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즈킴 Nov 11. 2021

80년대생 미즈킴씨 5. 34세 송은주씨

저는 서울에 사는 송은주입니다. 여의도에 있는 금융회사의 브랜드팀에서 광고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현재 하고 있는 일


어떻게 하면 우리 회사와 제품이 ‘필요한 순간’에, ‘긍정적으로’, ‘가장 먼저’ 고객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을지 고민하는 브랜딩 담당자로 일하고 있어요. 신상품이 나오면 상품명을 정하고, 카피를 쓰는 일에서부터 광고를 제작하고 매체 효율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업무 특성상 모든 결과물이 나의 머릿속에서 나와야 해요. 그래서 무릎을 탁! 치는 찰나와 같은 환희의 순간을 위해, 매일 매 순간 머리를 쥐어 뜯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왜 이 일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정확하게는 이 회사가 저를 ‘선택’해주었죠. 저는 이 조직 내에서 9년째 적성을 ‘찾는 중’ 입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더 이상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음을 깨달았어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기를 꿈꾸며 수많은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냈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데 대한 자부심이 있었는데, 사회는 녹록치 않은 곳이더군요. 70곳 넘게 우수수 떨어지다, 마침내 첫 합격의 기쁨을 경험했어요. 그게 지금 제가 일하는, 저를 선택해 준 이 회사였어요.


그 날부터 지금까지 회사 내에서 적성에 맞고 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야나 업무가 무엇일지 고민하며 찾고 있어요. 저희 회사는 일정 근속년수가 되면 자유의지로 어렵지 않게 부서를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제도를 활용해 영업팀에서 제휴마케팅팀으로, 그리고 지금의 브랜드 부문으로 옮겨왔습니다.


특히 이번에 브랜드로 이동한 건 ‘업무에 대한 호기심’과 ‘워라밸 개선’ 이라는 명확한 이유 때문이에요. 다행히 이 두 가지는 꽤 괜찮은 수준으로 충족되고 있지만, 일 자체가 적성에 맞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대기업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느끼는 한계점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결국 저의 개인적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보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판단일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그만큼 조심스러운 주제이지만 솔직한 생각을 말해볼게요.


대기업 내 여성의 노동 환경이 점점 나아지는 것은 맞아요. 이와 동시에 한계 역시 여전히 견고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속한 조직은 여성비율도 높고, 남녀차별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 적용할 수 있는 엄격한 사규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사평가 때면 “너는 여자고 결혼도 안 했으니, 올해 평가는 미안하지만 양보하자”와 같은 얘기를 들어야 하고, 승진 시즌에는 “저 여자, 육아휴직 쓰고 왔는데 운도 좋게 진급했네” 와 같은 대화가 공공연히 오가죠. “팀 막내는 이래서 남자여야 해” 라는 식의 평가가 아무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똑같이 성과로 인정받았음에도 남자임원은 '임원'인데 여자는 '여성임원'이라는 이상한 카테고리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다행히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성차별’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덕에 체감 상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의 생각이나 인식은 아직 갈 길이 멀지 않을까 싶네요.


“내가 이렇게 일하면서 살 줄 몰랐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나요?


대학생이 되어 넓은 세상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나의 세계’가 얼마나 작았는지를 깨달았어요. 그래서 무조건 무엇이든지 직접 경험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 때부터 공모전, 봉사활동, 인턴십, 교환학생 등 대학생이 지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 도전하며 정말 바쁜 20대를 보냈어요.


그렇게 졸업을 하고 ‘회사원’으로서 사회에 발을 내딛었는데, 이 회사라는 곳은 정말 묘하더군요.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열정적이지도, 발전적이지도, 그다지 즐겁지도 않았어요. 매일 반복되는 야근, 성과주의 문화, 상사 스트레스 탓에 괴로운 날들이 늘어갔고, 늘 몸 어딘가가 아프고 하루 종일 화가 나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어느 날엔가는 그날 하루 동안 제가 내뱉은 나쁜 말을 메모장에 쭉 적어봤는데, 충격 그 자체였죠. 하루 종일 욕을 해서 결국 반나절도 적지 못하고 포기했어요.(웃음) 어린 시절 저는 장래희망 ‘선생님’을 꿈꾸는 아이였고, 어른이 된 후로는 ‘제 나이에 알맞은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회사원이 된 저는 ‘울상’이었어요.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순 없으니, 빨리 털고 잊고 극복하는 방법을 마련하자는 생각에서 그 때부터 저만의 스트레스 해소 장치를 다양하게 만들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어, 포스트잇에 잔뜩 적고 구겨버리기, 집에 오는 길에 빨맥(빨대로 맥주마시기)하기, ‘I don’t care’ 무한 반복 듣기, 명상하기 등이 저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랍니다.


내 인생 최대의 일탈


정말 어려운 질문인데요. 골똘히 생각해봐도 ‘일탈’이라 부를만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너무 모범생같이 살았나 봐요. 제가 말하면서도 정말 재미없지만, 특정 순간을 기준으로 본다면 ‘수능을 앞두고 친구들이랑 조마조마하면서 한 잔씩 돌려 마신 백일주’ 정도가 제 인생 최대의 일탈 같네요.


결혼 2년차


사실 아이를 가지는 일이 현재 저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에요. 최근 남편과 임신과 육아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어요. 임신 준비를 위해 엄마가 된 친구들이 ‘최소한의 준비사항’ 이라며 알려준대로 보건소도 다녀오고, 예방접종도 했고요. 올해 초부터는 엽산도 꾸준히 먹고 있어요.


