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 Jun 01. 2021

연대라는 말의 모호함, 혹은 마법

  졸업을 하고 사회적경제, 소셜섹터, 시민사회 영역에서 밥벌이를 하면서 ‘연대’라는 단어를 처음 만났다. 캐치프레이즈에서 사업목적에서 연대는 ‘서로, 협력, 다 같이, 함께’라는 단어들과 종종 짝을 이루었다. 하지만 연대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길이 없었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사이좋게 지내자’ 보다는 상위 개념인데, 아무도 연대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정확한 뜻이 없는 두루뭉술한 단어였지만, 본능적으로 나의 세대의 단어가 아님을 알았다. 연대는 뜨거운 마음으로 투쟁했던, 그래서 개인의 불이익을 감내하고라도 힘을 모으던 이전 세대의 단어였다. 남들보다 뛰어남, 도드라짐, 개성으로 무장하고 경쟁하던 나의 세대에게 ‘나’가 아닌 ‘우리’를 주어로 삼는 연대는 분명 낯선 개념이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일하는 곳곳에서 발견됐다.  특히 선배들은 이 뜻 모를 단어를 여기저기서 호명했다. 그렇게 자주 접했지만 정이 안 드는 단어였다. 


 왜 그렇게 정이 들지 않았을까? 

  이유를 떠올려 보면 내가 살아온 시대적 배경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나는 올림픽 경기장을 가로질러 굴렁쇠 소년이 등장하던 해에 태어났다. 한강의 기적으로 최고의 경제 성장을 이루던 시기였다. 부의 성장세 속에서 모두가 풍족했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개성을 맘껏 드러냈다. 90년대 말, 초등학생 시절에는 IMF 체제로 국가 경제와 시스템이 전부 반전되고 말았다. 너도 나도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고,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이 최우선인 시절이었다. 중고등학생이던 2000년대 들어서는 모든 게 온라인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안에 연결은 있었지만, 이 또한 개인의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200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는 아직 살아가고 있는 현재이므로 딱 떨어지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경제적 안정과 사회가 말하는 평범의 테두리 안에 자리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런 시절들을 통과하며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를 배우고 성장했다. ‘같이 놀자’란 말을 할 줄은 알지만, 같이 노는 방법은 모르는 세대. ‘우리’보다는 ‘내’가 앞선 환경에서 연대를 말하는 것이 매우 어색했다. 즉, 연대란 단어를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것이다.

한때는 올림픽 때도 사람이 태어났냐는 반응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말 아무도 안 한다.


  두 번째 이유로는 연대에 대한 경험이다. 연대는 늘 모호하고 액션과 결과물이 부재했다. 실무를 할 때면 ‘연대’만큼 어려운 말이 없다. 사업의 방식과 목표에 ‘연대를 통해 OOO 하자’고 말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연대하는지, 연대해서 뭘 하자는 건지는  도통 모르겠다. 연대로 이루고픈 목표는 어디로 가 닿을지 알 길이 없다. 빈번하게 쓰이지만 구체성은 없는 연대는 늘 불편하고 어려운 단어였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연대만큼 쉬운 단어도 없는 것 같다. 어떻게 무엇을 해 나갈지 잘 모르겠는 경우, ‘함께 연대합시다!’로 퉁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곤 하니까.)


  그렇게 연대란 단어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살다가, 코로나가 빵! 터졌다. 진짜 말 그대로 빵! 하고 터졌다. 난생처음 겪는 초유의 사태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웠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코로나를 해쳐나가기 위해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러나 해답은 없었다.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내야 했다. 그런 시민들에게 연대가 동력으로 제시되었다. ‘함께하자, 힘을 모으자, 연대하자’라는 말들로 힘을 더했다. 경우에 따라 그 말은 실제 동력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아무런 성과가 없기도 했다. 


