿는 것이 체육교육이라 자부한다.
그중에서도 수영이다. 왜? 사람이 직접해야하는 일이기때문이다.
때로 어떤 고객들은 우리를 교육하는 선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물에서 움직이는 방법을 가르치는 기술자로 보는 것 같다. 적어도 어린이 수영장의 지도자들은 기술자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쉬운일이라고 넘겨 짚어서는 안된다.
수영을 하기 싫다며 바닥에 드러누워 우는 아이들, 수영장에 올때 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뾰루퉁한 아이들,
한 시도 집중하지 않고 산만한 아이들, 유리 밖 바로 앞에 보이는 엄마를 보고 싶다고 우는 아이들.
수 많은 감정을 갖은 것은 말 할 필요도 없고 그 감정마저 시시각각 변한다. 그들을 다루고 수영교육에 집중시키는 것은 풍부한 자료를 내장한 인공지능 로봇이 아니다. 그 감정을 이해해주고 함께 공감해주는 사람만이 그 아이들을 위로 할 수있다. 어깨를 두드려 줄 수 있어야하고 안아 줄 수 있어야 하며 눈빛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할 수있어야 한다. 감동과 믿음의 눈빛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줄 때 아이들은 힘을 얻고 자신감을 얻는다.
생각해보라! 프로그램이 탑제된 인공지능의 하이파이브와 엄지척은 아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공감을 얻을 수도 없다. 나라면 내 아들의 수영교육을 절대 로봇에게 시키진 않을 것이다.
입사한지 6개월정도의 여선생이 겪었던 일이다. 수업이 시작되고 몇주 째 집중하지 않는 학생이 있어서 경각심을 주려 잠시 올라가서 서 있으라고 했다. 아이는 엮시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물속을 들어갔다 나왔다하며 장난을 쳤다.
아이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이 우리를 기분나쁘게 하지는 않는다. 기분 나쁘더라도 참고 넘기는 편이다. 수영도 사교육이기 때문에 벌을 주거나 체벌 같은 것은 최대한 자제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아이들을 그냥두고 진도가 나가지 않으면 선생이 못가르친다느니 아이를 방관했다느니 하며 나중에 화살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집중력이 없고 버릇 없는 아이라도 우리는 책임을 다해 물에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훈육의 필요성을 느낀 여선생은 아이의 어깨를 잡고 잘못된 행동이라고 이야기 하며 물 위로 올라가서 서 있으라고 했다. 아이는 올라가서 서 있는 것까지는 했다. 반성할 시간이 되었다고 판단 했을 때 다시 입수시켜 수업을 마쳤다. 문제는 그 다음날에 생겼다. 아이의 할머니께서 수영장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할머님은 금이야 옥이야 하는 손자가 혼났다는 사실만 듣고 오신 것 같았다. 전 후 사정을 이야기 해 드렸지만 쉽게 흥분을 내려놓지 못하시고 격상된 어조로 말씀하셨다.
<수영선생이 수영만 가르치면 됐지! 무슨 인성교육이야!!! > 근처를 지나던 선생들은 충격에 빠진듯 했다.
잠깐동안 우리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각자의 업무로 바삐 움직이던 선생들의 발걸음이 시간을 밟고 서 있었다. 선생들이 가지고 있던 자부심들을 모조리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막말>이었다.
우리를 수영을 가르치는 로보트정도로 보는 할머님의 컴플레인은 문제가 아니었다. 순간 떨어진 지도자의 사기가 더 걱정되었다. 교육하는 곳이지만 엄연히 <을>의 입장에 놓인 입장이라 언성을 높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도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씀드렸다.
<할머님 여기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인성이 좋은 선생님들만 채용을 하며 아이들이 바르게 성장 할 수 있도록 교육 하고있습니다. 수영만 가르치는 곳은 아닙니다. 저희 교육과정이 불편 하셨다면 환불 해 드리겠습니다! > 그리고는 성의 없는 사과의 말을 할머님의 주머니에 쑤셔 넣고 돌려보냈다.
모든 아이는 소중하다. 아이의 성향이 어떻든 우리를 찾아왔을 땐 교육 받을 자격이 있고 우리는 성심성의껏 지도 한다. 하지만 이번엔 문제가 달랐다. 우리 지도자의 마음을 다치게한 일이었다. 수업에 들어간 지도자를 제외하고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앞으로 같은 일이 있더라도 이번처럼 훈육하세요! 여러분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상황이 커질 것 같다면 나에게 보고만 해주세요! >
그리고는 이번 일의 당사자 선생을 불렀다. 여선생은 많이 속상해보였고 한껏 기가 죽어보였다.
<00선생님! 잘했어요! 선생님이 혼내야 했다면 그럴 이유가 있었겠지요! 속상하겠지만 오늘 털어버려요! >
그렇게 짧은 긴급회의가 끝나고 따로 여선생을 불러 위로해주었다.
우리는 수영기술만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수영을 지도하기 위해 아이들과 무수히 교감하고 모범을 보이고 신뢰를 쌓는일을 선행 하고있다.
첨단 과학은 편리성을 내세워 빠르게 우리의 것들을 빼앗아간다.
그 위태로운 세상에게 우리 아이들을 뺏기고 싶지 않다. 인공지능의 매뉴얼화 된 교육으로 부터 소중한 아이들을 지키고 싶은 것이다.
어디까지나 사람만이 해낼 수 있고 그래야만 하는 과업으로 수영교육이 건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