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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즈킴 Mar 25. 2022

80년대생 미즈킴씨 8. 34세 전지혜씨

저는 성수동에 사는 전지혜입니다. 현재 이화여대 앞에서 <책방, 생활의 지혜>를 운영하고 있어요.


이름이 지혜인데 책방 이름이
'생활의 지혜'네요.


처음 해 보는 사업이라 의미가 깊어서 제 이름을 걸고 하고 싶었어요. 원래 중의적 표현을 쓰는 걸 좋아해서 제 개인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를 ‘지혜의 생활, 생활의 지혜’이라고 적어 두곤 했었거든요. 이걸 책방 이름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엔 제 이름이 들어가서 좀 부끄럽기도 했는데, 이제 많이 익숙해졌네요.


독립책방에는 주인장만의 색깔이나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주변을 보면 독립출판물, 추리소설, 페미니즘 등 한 가지 테마의 도서만 다루는 곳들도 많은데, 저는 어떤 주제로 한정 짓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책을 얇고 넓게 읽는 타입이기도 하고요. 사실 책 자체를 안 읽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독서의 생활화’를 모토로 독서에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책, 또는 제가 읽어서 좋았던 책들 위주로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제 색깔이 된 것 같아요.


특정한 책을 정해서 사러 오는 곳이 아니라 ‘오늘 책 한번 읽어 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와서 예기치 못했던 책을 발견하거나 새로운 관심사를 만나서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을 통해 위안을 많이 받은지라, 심리와 마음 상태 등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분야 책들을 서가의 중간에 진열하긴 했어요. 근데 은근히 인기가 없더라고요. (웃음)


최근에는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도서들을 모으고 있어요. 여대 앞이라서 관련 고민을 하는 친구들도 많을 것 같고, 저 역시도 페미니즘은 알면 알수록 잘 모르겠는 부분이 생겨서 배우고 싶더라고요.


책방에서 나만의 책만들기 클래스라든지, 작가와 함께 하는 북토크, 수채화 원데이 클래스, 술빚기 클래스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네요. 단순히 책방이라기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방을 운영하기 전 회사 생활을 했는데, 그 때 뭔가 재밌는 취미 생활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당시 한 독립책방에서 진행하는 4주짜리 캘리그라피 수업을 듣게 됐는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이후 전문 캘리그라퍼 밑에서 제대로 배우면서 팀원들과 함께 전시도 하고 있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제 작업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새로운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처음부터 책방을 하려고 했다기보다, 캘리그라피 작업실이자 어른들을 위한 취미생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한 거예요. 그리고 그 작업실에 ‘내가 좋아하는 책도 많이 비치해두면 좋겠다’ 했죠. 생각해보니 그 공간이 바로 책방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곳에서 책과 함께 함께 배우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클래스들을 운영하려 하고 있어요. 물론 폐강되는 수업도 많지만 개의치 않고 하고 싶은 활동들을 최대한 진행해보려고요.


책방을 하기 전, 내가 했던 일


저는 직장 생활을 오래 했어요. 대학교에서는 의류직물학, 광고홍보학을 공부했고요. 대학 졸업학기 때부터 인턴을 했던 홍보대행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죠. 근데 이 홍보 업무라는 게 정말 말도 안 되더라고요. 보통은 9 to 6가 업무시간이지만 대행회사이다 보니 고용주보다 1시간 먼저 출근하고 새벽 2~3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그 때 정말 마음도 아팠고 몸도 안 좋았죠. 그렇게 1년 8개월을 버티고 결국 퇴사했어요.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둔 뒤에는 전공을 살려 한 의류무역회사에서 ‘테크니컬 디자이너’로 일했어요. 브랜드 패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내려주면 테크니컬 디자이너는 그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옷이 공장에서 대량생산될 수 있도록 기술적인 부분을 컨설팅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바이어와 공장 사이에서 중재를 해주는 역할도 하고요. 실질적으로 사이즈, 치수, 피팅에도 관여하고 소잉 순서나 방법, 단추나 주머니를 다는 위치 등도 제안합니다. 2D로 나온 디자인을 3D로 실제 사람이 입을 수 있도록, 또 공장에서 쉽게 생산이 가능하도록 물화하는 과정의 중심에 있는 거죠.