  코로나 시대의 연대를 보며 내가 알고 있던 연대가 떠올랐다. 요새 말하는 연대 또한 언어는 있지만, 구체적 액션과 결과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캠페인에 참여해 코로나 현장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보냈지만, 내 사진 하나로 의료진이 당면한 문제들이 해결되는지는 체감하기 힘들었다. 소상공인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소비를 하지만 전체 시스템(예를 들어, 임대료)이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심정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면서 연대의 말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추세다. 이제는 ‘우리, 같이’ 이 팬데믹을 이겨내자 보다는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마음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덕분에 챌린지 2가지 방법 마음은 훈훈했다. 하지만 현실의 문제는 그대로인 것을 볼 때 so what? 의 질문이 떠오르는.



나의 ‘연대’ 연대기 

  연대는 원래 이런 것인가? 선한 의지들이 서로 연결되지만 결과와 과정은 확인할 수 없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약해지는 것인가? 만약 원래 그런 것이라면, 왜 우리는 여전히 문제 해결 방법으로 연대와 협력을 꼽는 것일까? 

  이 질문을 갖고 4월 ‘연대와 협력’ 워크보트에 올라탔다. 이 보트에 올라타면서 개인적으로 연대라는 이름이 가진 모호함을 해결하길 기대한다. 연대와 협력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고, 어떻게 해야 연대하고 협력할 수 있는지 공식처럼 알아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로 나의 연대 경험을 정리할 필요가 있을 테다. 연대의 의미도 잘 모르면서 연대의 경험을 정리하는 게 가능할까? 싶지만, 연대를 제대로 알려면 내 안의 경험과 생각을 더 집요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의 연대를 정의하는 것으로는 이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연대를 정리하다 보면, 모호했던 연대의 정의가 좀 더 또렷해지지 않을까? 

자, 이제 나의 연대의 경험을 떠올려보자. 그 순간, 정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연대를 모르고 자란 세대가 무엇을 연대라고 생각할 수 있나, 쥐어짜듯이 생각했을 때, 몇 가지 경험이 떠오르긴 했다. 이 경험들이 정말 연대의 경험일지는 정리를 하면서 알아봐야겠다. 


세월호 참사 그리고 촛불광장 

  가라앉는 배 위로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뉴스 장면. 그날의 기억이 전 국민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세월호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은 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말로 꺼내기조차 힘든 세월호 사건으로 사람들은 유가족의 슬픔에 공감하고, 진실을 찾고자 목소리를 모았다. 분노와 슬픔이 컸던 만큼 사람들의 목소리는 쉽게 모였다. 그 목소리가 촛불로 이어져 광장을 채웠을 때, 처음으로 시민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사람들이 모이고, 연결되고, 목소리를 모았을 때 엄청난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감명받았다. 내가 아닌 우리가 되어야만 할 수 있다는 것을 난생처음으로 경험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7년, 촛불이 광장을 채운 지 4년이 넘은 지금. 무엇이 변했나 생각했을 때, 허무할 만큼 변한 것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외쳤어도 우리는 여전히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때 광장에서 외치던 정의와 공정한 사회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연대의 환희가 컸던 탓인지, 그 뒤에 이어지는 허무함과 무력감이 더욱 크다. 그 당시 눈물과 목소리로 연대했지만 지금에 와서 실패했다는 감각이 더 크다. 때문에 세월호와 촛불광장에서 연대했다고 말하는데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든다. 

2017년 3월 11일에는 2016년 겨울을 절망, 분노, 희망, 연대로 기억했다.


 그러고 보면 연대는 성공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연대했다고 모든 게 잘되리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더 크다. 연대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며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대할 당시의 희망과 기대는 압도적이다. 따라서 연대한 후 이어지는 실패는 더 쓰고 아프게 다가온다. 세월호와 촛불광장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에 대한 실망이 더 묵직한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의 연대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고 너무 굳게 믿었던 것이다. 


쓰레기로 덕질하는 사람들  

  2019년, 나는 쓰레기덕질(쓰덕)이라는 온라인 기반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했다. 일면식 없는 이들과 알음알음 온라인 공간에 모여 쓰레기관찰기를 쓰거나 환경관련 이슈를 공유했다. 함께 참여할만한 캠페인이 생기면 힘을 모으기도 하고, 때로는 캠페인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환경이슈에 대한 관심은 나 혹은 내 주변 친구들에 한정된 개인적 취향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 만난 쓰덕들은 나와 같은 고민과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고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든 실천해보려는 이들을 보며 온라인 상에서 처음으로 ‘연결’의 감각을 맛봤다. 


