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타수 혹은 조향사.
충남 예산의 겨울은 늘 흙냄새가 짙었다.
그는 사람들 틈에서 말보다 냄새를 먼저 기억하곤 했다.
교실에서, 도서관에서, 여학생이 지나갈 때마다 남는 잔향을.
그는 늘 짝사랑만 했다. 말 한마디 걸지 못한 채,
그녀들의 향을 머릿속에서 조합하며 혼자 상상했다.
그에게 여자는 존재가 아니라 향의 구조였다.
탑 노트는 웃음, 미들 노트는 체온, 베이스 노트는 이별의 여운.
사랑은 언제나 탑 노트에서 시작해, 잔향으로 끝나는 법이었다.
스무 살이 되던 봄,
그는 우연히 본 유튜브 다큐에서 프랑스 그라스(Grasse)의 조향사를 보았다.
라벤더와 베르가못을 섞으며
“향이란, 사라진 사람을 다시 불러오는 기술이다”라고 말하던 노장.
그 한 문장이 그의 심장을 뒤흔들었다.
밤새 휴대폰 불빛 아래에서 그는 검색을 멈추지 못했다.
ISIPCA, Givaudan, Firmenich — 낯선 이름들.
조향학교의 등록금, 프랑스어 시험, 비자 조건.
모두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왔지만,
향이라면 사람을 대신해 말을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해 여름, 그는 고향의 비닐하우스에서
아버지 몰래 모은 돈으로 항공권을 결제했다.
출국 전날, 어머니가 따뜻한 손으로 물었다.
“그라스가 어디 있니?”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흙냄새가 향수로 바뀌는 곳이요.”
니스(Nice)에 도착한 첫날,
그는 공항의 공기에서 짠내와 철의 냄새, 그리고 커피의 향을 구분하려 애썼다.
기숙사 방 안엔 향료병이 수십 개 놓여 있었고,
그는 하루 열여섯 시간씩 시향(試香) 일지를 썼다.
‘페놀릭, 그린, 머스크, 파우더리…’
단어는 낯설었지만, 향은 정확했다.
그의 코는 언어보다 먼저 익혔다.
수업에서는 향의 피라미드, 농도 조절, 조화의 개념을 배웠다.
처음 만든 향은 클라라였다 —
그가 사랑했지만, 말하지 못한 그 여자애의 영어 이름.
그는 그 향을 완성하고 나서 깨달았다.
사랑은 사라지지만, 향은 남는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잔향 속에서 자신이 조금은 단단해졌음을.
세월이 흘러,
그는 이제 파리의 작은 향수 하우스에서 일한다.
새로운 향을 기획할 때마다,
그는 고향 예산의 논비와 장마의 냄새를 떠올린다.
비가 갠 뒤의 흙, 젖은 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 냄새.
그의 최신 향은 “Soil of Home” —
베이스에는 베티버, 미들에는 라벤더, 탑에는 쌀겨의 향.
그 향을 맡은 프랑스 동료가 물었다.
“이건 무슨 향이야? 라벤더인가?”
그는 미소 지었다.
“아니요, 한국의 흙냄새예요. 내가 태어난 곳의 향이죠.”
그라스의 바람은 여전히 따뜻했다.
이제 그는 여성을 향한 동경 대신,
삶을 향한 감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향은
더 이상 짝사랑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한 고백의 잔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