사실 두 번째 회사 생활은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칼퇴도 보장됐고 좋은 팀장님을 만나 사무실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거든요. 하던 일이 싫어서 그만둔 게 아니에요. 그저 너무 오래 그 일을 하다 보니 여기서는 더 배울 게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예측 가능한 삶이 재미가 없었어요. ‘9 to 6’ 동안 사무실에 갇혀서 해를 못 보는 시간도 아까웠고요. 이때까지 이렇게도 살아봤으니,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책방을 열기까지


벌써 2년 전이네요. 퇴사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어릴 때는 해외에 나가 일하며 사는 게 꿈이었던 터라, 퇴사하고 해외취업을 계획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퇴사 날짜를 앞두고 갑자기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태어난 이곳에서 정착해서 잘 살아보고 싶다는 결심이 든 거죠.


그때 아까 말한 캘리그라피를 한참 배우며 빠져있었을 때에요. 무작정 작업실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고 공간을 찾아봤어요. 작업실을 구하면 캘리그라피뿐아니라, 독서모임이나 원데이클래스 등 재미있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하면서요.


책을 읽는 것도 책방에 다니는 것도 워낙 좋아했지만, 책방을 운영한다는 생각까지 연결짓지 못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죠.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책방이잖아!'


장소를 물색하는 게 가장 큰 일이었어요. 부동산을 정말 많이 다녔어요. 자본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아현동 골짜기에서 보광동 뒷골목까지 서울 전역을 돌아다녔죠. 근데 여기다 싶은 곳이 없는 거예요. 퇴사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시간만 흘러가고 돈벌이는 마땅치 않았죠. ‘내가 무슨 사업이야’ 하면서 거의 포기 상태였어요.


그러다 이곳을 발견하게 된 거에요. 원래도 책방이었는데 전 운영자가 출산 때문에 그만두시게 된 상황이었죠. 책방 형태로 이미 뭔가 만들어진 상황이어서 결정하기가 더 쉬웠던 것 같아요. 학교를 여기 근처로 다녀서 아는 동네라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해야 하나, 마음이 편했어요. 본래 계획한 예산보다는 비쌌고 규모는 작았지만, 일단 작게라도 시작해보자 하고 덜컥 계약하게 됐어요.


책방 운영의 기쁨과 슬픔


일단 제가 간섭 받는 걸 싫어하는데, 혼자서 모든 걸 결정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해도 돼서 정말 좋아요. 이곳에서 저는 자유롭죠.


하지만 돈이 잘 안 벌리는 게 제일 힘들어요. 항상 지속가능한 책방에 대해서 고민하고 걱정해요. 다음이 없을까 봐요. 문을 연 지 1년 정도 되었는데, 현재 월세를 겨우 벌고 있거든요. 그 외 차비 정도 나오려나? 전기세랑 밥값도 안 나와요. 덕분에 회사 다닐 때 모아둔 돈이랑 퇴직금을 갉아먹고 있고요(웃음). 정 안 되면 책방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직장생활을 다시 하는 안도 고려하고 있어요.


업무 시간 이외의 일상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일상에 쫓기듯이 사는 게 아니라, 여유롭게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있어요. 아침에는 조카 육아를 도와주고, 저녁에는 주로 데이트를 하거나 운동하며 지내요. 단순하지만 하루가 단단하게 채워져 있는 느낌이에요.


캘리그라피도 꾸준히 하려고 해요. 1년에 한 번씩 팀에서 전시회를 하는데 그것도 참여했고요. 근데 제대로 취미생활을 하려면 사실 돈이 필요해요. 그런 면에서 요즘에는 삶의 질이 낮아졌다고 느끼기도 해요. 전시회에 참여하고 작품을 만드는 데도 돈이 꽤 들어가거든요. 그런 문제로 사실 전시는 안 하려고 했는데, 막상 하고 나니 뿌듯하더라고요(웃음).


요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요즘에는 글을 쓰고 있어요.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저는 제 마음 상태에 늘 관심이 많아서, 그에 대해 많이 서술하려고 해요. 그게 머릿속에서만 끝날 때가 있는데 너무 아쉬워서 생각날 때마다 제 마음 상태를 적어 두려고 해요.


