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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비 Jan 27. 2024

민들레 법칙

다양성에 대한 청렴 에세이


 늦여름 햇살이 뒷목을 따갑게 내리쬐는 주말 오후, 8살 아이는 메뚜기와 나비를 채집한다며 잠자리채를 들고 뛰어다니고 있다.


아이를 뒤 쫓다가 들고 있던 채집통 뚜껑이 열려서 그나마 몇 마리 있던 여치와 나비가 도망가 버린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뚜껑에 나비 한 마리가 붙어서 도망가지 않고 있다. 뒤돌아보던 아이가 뛰어와서 같이 들여다본다.

“왜 이 나비는 안 도망가?” 아이가 묻는다.

나는 조심스럽게 바람을 불어 나비를 날아가도록 도와주려다 아이에게 핀잔을 듣는다. 왜 잡은 곤충을 놓아주려고 하냐는 거다.

“이 나비도 어딘가에 엄마 아빠도 있고 동생도 있을 거야. 아마 지금쯤 서로 많이 보고 싶을 거야.”

라고 말하자 아이는 벌써 눈물을 글썽거린다. 이제 날아갔으니까 금방 가족들을 만날 거라고 아이를 달랜다.



 아이와 함께 모든 곤충들을 풀숲에 놓아주고 집으로 와서 간식을 먹다가 어제 밤에 읽던 책을 펴든다.



 ‘민들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민들레는 잡초에 해당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약재로 쓰인다. 또 누군가에게는 염료로도 쓰인다고 한다. 곤충들에게 민들레는 번식을 위한 침대이고, 아이들은 민들레 씨를 불며 소원을 빈다. 이렇게 아무리 하찮은 존재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이 민들레 법칙이다.’


 읽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 엄마랑 간식을 먹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누구나 중요하다.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동안 사실 크게 와 닿지 않았다. 하지만 전에 봤던 뉴스 기사에서 ‘육아휴직 기간이 지나고 복직을 한 후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어느 공무원’에 대한 기사를 접한 뒤로는 내심 주의 깊게 주변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병가 휴직 중에 있는 한 후배 직원이 복직을 앞두고 있어 전화를 걸어 요즘 잘 지내는 지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얼마 후에 복직한 그 후배 직원이 나에게 최근 고민을 털어놨다. 휴직 중에 주식투자를 했는데 제법 큰 빚을 지게 돼서 복직에 대한 불안감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었다는 얘기였다. 고민을 하던 와중에 나에게 전화를 받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복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끔 청렴 강의를 할 때면 갑질 예방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여 강의를 진행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강조하는 것이 ‘시작과 끝이 만나는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다. ‘시작과 끝이 만나는 상황’이란 신규임용, 전입, 신규 보직 배정, 등 그 동안의 일을 끝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대한민국 남자들의 경우 입대를 하게 되면 큰 깨달음을 얻는다. 내가 선배가 된다면 후배들한테 잘 해줘야지 하면서도 시간이 흘러 선배가 되면 예전의 선배를 닮아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것이다.



 시작과 끝이 만나는 곳, 바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약하다. 가장 불안하다. 그리고 이렇게 약한 위치에 있는 존재들을 포식자들은 가장 먼저 알아본다. 인터넷 사전에서 ‘갑질’을 찾아보면,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상대방에게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짓’이라고 나온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가 조직에 먼저 자리를 잡았을 때나 더 높은 직급에 있을 때, 또는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을 갑이라고 말한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배려해주면 갑질은 없을 것이다. 간단한 문제다. 한 마디만 해 주면 된다. ‘넌 중요해’라는 말을 해주는 것이다.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민들레 법칙을 굳이 얘기하지 않더라도 엄마랑 간식을 먹고 있는 저 아이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나비, 잠자리, 여치, 메뚜기,....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어른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잊어가는 것이다. 어렸을 때 하늘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잠자리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자유롭게 날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해 본적이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저 능력을 가진 곤충이 대단해보인 적이 있다면, 모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다만 잊어갈 뿐이다.


 다음 주말에는 채집통과 잠자리채를 분리수거 통에 넣고, 아이와 돋보기를 가지고 산책을 갈 계획을 세워본다. 그리고 사방에 피어 있는 민들레와 곤충들을 들여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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