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넷플릭스에서 오픈한 <더 데이스>(THE DAYS)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는 공개가 지연되면서 그 배경에 정치적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논란이 일었다. '더 데이스'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더 데이스의 뼈대가 된 건 드라마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는 '요시다 조서'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당시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 그는 당시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 소장이었다. 요시다가 일본 정부로부터 약 백일 동안 조사를 받은 기록이 일명 '요시다 조서'이다.
(요시다 소장은 2011년 7월 22일부터 11월 6일까지 '내각관방 도쿄전력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의 사고조사 검증위원회'의 조사를 받았다)
3.11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은 후쿠시마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드라마는 일주일 동안의 사고 수습 과정을 8부작의 긴 호흡으로 그려낸다.
물러설 곳이 없었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 속에 남겨진 후쿠시마 제1원전 직원들. 그들은 단순히 방치된 게 아니었다. 방사능 수치가 치솟는 곳에서 어떻게든 사고를 수습해야 하는 역할이 부여됐다. 어떤 지시가 누구에게 내려지는지로 생사가 갈렸다. 그런 와중에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 본부의 헛발질은 계속된다. 드라마에서도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소화된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다.
현장에 남아있던 직원들을 대피시키는 '의사 결정' 과정이다. 요시다 소장이 직원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스스로도 죽음을 각오하고 있다는 점을 드라마는 몇 차례 강조한다. 도쿄전력 직원들의 대피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윽박지르는 일본 총리, 도쿄전력 임원들과 설전을 벌이면서도 드라마 속 요시다는 현장에 남아 있던 많은 직원들을 버스로 대피시키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대피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요시다 조서에도 이런 내용이 언급된다.
요시다 조서의 개요를 살펴보자.
조서는 일곱 편으로 구성됐다. 글자 수는 약 50만 자. A4 용지로 사백수십 페이지의 분량이다. 일본 정부는 772명을 1479시간 동안 조사했다. 한 명당 평균 조사 시간이 두 시간 정도였지만 요시다는 28시간이었다. 매 순간 어떻게 생각했고, 어떻게 행동했는지까지 세세히 기록했다.
요시다 조서가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건 2014년 아사히신문의 '특종' 때문이다.
요시다 조서를 입수한 아사히 취재팀은 조서에서 다음 두 가지 사항을 확인했다. 취재팀은 이 지점을
'야마'로 뽑아 써야 할 부분이라고 판단한다.
사고 직후 요시다 소장이 직원들에게 현장에 남도록 대기 지시를 내렸다
직원 대부분이 10킬로미터 떨어진 제2원전으로 대피했다
이 두 가지 팩트가 아사히 기사에선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당시 원전에 남아 있던 도쿄전력 직원의 90%가 요시다의 명령에 불복해 대피했다
취재팀이 이런 판단을 내렸던 건 실제로 요시다 조서에 언급된 다음 내용 때문이다.
소내(1원전 내부)의 선량이 낮은 구역으로 대피할 것. 그 후 본부에서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돌아오도록 한다
요시다의 이 같은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원전으로 대피한 직원들이 '명령에 불복'했다는 건 조서에 등장한 팩트는 아니었다.아사히 특별보도부의 데스크였던 사메지마 히로시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해명한다.
대혼란 속에서 명령이 있었다는 걸 모르고 대피한 사람도 있었겠죠. 전체를 명령위반이라고 단언한 건 너무 나간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사메지마는 "탐사보도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100점 만점은 어려웠다. 이후 궤도수정을 해나갈 계획이었다"라고 했지만 그럴 기회는 사라졌다.
당시 아사히신문의 기무라 다다카즈 사장은 요시다 조서의 첫 보도 이후, 이 보도가 일본신문협회상의 수상작이 될 거라고 단언했다. 아사히신문의 사내 분위기는 당연히 그에 호응해야 했다. 누구도 사장의 의중을 거슬러 기사의 오류를 인정하자고 할 수 없었다. 오류를 인정하는 순간, 수상은 물 건너갈 것이기 때문이다.
아사히는 큰 비판에 직면한다.
