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책이 주어진 순간, 살면서 이토록 마음의 돌덩어리 같은 부담을 짓이기게 느껴본 적있던가.
4.
직장의 2가지 미덕은 월급과 승진이라고,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다녔다. 조촐한 책임자가 됐을 땐, 발에 치이는 수많은 팀원 중 하나여서, 잘못과 실수의 책임은 오롯이 '내 것'만 지면 될 일이었지만,
5.
그런 팀원을 여럿 끌어안고 뭐라도 만들어야 하는 팀장은 여의치 않다. 그간 '나잘난' 맛에 살았어도 팀원이 저지른 큰 실수 한 방이면 세트 피스로 날아가는 운명의 공동체.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이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던 민족얼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라 비상탈출의 여지는 생긴 셈이다.
6.
아쉽다. 월급이라도 드라마틱하게 오른다면, 입술 꽉 깨물고 "나를 한 번 따라 보실라오?" 해보겠는데. 이런 말이 있지 않던가. 물가는 치솟는데 성적과 월급만 안 오른다는 치명적인 팩트. 게다가 조금만 비위를 건드려도 '블라인드'라는 앱을 켜서 서운함을 곱절로 배가시키는 대단한 스킬들에, 다시금 팀원으로 돌아가고픈 강렬한 유혹이 뒤통수를 후린다.
7.
당분간만 팀장을 하련다. 그만둘지 하나 더 올라가 지점장을 할지는 저 위에 사는 신만 안다. 더 큰 용기, 그러니까 지금 당장 회사를 때려치울 용기는 없다. 이미 월급이라는 약에 중독됐고, 20대처럼 들이댈 수 없는 병약하고 소심한 아저씨라, 그저 변명한다. 다만, 뜻하지 않게 내 선택의 범위를 벗어난 상황에 마주하여 떠나야만 한다면, 옳거니 그 핑계로 꼬깃한 사표 한 장 냅다 집어던지고 싶다.
8.
달콤한 월급. 다시! 단물 빠진 월급중독자. 그러나, 감사해야 성공한다고 요즘 너무들 난리니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그냥 그렇고 그런 나를 이만큼 먹여주고, 대우해 주고, 사람 구실 하게 해 줬다. 아니라고 마구 부정을 하고 싶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물론 거기에 녹아든 무시와 조롱과 야유와 가스라이팅은 별개다. 그걸 떠올리면 '감사'는 사라지고 '억울'만 남을 테니 다른 결로 돌려 깔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남겨두도록 하겠다.
9.
양극화 시대다. 더 잘 살거나, 더 못 살거나. 그래서 어중간하게 끼어 있는 허리는 혼란스럽다. 직장을 때려치우려 하니, 단물이 덜 빠진 괜찮은 조건들이 자꾸 손짓한다. 사표를 던지기에 너무 어리지도, 너무 늙지도 않은 끼어있는 자, 팀장. 100세 시대라고 하도 강조들을 해대니, 나의 정년도 늘겠지라는 희망고문으로, '좀 더 다녀보고 고민하자'는 가장 편리한 설득이 내 등을 도닥거린다. 그러면 나는 또, 그냥 못 이긴 척 하루를 마감하겠지.
10.
참 다행이다. 부장이나 지점장 책상에 똥만 안 싸도 정년이 보장되는 것 같으니, 10년은 플러스.
한편, 불행이다. 해마다 머리털이 빠지고, 그나마 남은 머리카락도 점점 흰색으로 변해가는데, 여전히 '내'가 주인이 아닌 '남'이 주인인 회사를 위해 나의 소중한 하루 중 9시간을 매달 20일씩 내줘야 한다는 현실.
비교하지 말라면서 스마트폰만 켜면 비교할 수밖에 없는 미디어들 때문에 흔들리는 마음을 가눌 길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