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소설 <百의 그림자>
안녕하세요, 사하입니다. 세 번째 편지예요.
가을이 슬금슬금 자리를 잡아가는 9월이 되었습니다. 날도 제법 선선해졌고, 지독한 여름이 이렇게 또 지나가나 봅니다. 야호!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 계절엔 역시 쇼핑이죠. 돈도 없고 약속도 없는 주제에 괜히 쇼핑몰을 들락날락하는데요, 참 미스터리 해요. 사람들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옷을 사 입고 다니는 걸까요? 패션에는 영 안목이 없는 터라 매 계절마다 제 통장은 주인을 잘못 만난 섬유들에게 점령당한답니다.
세상 구경을 몇 번 해보지도 못하고 은둔하게 된 옷들에겐 애석한 일이지만요, 인터넷 쇼핑을 끊기란 어렵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옷은 물론 별별 것이 집 앞까지 찾아오니까요.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이죠. 방금 주문한 음식이 20분 만에 오기도 하고 어제 구매한 물건이 오늘 아침 오기도 하니, 참으로 편리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괴이해요. 어떻게 그렇게 빠를 수 있을까요. 빗자루를 타고 배달하는 것도 아니고 택배 기사님들만이 공유하는 마법 포털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요. 분명 사람이 하는 일일 텐데요.
그 답은 ‘22’라는 숫자에 있었습니다. 스물둘. 지난해부터 올 8월까지 과로사로 사망한 택배 노동자의 수예요. 올 초까지는 열셋이었어요. 뉴스로 그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열 손가락을 다 끌어 모아도 넘치는 생의 무게에 질색했던 저는 곧 무덤덤해졌죠. 그렇게 잊은 사이 숫자는 줄지도 멈추지도 않고 무서운 규칙처럼 불어나버렸습니다.
제가 애용하던 인터넷서점에서는 ‘양탄자 배송’을 시작했어요. 고객이 원하는 시간대에 언제든지 택배를 받을 수 있다는 건데요, 마치 양탄자를 탄 듯 빠르게 배송한다는 의미겠죠. 물론 빠른 배송을 받을지의 여부는 고객이 선택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품마다 적힌 배송안내 문구는 ‘이만큼 빠른데도 안 할래?’라고 물어보는 것만 같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그 유혹에 조금 흔들립니다. 갖고 싶은 물건을 당장 가져다준다는데 싫을 리 없으니까요. 그리곤 제가 잠시라도 흔들렸다는 사실에 놀라요. 스물둘이라는 숫자를 보고서도 흔들릴 수 있는 제 무신경함이 놀라워요. 양탄자배송, 총알배송, 로켓배송. 섬뜩할 만큼 점점 더 빨라지는 수식어들은 어쩌면 ‘무신경함’을 덤으로 끼워 팔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구매 버튼 뒤로 존재할 수 있는 일들은 사려하지 않는 무신경이요.
‘소비자로서 나’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황정은 장편소설 <백(百)의 그림자>에 나오는 건데요. 주인공인 ‘무재’와 ‘은교’가 이런 대화를 나눠요.
“누구의 배(腹)도 빌리지 않고 어느 날 숲에서 솟아나 공산품이라고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알몸으로 사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자신은 아무래도 빚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뻔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
“공산품이 나쁜가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고요, 공산품이란 각종의 물질과 화학약품을 사용해서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라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길 수 있잖아요? 강이 더러워진다든지, 대금이 너무 저렴하게 지불되는 노동력이라든지. 하다못해 양말 한 켤레를 싸게 사도, 그 값싼 물건에 대한 빚이 어딘가에서 발생한다는 이야기예요.”(18쪽)
무재는 소비 ‘너머’의 것들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고 먹고 쓰는 것들 뒤로 어떤 고통이 숨어있는지를 생각하죠. 그리고 그 고통들에 ‘빚’이 있다고 말합니다. 태어나는 한, 소비하는 한 우리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 빚을 질 수밖에 없고 그 고통에 책임이 있다는 것. 무신경하게 편리해지고 싶을 때 떠올리게 되는 말입니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라지만 ‘책임’에는 해당사항이 없을 듯합니다. 책임은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생각하고 선택하는 행위 자체니까요.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지,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에 고민해봅니다. 적어도 책임에 관해서는 실패하는 법이 없는 쇼핑을 위해서요.
-2021.09.01. 사하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