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가 비만이라고?

신조차 피해 갈 수 없는 비만 혐오

by 사하



*본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블 코믹스의 '어벤져스 시리즈'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태권브이와 파워레인저 뒤를 잇는 현대 어린이들의 히어로는 아이언맨을 비롯한 어벤져스 멤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개봉한 <어벤져스: 엔드게임>(Avengers endgame, 2019)은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로, 4일 만에 관객수 백만 명을 돌파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시리즈의 '완벽한 마무리'를 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갖가지 ‘캐붕’( '캐릭터 붕괴'의 줄임말로 등장인물이 개연성 없이 원래 설정이나 성격을 거스르는 것)을 비롯한 스토리 허점으로 팬들 사이에서 많은 욕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천둥의 신 ‘토르’는 기존의 근육질 몸매와 잘생긴 얼굴을 가진 영웅이 아닌 ‘비만 알코올 중독자’로 나타나 논란이 되었다. 토르를 좋아하던 많은 팬들이 ‘내 토르 돌려내라’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토르의 캐붕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신조차 피해 갈 수 없는 '비만 혐오'


r03sdcaaxath478e3794.jpg <어벤져스: 앤드게임> 속 천둥의 신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사실, 토르가 비만이 된 원인에 개연성이 없지는 않다. 부모를 모두 여읜 상태에서 악당이 나타나 동생을 죽이고 자신의 백성들까지 먼지로 만들어버렸으니, 아무리 신이라 해도 실의에 빠지지 않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토르가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고 술과 음식, 게임에 빠져 비만이 되어버린 것은 캐릭터가 겪는 극한의 상황과 고통을 보여주기 위한 창작자의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토르의 비만을 다르게 이용한다. 아니, ‘나쁘게’ 이용한다. 영화 내내 토르의 비만과 알코올 중독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인한 질병이 아닌 ‘웃음거리’로 사용된다. 영화에서 토르는 기존의 영웅다운 결단력과 용기, 정중한 말투는 온데간데없고 더럽고 꼬질꼬질한 몰골에 눈치 없이 나불대거나, 고성방가를 하고 노상방뇨까지 한다. 심지어 중요한 작전 중에도 "아버지의 와인 창고가 저쪽에 있다"며 술을 찾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존중’도 없다. 살이 찐 토르를 향해 ‘너 녹아내린 아이스크림 같아’, ‘(네 몸에는 신의 피가 아닌) 치즈 소스가 흐르는 거 아니야?’하고 말하는 장면에는 토르가 비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어떤 존중도 없으며 그저 ‘조롱’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조롱들은 영화 내내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토르에게 다른 인물들이 살을 빼라고 말하는 장면, 토르의 알코올 중독과 비만이 작전에 차질을 만드는 장면들은 그를 ‘구제불능 민폐’로 만들어버리며, 이를 ‘개그’로 소화하는 과정에서 ‘비만 혐오’와 ‘정신병 혐오’는 가려진다. 세계인들이 보는 영화를 상대로 이토록 아무 생각 없이 '비만'을 개그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비만 혐오’가 얼마나 은연중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왔는지를 보여준다.



뚱뚱한 사람은 게을러


인터넷에서 유행한 '남녀별 거울을 볼 때 차이'에 관한 이미지

외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는 ‘비만인’을 향한 시선이 부정적인데, 이는 특히 여성에게 더욱 가혹하다. 저소득층에서 고소득층으로 갈수록 남성은 비만율이 높아지고 여성은 낮아진다는 결과는 성별에 따라 '어떤 몸'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는지를 보여준다. 많은 영화 속 '사장님'과 '사모님'들을 떠올려 보자.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풍채가 있는 중년 남성이지만 ‘사모님’은 마르고 젊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속한 여성이 ‘비만’으로 그려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잔뜩 주눅이 들어있거나 ‘왕따’를 당하는 비만 여성 캐릭터들이 많고, 이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통해 ‘인생 역전’을 하는 스토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스토리들은 외모지상주의를 반박하려는 시도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먼저 '마르고 예쁜 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한계다. 뚱뚱한 사람이 대중 앞에 나와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지적하는 순간 그 지적은 '살 빼기 싫어서 징징댄다'는 비난을 받기 일 쑤고, '뚱뚱한 몸'은 그렇게 '가시화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은 비만을 '개개인이 게으르고 자기 관리를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지만, 사람의 체질은 모두 다르고 환경에 따른 생활 패턴도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이를 완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게다가 야근과 ‘밤샘 문화’가 만연하고 ‘빨리빨리’를 외쳐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몸’을 기대하기란 더욱 어렵다. 패스트푸드로 한 끼를 때우고 커피를 하루 세 잔씩 마셔가며 버텨야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좋은 몸'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마른 몸’이 정말로 ‘좋은 몸’ 인지도 의문이다. 바쁘게 살아내느라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살이 빠졌다’고 좋아하는 것은 너무도 기이하지 않은가? 다이어트를 하다가 건강을 망쳐버린 수많은 여성들의 사례는 한국 사회가 ‘건강한 몸’이 아닌 ‘마른 몸’을 선호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다양한 몸을 가진 사회


Thor.jpg <어벤져스: 엔드게임> 중 토르의 전투 장면

이렇듯 '마른 몸'만이 허락받는 세상에서 비만인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사회와 자기 자신을 기피하게 된다. ‘비만 토르’를 다루는 영화의 시선에서 알 수 있듯이, 비만인이 ‘실패자’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에서는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일조차 어려워진다. 사회의 시선을 피해 스스로 숨게 됨으로써 운동을 할 공간조차 찾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비만이 없는 사회’를 추구하다 보면 자연스레 비만을 ‘없애야 할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 비만을 혐오하지 말고 ‘다양한 몸을 가진 사회’를 상상해보자.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몇 십억의 인구 중 나와 똑같은 몸을 가진 사람은 없다. 각자의 몸은 그저 ‘몸’ 일뿐, 어떠한 기준을 들이대고 우열을 가려낼 ‘성적표’ 같은 것이 아니다. 다양한 몸을 받아들이고 드러낼 수 있는 사회가 된다면, 당신이 어떤 몸이든 간에 아무런 판단도 평가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토르는 ‘비만 토르’이든 ‘몸짱 토르’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영웅의 몸’이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