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안식처 찾기
스페인의 투우장, 잔뜩 성이 난 황소가 처절하게 싸울 준비를 할 때나 잠시 쉴 때 머무는 공간을 케렌시아라고 한다.
우리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 자동차 안, 서재 방, 나만 아는 어느 공원의 벤치, 카페 자리, 등 잠시 쉬면서 재정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모든 생명체는 생존과 번식을 제 1의 목표로 한다. 단, 인간을 제외하고. 인간은 행복의 개념이 개인마다 다르다.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부동산과 자동차, 주식과 코인, 자식 자랑, 취미생활 등의 이야기가 오간다. 자주 보이던 친구가 없어 안부를 물었더니 최근에 건강이 나빠져서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한 친구는 자식 자랑이 한창이다. 또 한 친구는 주식으로 꽤 많은 돈을 벌어서 오늘 모임 비용을 계산하겠다고 호탕하게 웃는다. 골프에 빠진 친구가 말레이시아 골프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에 나는 조용히 화장실을 가겠다고 자리를 뜬다.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참 좋다. 조용히 걸어서 내 차에 타고 문을 닫으니 온전히 혼자가 된다. 조용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 나는 무엇에 대해 저 친구들처럼 자신있게 말을 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분양 받은 20여평 아파트? 중고로 사서 4년째 타고 있는 자동차? 최근 시작한 운동들... 뭐 하나 내세울 것이 없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뭐라 말하기 어려운 것들 뿐이다.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생각에 잠긴다. 이 시간만큼은 온연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편하게 앉아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높은 건물을 보면서 괜히 스파이더맨을 생각해보고, 교통 신호 체계에 대해서 생각하고,.... 생각이 여기 저기 뻗어나갈 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생각이 생각을 하는 이 공간, 온연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이 자동차 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공간이 또 있을까. 간혹 들르는 서점 근처 카페가 있는데 그 곳 창가 자리는 나에게 안식처다. 이상하게도 그 자리에 앉으면 글도 잘 써지는 것 같고, 책도 잘 읽어지고, 생각도 잘 된다. 아, 또 있다.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다 발견한 어느 벤치. 이 곳에서 잠시 쉬면 온갖 창의적인 생각이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 케렌시아[안식처]는 다양하다.
행복의 개념이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가끔 잊고 산다. 행복은 사람 수만큼 다양한 것인데 잊어버리곤 한다. 좋다. 전부 잊어버리고 살더라도 나에게는 나만의 안식처가 있고, 그 곳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 만큼은 잊지 말고 살자.
오늘도 나만의 안식처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