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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르르 Brr Feb 24. 2020

사람을 줍줍 하는 법


그동안 끌리는 사람이 되어보려 부단히도 애썼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잘 안됩니다.
챙기고 견디며 기다려야 하니까요.
매력쟁이가 되고 싶은 워너비는 분명 있는데 말이죠.
 

이자나 수수료가 1%면 저렴합니다. 관계도 많지 않은 1% 만큼만 더 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 숫자가 들어간 제목의 베스트셀러가 있습니다만 내용대로 한다면야 1%가 아니라 10%도 끌 수 있을 듯합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모인 직장의 현실은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죠. 사람이 그다지 좋지 않아도 필요에 따라 사람이 모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거기에 약간의 친절과 배려만 섞어도, 냉정한 사회에 그 정도면 호인이라는 칭찬이 뻥뻥 터집니다. 그래서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그렇게 안 배웠는데 많이 다르더란 말이죠.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누구나 좋아합니다만 난 바닥에 있는데 그 말이 공중에 부웅 떠서 아쉬울 뿐입니다.

마감이 임박했는데 옆에서 놀고 있다면 친절하기 어렵습니다. 밥상을 차려놨는데 밥까지 먹여달라는 사람에게 배려는 사치죠. 같은 실수를 끊임없이 반복해 나를 골탕 먹이는 사람이 연인이랑 문자를 나눌 때면 오타 한 번 안나는 집중력에 속이 뒤집어집니다. 다 받아주려니 내 내 속이 속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알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친절하고 배려심 깊으며 타인을 위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다 간 성자가 되기 직전에 내가 먼저 죽을 것 같습니다. 어디 가성비 좀 괜찮은 실천법은 없을까요.

어떻게 해야 사람을 끄는 매력쟁이가 될까요.

 

8년간 함께 근무한 직원이 있습니다.

그는 인물이 훌륭하지도 않고 대단히 친절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돈이 많거나 학벌이 하늘에 걸린 것도 아니죠. 물론 가끔 던지는 말이 재밌습니다만 그 정도는 지극히 평균적입니다. 그런 그의 주변에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사람이 끊이지 않습니다.

 

부서 전체 회식 때도 직원들은 부장님에게 술 한 잔 건네려 줄을 서고, 인싸 핵심 주류에 끼고 싶어 박장대소하지만 그는 아랑곳 않습니다. 때론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자신의 페이스를 고집하죠. 처음에는 술을 못해 그러나 싶었지만 그도 아니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그를 부르다 지친 팀장과 부장이 그에게 가서 술을 따라줍니다. 신기하게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리더가 갔으니 오히려 따라붙는 직원들이 앞다퉈 몰려듭니다.   

 

그런 그가 움직여 이동하는 테이블이 하나 있습니다. 소속은 같지만 근무하는 사무실이 달라 평소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든 낯선 사람들. 여리고 착하지만 어쩌다 모인 부서 행사가 낯설어 양지로 나오기 조심스러운 양들이 침묵하는 테이블. 그는 그들의 어깨를 쓸고 술을 따라 줍니다. 의무사항도 아닙니다. 직원 관리 팀장도 아닙니다. 오롯이 사람을 향한 마음입니다. 간헐적으로 나누는 웃음과 몇 마디가 전부이지만, 그가 챙긴 '소외'에 신난 사람들이 와글거리며 알아서 흥을 냅니다. 새로 형성된 이야기 장터에 '자발적으로 소외된 자'들까지 합석합니다. 단지 술자리여서 그랬을까요?

 

평소에는 더 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의 주인장 역할을 합니다. 조촐하게 말을 섞고 어울리며 외면당하고 싶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하도록 해줄 뿐이죠. 그가 늘 친절하고, 배려하고, 웃지 않아도 사람들을 줍줍 하는 비결입니다. 그를 찾으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들이 모일 거라는. 그 바람은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니 사람들이 끊임없이 모입니다. 저를 포함해 팀장님도 부장님도 모두 다.

우린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외롭습니다. 그 외로움이 공짜로 해소될 수 있는 곳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어쩌면 그가 직접적으로 사람을 줍줍 하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이는 시간과 공간의 중심에 늘 그가 있기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매력 있는 사람(그러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겠지만)이 되겠다고 나의 감정을 혹사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친절해야 할 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친절하고, 배려해야 할 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배려하며, 감사해야 할 때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감사하면 됩니다.

 

마음이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살아야 한대서 내 마음더러 그러라고 압박하는 것은 감정의 에너지만 지나치게 소모할 뿐입니다. 다만, 사람들의 소외된 마음을 들어주고 다독이는 것만 잘해도 충분할 듯합니다. 내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리액션도 과할 필요 없습니다. 그저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구나만 느끼면 되겠지요. 나의 마음도 투영시켜 위로할 수 있다면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참 괜찮은 시간일 겁니다.

 

오랜만에 선배가 술 한 잔 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야기 좀 들어줘 동생아' 일 테니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실컷 들어주고 오렵니다. 뭐 기분 당기면 며칠 아팠던 내 속상한 맘도 좀 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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