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언론고시’를 준비한 적이 있다. 사회 정의를 구현한다거나, 어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언론인이 되려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소수자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작게나마 기여하고 싶었다.
기자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어느 정도 필력에 자신이 있었고, 내가 관심 있는 분야들도 명확했다. 그래서 미래의 언론인으로서 내 가치를 알아봐주는 곳이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었다. 글을 잘 쓴다고 해서 훌륭한 언론인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론이란 세상을 비추는 창이기에, 펜을 든 기자가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몇 가지에만 몰두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당시 나는 최종면접에서 더러 낙방했었다. 차라리 필기시험이나 취재실습과 같은 전형에서 일찌감치 떨어졌더라면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하고 진작 포기했을 텐데. 자꾸 고지를 앞두고 미끄러지다 보니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오기가 생겼다. 물론 내 역량 부족이 가장 큰 탈락 사유였겠지만,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의 노력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차별’을 많이 당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했던 낙방의 이유
나는 대학 졸업 후 이것저것 고민하던 끝에 언론사에 입사하기로 했다. 이상만 있을 뿐 언론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27살에 대학원에 진학해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본격적으로 언론사에 지원을 시작한 때는 28살 무렵부터였다. 언론 취준생의 생활은 서른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언론고시를 준비한 마지막 해였던 2014년 무렵에는 거의 모든 시험에서 최종면접까지 올라갔다. 나는 내가 준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면접에서는 언론인의 자질과는 관계없는 질문들이 나를 폭격하곤 했다. 그때 면접관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공격 중 하나는 “나이가 너무 많다”는 거였다.
확인 사살을 당한 적도 있다. 한 일간지에 지원했을 때, 나는 스스로도 최종면접을 흡족하게 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김없이 탈락했다. 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당시 그 회사의 편집국장은 마침 여성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 내어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모든 전형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은데, 무엇이 탈락의 요인이었는지. 조언을 해준다면 이를 발판 삼아 나의 부족한 점을 고쳐보겠다고 말이다.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고맙게도 그는 나에게 회신해줬다. 거기에는 뜻밖의 대답이 있었다.
작문과 같은 필기점수는 좋았는데 면접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았네요. 저는 7명의 면접관 중 한 사람이기 때문에 면접 결과에 대해 뭐라고 평가하긴 어려울 거 같아요. 다만 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여성 면접대상자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것이 나이가 많은 임원들에는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드네요.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에 겁먹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에게 맞는 ‘때’가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대학 졸업을 늦게 한다거나 취직을 늦게 한다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를 지적하는 면접관들의 공격이 잦아질수록, 나의 도전이 실패로 이어질수록, 스스로의 나이를 부끄러워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런 내 자신이 싫었다.
스스로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것 중 또 하나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곳에서, 특히 언론계에서는 남성을 선호한다. 한 방송사 최종면접에서는 나를 포함한 여성 수험생 2명, 남성 수험생 2명이 올라갔는데 결국 최종 합격은 남성 두 명에게 돌아갔다. 이 밖에도 면접까지 올라오는 여성 수험생과 남성 수험생의 비율은 보통은 8대2, 심하면 9대1인데 정작 합격자 다수가 남성인 경우는 당연한 것처럼 많았다. 나는 이 세계에서는 남성이라는 사실이 곧 ‘능력’임을 깨달았다.
31살이 되던 해, 나는 주류 매체를 통한 언론인이 되기를 포기했고, 내게 손 내민 또 다른 곳에 둥지를 텄다. 애초에 내가 갈구했던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글쓰기란 굳이 언론사가 아니더라도 가능할 테니까. 물론 ‘나이’와 ‘여성’이 내 언론고시 실패의 주된 이유는 아닐 것이다. 나이가 많건, 여자건, 내게 남들과 다른 경쟁력이 있었다면 합격하지 않았을까? 수많은 늦깎이 신입들과 여성 언론인이 이러한 차별 속에서도 꿋꿋이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것처럼. 그럼에도 꿈을 이루기 위해 앞만 보고 노력하던 그 때, 내가 경험했던 일련의 모욕감과 무력감은 여성으로서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30대의 무게에 대해서도.
왜 이 사회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리도 많은가?
취준생의 고비는 넘겼지만 30대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것 역시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취업 과정에서 뿐 만 아니라 직장에서도 ‘나이’와 ‘여성’과 관한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예컨대 “나이가 그렇게 많은데 언제 결혼할 거냐”라는 질문부터 “여자치고 참 의견이 많다”, “요즘 살쪘네?” 따위의 남성 상사의 헛소리를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여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억압도 심각한 문제다. 직장과 가정의 눈치를 모두 보아야 하는 워킹맘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이라면 함부로 언급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30대가 되면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고, 나만의 보금자리가 생길 줄 알았는데. 혹은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들처럼 화려한 삶을 살 것 같았는데. 왜 아직도 우리의 삶은 이렇게 고단한 걸까? 남들은 모두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왜 아직도 사춘기 소녀처럼 불안하기만 한 걸까? 왜 이 사회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이 이리도 많은가?
이 시리즈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문득 나와 같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30대 여성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들의 삶 자체가 궁금했다. 모두 잘 살고 있는지.
이 시리즈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의 보통 여성들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능한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을 섭외하고자 했다.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위로가 되고, 때로는 각자의 삶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시리즈 제목 ‘80년대생 미즈킴씨’는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차용했다.
여성생활미디어 '핀치'에 연재한 시리즈로 허락을 구해 브런치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 : 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