  쓰덕에서는 2019년, 일회용 컵 보증금제 부활을 위한 캠페인을 조직했다. 이 캠페인을 조직하는 데 있어 주요 멤버는 있었다. 하지만 컵 보증금에 관심 있는 개인, 기존에 환경운동을 하던 단체, 그리고 쓰덕 멤버들은 물론 비슷한 활동을 하는 모임들도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 이슈에 공감하는 마음을 공통분모 삼아 사람들의 참여가 물밀듯이 이어졌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사람과 캠페인을 조직해 본 게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 그 결과, 컵 보증금제 부활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들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목소리에 힘입어 2022년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부활하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목적한 바를 달성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연결을 넘어선 연대 그 자체였다. 그 과정의 중심에서 경험한 연대의 힘은 막강했고, 그 힘에 도취될 정도였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알리는 캠페인으로 플라스틱 컵 어택을 했다. 홍대 길 한복판에서 저렇게 외치다니. 연대의 힘은 놀라워라.


  컵 보증금제 이후, 중심이 되었던 쓰덕 활동도 매우 뜸해졌고, 컵 보증금제 이슈가 어디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른다. 막강했던 연대의 힘을 이제는 체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나 촛불광장만큼 허무하거나 상처 받지는 않았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일회용 컵 보증금 제로 생겨난 연대의 힘을 다른 곳에서, 다른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테다. 

  요새는 활발해진 제로 웨이스트 활동들을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다. 쓰레기를 덜 만들기 위한 가게들이 생기고, 쓰레기에 관한 문제에 관심 갖는 소비자의 목소리로 기업을 바꾸는 사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컵 보증금 제라는 구체적 이슈를 넘어서 제로 웨이스트, 기후위기라는 또 다른 이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현실을 보며 연대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다. (물론 컵 보증제가 그 이슈들의 시작점은 아니다) 꼭 같은 이야기를 동시에 함께 해야만 연대가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느슨하게 모이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만들어 가는 것 또한 연대일 수 있다. ‘나’와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만이 연대가 아니라 언제든 어디서든 다른 방식으로 느슨하게 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일생 가장 강렬했던 연대의 경험을 정리해 봤다. 사실 ‘두 개’뿐이라는 게 충격이었다. 그러면서도 ‘연대란 일생에 몇 번 일어나지 않는 드물고 귀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당신의 일생에서 진정한 연대의 경험은 과연 몇 번인 가요?) 두 번의 연대 경험 기를 되짚어 보면서 정리된 것은 다음과 같다.   


연대가 꼭 성공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연대의 성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매우 크기 때문에, 연대 이후에 오는 실패는 그 어느 것보다 쓰고 아프다.  

연대가 꼭 같은 목소릴 동시에 내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과 사람에 따라 외치는 이야기도, 외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연대는 그렇게 유연한 것이다. 


왜 우리는 여전히 문제 해결 방법으로 연대와 협력을 꼽는 것일까? 

앞서 이 질문을 가지고 워크 보트에 탑승했다고 말했다. 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저 질문에 대한 답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고백하자면 1도 가까워지지 못했다. 고작 찾아낸 것이라곤 위에 적은 1번과 2번이 전부다. 연대란 무엇인지 생각하고 생각할수록 더 어려워진다. 게다가 내 인생에 손꼽을만한 연대의 경험이 단 두 개라는 사실을 깨닫고부터 연대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연대의 경험이 없는데, 과연 연대가 뭔지 알 수는 있는 걸까? 자신감을 잃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연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아가 보려 한다. 우선 보트에는 올라탔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내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첫 번째 글을 마치며,  연대에 대해서 제대로 한 번 파보겠다, 의지를 더 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대'하자고?! 왜? 어떻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