임신, 출산, 육아는 나이가 들수록 조심스러워지는 난이도 최상의 선택적 인생 과업인 것 같아요. ‘부모’라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이에 맞는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가짐’을 바로 갖는 과정이 꼭 필요겠더라고요.


처음에는 ‘가족 공동체’ 시선에서 “부모란 무엇일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와 같은 질문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엄마가 되어서도 지금처럼 내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을까?” “출산을 하고 나면 몸이 많이 상한다는데 나는 괜찮을까?”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빠듯하진 않을까” 하는 ‘나’를 중심에 둔 현실적 고민이 훅 들어오더라고요. 이 질문들은 먼 훗날 아이가 보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요.


30대 중반은 ‘아 모르겠고, 일단 낳아보자’ 하기는 쉽지 않은 나이 같아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느껴요. 부모님은 그거 다 핑계라 하시겠지만, 지금껏 이 결정을 차일피일 미뤄온 건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는 중이고 마음을 단단히 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테죠. 아무리 준비해도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려고요.


대기업 사원, 딸, 며느리, 아내의 타이틀을 떠나
현재의 송은주씨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즘 저의 최대 고민이자 관심사는 저 자신이에요.


저는 다른 사람들 눈치를 굉장히 많이 보는 편이에요. 좋게 표현하면 ‘배려심’이지만, 그 선을 넘어서서 제 감정을 숨기고 다쳐가면서까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무리한 요구를 받아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우연한 기회로 에니어그램이라는 성격 유형 검사를 받아보았는데, 제가 제 스스로를 정말 많이 모르고 있더라고요. 사실 스스로에 대해 그리 궁금해하지도 않았고요. 남 눈치는 그렇게 보면서!


그래서 요즘은 의도적으로 제 감정을 살피고, 스스로 물어보고, 저를 진단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가 조금 더 명확해지고 선명해질 수 있게 스스로를 관찰하고 들여다보고 있어요.


나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나요?


걱정이 줄었다고 해야 할까요? 저는 흔히 말하는 ‘걱정을 사서 하는 사람’입니다. 지금도 회사 책상과 침대 머리맡에 제 걱정을 대신해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사둔 걱정 인형이 놓여 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 제 스스로에 집중하겠다 다짐하고는 걱정거리들이 조금씩 줄고 있어요.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나의 관점에서 "나는 지금 어떤 느낌이고, 어떻게 하고 싶지?"만 간단히 생각하고 마음을 정했더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생각들이 확실히 줄어들더라고요.


물론, 여전한 걱정봇이예요. 30년 넘게 굳어진 성격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직은 저만 알 수 있는 수준의 미묘한 수준의 변화이지만 제 마음이 편해지고 있음은 확실히 느껴요. 언젠가 걱정 인형들이 할 일 없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특별히 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저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라는 목적으로 보내는 시간은 특별히 없는 것 같아요. 주변을 보면 누군가는 자격증을 따고 언어를 공부하고 재테크에 시간을 투자하지만요. 그냥 오늘 생각나는 사람에게 연락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과 번개를 하고, 쉬고 싶을 때 늘어지게 쉬는 삶을 소박하고 소소하게 살고 있어요. 남편과 제가 정한 올해의 목표가 ‘잘 먹고, 열심히 놀고, 사랑하며 살자’인데 그 목표에 충실하게 살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환경문제에 관심이 생겨서 관련 책이나 전문지 등을 많이 찾아보고 있어요. 남편도 심각성을 인지하고 공감하는 주제에요. 주말마다 함께 관련 주제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저희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찾아보고 있어요. 당장은 최선을 다해 분리수거를 하는 수준이지만, 이러한 ‘꿈틀’ 수준의 작은 움직임으로도 지구에 변화를 가져오고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어요.


대한민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엄청나게 많은 타이틀을 강요 받아 버겁지만, 동시에 아주 매력적인 삶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해서 제가 만나는 30대 선후배나 친구들은 승승장구하는 커리어 우먼이면서, 지치지 않는 체력의 슈퍼맘이어야 하고, 부모와 가정을 위한 희생도 할 줄 알아야 해요. 또 아침 저녁으로 부지런히 운동해서 몸도 탄탄히 가꾸고, 자기개발도 놓쳐서는 안 되죠. 30대는 이 모든 역할이 동시다발적으로 요구되고, 역할 간의 갈등 역시 극에 달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겁고 힘든 역할 간의 관계 속에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주체적으로 ‘나’의 역할을 수행하여 진정한 ‘나’의 색을 찾는 시기인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고 매력적인 시기가 아닐 수 없죠. 그 어느 때보다 타인과 관련된 역할론이 커지는 시기이지만, 그럴수록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자라는 것 같아요.


어떤 여성으로 성장하고 싶은가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많이 고민하며 살고 있는데, ‘어떤 여성으로 성장하고 싶은지’는 놀랍게도 고민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주체적인 인간(human-being)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내 문제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내 마음의 신호를 잘 읽고, 크지는 않더라도 나의 견해를 펴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설령 인스타그램 글 한 줄이라 하더라도요.


저는 ‘민초’의 가능성을 믿어요. 각자가 ‘주체적인 자세’로 개인에게 주어진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역할(딸, 며느리, 회사원, 독자, 소비자 등)을 수행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죠. 결국 제게 어떤 ‘역할’이 주어졌을 때 이를 외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선택, 도전해서 ‘괜찮은 삶’을 살아간다면 그게 결국은 사회를 바꾸는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80년대생 미즈킴씨 4. 34세 최민영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