결혼, 막연한 공포?


사실 부모님 외에는 결혼을 압박하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에요. 결혼 안 한 친구들도 많고요. 무엇보다 제 스스로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들 어떻게 그렇게 결혼을 잘 하는지 정말 신기해요.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와 잘 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결혼을 언제 해야 되고, 그런 마음은 어떻게 먹는 건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되게 어려워요. 막연한 공포감이 있는 것 같아요. 결혼식 자체에도 로망 같은 건 없고 오히려 공포스러워요. 그 다음에 어떻게 사느냐도 걱정이고요.


왜 결혼이 걱정으로 다가올까요?


모르는 사람들이랑 가족이 된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인 것 같아요. 시댁과의 관계도 그렇고, 남편 될 사람과 우리집과의 관계도 잘 상상이 안 돼요. 두 사람의 서로 다른 세상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엮이는 게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에요.


사실 저는 반드시 결혼을 해야 된다고 생각도 안 했고, 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서 처음으로 이 사람이랑 같이 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이 살고 싶긴 한데,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고민하고 있어요.


저와 남자친구가 생각하는 최고의 방법은 동거에요. 서로의 가족 공유는 하지 않고 개인 간의 결합만 원하는 거죠. 사실 한국에서는 동거를 한다고 해도 가족의 개입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실질적으로 결혼보다 동거가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에요.


요즘 나의 고민


부모님과의 관계에요. 사실 저희 집은 아직 외박도 쉽지 않고 심지어 통금도 있거든요. 그래서 결혼 전까지 혼자 나가 살겠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워요. 엄마는 제가 혼자 살겠다고 하면 ‘네가 뭘 할 줄 아느냐’고, ‘빨래도 혼자 다 해야 되고, 밥도 해 먹어야 한다’ 면서 걱정 어린 협박을 해요. 저를 이렇게 아이처럼 보는 게 전 정말 답답해요. 우리 세대의 부모님은 자식들을 어른으로 잘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요.


애초에 해외 취업을 꿈꿨던 것도 부모님과 떨어져야겠다는 생각에서 기인된 것 같아요. 집에서 제가 하는 일에 많이 간섭하는 건 아니지만, 같이 사는 것 자체로 제 행동에 제약이 있는 거예요. 스스로 행동을 검열하게 되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런 부분에서 다른 또래들보다 성숙하지 못한 것 같다고 느껴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독립했거나 결혼해서 살아가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다들 너무 어른 같다’, ‘다들 언제 저렇게 컸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이제 정말 부모님과 서로 졸업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실행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네요. 독립이든 결혼이든 결정할 때가 온 것 같긴 해요. 그렇다고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치듯이 결혼을 선택하고 싶진 않고요.


대한민국에서 30대 여성으로 산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제 삶에 꽤 만족해요. 20대는 너무나 치열하고 혹독하게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면, 30대는 이제 나와 잘 지내려보는 시기라고 해야 할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 마음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살고 있어서 그런 지금이 좋아요. 그래도 역시 30대 미혼 여성인 상태로 다가오는 추석에 친척들 뵈러 고향에 내려가는 건 겁이 나네요.


독자들을 위한 추천 도서

조남주 작가의 『그녀 이름은』을 추천하고 싶어요. 『82년생 김지영』만큼 화제가 되거나 알려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더 큰 울림을 주었던 작품입니다. 작가가 아홉 살 어린이부터 예순아홉의 할머니까지 육십여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28편의 소설로 묶었어요. 그래서 소설의 내용이 사실인지 소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죠. 저는 내부자의 이야기가 작가를 통해 소설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고 믿어요.


특별하지 않은 그녀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 같아서, 또 내 주변이 이야기 같아서 공감 가는 부분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저의 경험 밖에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였어요. 다른 공간, 다른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 대해서 무관심했었다는 것을 깨달았죠. 우리 여성들이 더 나은 여성의 삶에 대해서 논하려면 서로에 대해서도 더 잘 알아야 한다고 믿어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이 인터뷰가 실릴 핀치의 ‘80년대생 미즈킴씨’ 시리즈와 닮았어요. 핀치 독자분들께 특히 이 책을 추천 드리고 싶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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