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즈킴 Apr 27. 2022

취미가 없어요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취미에 관해 묻곤 한다. 취미를 통해 그 사람을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취미가 특별할수록 취향이 남다르고 매력 있는 사람이라 가늠하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나는 타인에게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 왔고, 나 또한 일상에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리고 과거의 나는 취미가 꽤 많은 사람이었던 듯하다.      


제 취미는 독서예요.

글 쓰는 걸 좋아합니다.

가끔 만화를 그리곤 해요.

밴드에서 노래를 하고

공연 보는 걸 좋아해요.

음악 매거진을 운영해요.

킥복싱을 배우고 있어요.

독립영화를 보러 다녀요.

프랑스 자수를 해요.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등등등     


헌데 요즘의 나는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내가 좋아했던 활동 중 뭔가 그럴싸한 취미를 찾으려다 결국 이렇게 답하기 십상이다.     


글쎄요
요즘은 딱히 취미가 없는 것 같은데요?     



그 많던 취미는 다 어디로 갔을까? 예전에는 참 많은 것들을 배우려 하고 몰입의 기쁨을 느꼈었는데, 요즘 나는 내가 무엇에 매료되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여전히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지만 전력을 다하고 있는 건 아니다. 평일에는 퇴근 후 소파에 드러누워 넷플릭스를 보고, 주말에는 한가로이 산책을 하거나 좋아하는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편이 더 익숙하다. 한때 나는 취미가 없는 사람을 내심 매력 없는 사람이라 여겼었는데 어느새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시간의 틈에서 색채 없는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의욕이 없어졌는지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게을러진 탓도 클 테지만 스스로에게 관대해진 나 자신의 변화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취미의 사전적 어원은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게 취미란 좋아하는 일을 넘어 나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행위 자체를 온전히 즐기기보다 스스로를 이상향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도구 중 하나였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취미라 하더라도 나는 항상 잘 해내고 싶었다. 성취감을 찾으려 했다. 글을 하나 쓰더라도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싶었고, 좋아하는 음악 씬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었으며,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평론을 할 수 있길 원했다. 이처럼 취미와 자기실현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스스로를 채찍질해 온 셈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엔 ‘말하고 다닐’ 취미가 없어서 몸과 마음이 편하다. 사람의 취향은 하루아침에 변하는 게 아닌지라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음악을 듣지만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그 행위에 굳이 나를 투영하려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나는 지금에서야 진짜 취미 생활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멋진 취미를 통해 스스로를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취향을 지녔다고,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없다 해도 그런대로 괜찮은 삶을 누리고 있다고. 좋아하는 걸 다 잘할 필요는 없다고 깨달으면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길 장애인단체 시위를 바라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