당시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관련 기사 철회와 칼럼 게재 거부 ※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요시다 조서 보도를 향해서도 화살이 날아왔다.
※위안부 문제 기사 철회-제주도에서 여성 다수를 위안부로 강제연행했다고 밝혔던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ㆍ2000년 작고)씨의 증언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아사히가 관련 기사들을 철회. 저널리스트 이케가미 아키라의 칼럼 게재 거부 사건
결국, 기무라 사장은 해명 기자회견을 열어‘요시다 조서’ 보도가 오보라고 인정했다. 아사히신문은 홈페이지에도 "사회와 독자 여러분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 최종 책임은 최고경영자인 나에게 있다.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사임한다"는 기무라 사장 명의의 성명서를 게재했다. 취재팀의 데스크인 사메지마 씨는 해임됐고, 기자 두 명도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렇게 아사히의 요시다 조서 보도는 '역사적인 특종'이라는 평가에서 처참한 '오보'로 전락하고 만다.
자사 사장이 요시다 조서 기사의 철회와 사죄의 기자회견을 했다는 내용을 보도한 아사히신문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 소식을 호외(디지털)로 발행했다.
아사히신문의 요시다 조서 철회 기자회견에 관한 산케이신문의 호외
오보로 전락한 아사히의 '요시다 조서' 기사를 지금도 아사히신문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오보 인정과 기사의 철회, 사장의 사임까지. 엄청난 여파를 몰고 온 '오보'라고 스스로 인정했으면서도 아사히는 보도의 성과를 보여주는 것까진 포기하지 못했다. 이 모순을 통해 아사히의 보도가 갖는 의미가 적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명령을 위반하고 대피'라는 기술 등에 잘못이 있었습니다. 독자와 도쿄전력 여러분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스스로 잘못됐다고 인정한 기사를 그대로 공개한 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처리했다. 삭제한 부분에는 줄을 그었고, 새로 쓴 부분은 빨간색 글씨로 표기했다. 당시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됐는지 한눈에 알 수 있도록 했다.
아사히신문 요시다 조서 보도 첫 페이지. 사죄의 글이 실려 있다.
아사히는 요시다 조서 기사에 썼던 '명령'이란 단어를 모두 삭제했다.
아래 기사 이미지에서 두 번째 수정 부분인 '명령에 반해서'는 '지시와는 별도로'로 수정했다. 현재는 삭제된 것으로 표시된 마지막 줄엔 '일부라고는 하지만 GM까지도 후쿠시마 제2원전으로 가버린 것에는 요시다도 놀랐다"라고 쓰여 있었다. GM은 부.과장급 간부 사원을 뜻한다.
요시다 조서 기사 일부 캡처. 첨삭된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아사히는 직원들이 명령을 위반하고 달아난 것처럼 강조했던 부분을 모두 수정했다.
사고 책임을 절대 피할 수 없는 도쿄전력이었다. 하지만 그 책임의 무게보다는 아사히의 어긋난 초점에 비판이 집중됐다. 이미 참사로부터 3년이 넘은 시점이기도 했다. 아사히는 살고자 했던 인간의 생존 본능을 너무 쉽게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던 걸까? 아사히의 '요시다 조서'보도의 파장에는 일본 사회의 기질과 특수성이 작용했다. 같은 구도의 사건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면 그 결과는 상당히 다르지 않았을까?
특종인가, 오보인가?
아사히의 요시다 조서 보도가 아니었다면 일본 정부가 조서를 공개할 일도 없었고, '더 데이스' 같은 드라마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아사히신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언론이 문서의 존재를 보도했을 가능성은 있다. 일본 정부는 아사히신문의 특종 이후 언론에서 요시다 조서 보도가 잇따르자 2014년 9월 11일 내각관방 홈페이지에 요시다 조서를 공개했다.
고 요시다 마사오 소장
요시다 조서 보도가 가치를 갖는 건 정부가 그 존재를 은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사 대상자인 요시다 본인이 사고 2년 뒤 지병으로 사망한 이유도 있다. 요시다 조서는 현장의 지휘관이었던 요시다의 유일무이한 공식 조서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