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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Apr 21. 2022

출근길 장애인단체 시위를 바라보며

나의 출근길 루트 중 하나는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에서 경복궁역까지 6정거장을 이동하는 일이다. 정거장은 몇 개 되지 않지만 은평구에서 서대문구까지 가는 데 가장 빠른 교통 수단이기도 해서 늘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구간 중 하나다.      


오늘 아침 8시 20분, 연신내역 플랫폼을 향하는데 평소와는 다른 번잡함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훨씬 길게 늘어선 줄, 출구를 향해 뛰어가는 사람들, 여기저기 지각을 알리는 목소리. 열차에 타고도 한참을 출발하지 않는 상황을 지켜보며 3호선 경복궁역에서 장애인단체 시위가 재개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장애인단체 출근길 시위는 최근 몇 달에 걸쳐 이어지고 있었던 터라 나는 대수롭지 않게 약간의 지각을 예상하며 열차 출발을 기다렸다. 하지만 출발이 20분 넘게 지연되면서 점점 마음이 조급해져 왔다.


그 사이 많은 이들이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지하철을 빠져나갔고 덕분에 택시를 잡는 일도 불가능해 보였다. 회사 팀원 중 하나는 교대역에서 이도저도 못한 채 40분째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열차는 8시 50분이 되어서야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경복궁역에 닿았을 때는 이미 9시가 한참 넘은 시각이었다.


결국 30분이나 지각을 하고 말았는데 옆자리 차장이 물어왔다.  

   

그래서 대체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뭐래요?     


나 역시 장애인 이동권 보장 외에는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없어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고, 시위로 인한 불편만 호소했을 뿐 정작 무엇이 사안인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못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왜 저들은 시민들의 원성을 사면서까지 처절하게 시위를 하는 걸까? 당장 오늘 시위 현장에서만 해도 침을 뱉거나 욕설을 퍼붓는 시민들이 있었다는데 오히려 이와 같은 극단적 퍼포먼스가 대중의 반감만 사는 건 아닐까?   

  

이들이 요구하는 장애인 정책의 핵심은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과 탈시설 권리를 위한 내년도 예산 편성이다. 최근 인수위가 발표한 장애인 정책만으로는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시민권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장애인 활동지원예산 편성 및 장애인평생교육법 통과 등도 주요 사안이다.  

    

이들의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장애인 단체가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죄 없는 시민들을 볼모로 삼고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나 역시 지하철 이용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미치는 이 시위가 달갑지만은 않다. 굳이 출퇴근 길에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시위를 이어가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이토록 뜨겁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던가.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은 절대적인 소수자, 어쩌면 투명인간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 수는 250만 명 이상으로 인구의 5%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장애인과 일상을 공유하는 시간은 우리 삶의 5%도 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계는 장애인을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우하는가? 시위 목적이 아니더라도 장애인이 출퇴근길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한다면 우리는 과연 우호적 태도로 그들의 속도를 인내하고 배려할 것인가?      


이번 출근길 시위로 장애인을 위한 정책이 갑자기 확대되거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리라 기대하는 것은 이상적인 바람에 불과하다. 오히려 반발심과 혐오감만 더 커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투명인간처럼 보이지 않던 그들의 삶과 존재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불편한 시위'는 충분히 그 값을 치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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