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몇 가지 생각들
'소녀'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걸그룹 소녀시대와 함께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의 사진이 우수수 튀어나온다. 그들은 대부분 발그레한 볼에 여리여리한 몸, 동그란 단발머리를 한 채 얌전히 앉아 미소를 짓고 있다. 그런데 '소녀'라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수줍고 순진하고 연약한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스텔라장의 <소녀시대>라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소녀 같은 게 뭔 줄 알아?
공부에 찌들어서 폐인 같이 사는 것
원래 다 그렇게 살아
소녀는 무슨 죄다 청순가련하고 여려야 되니 현실에는 그런 거 없어 No No No No No
그렇다. 현실에 그런 소녀는 없다. 적어도 내가 겪은 '소녀'들은 급식을 빨리 먹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리고, 오손도손 모여 쌤들을 (쌍)욕하고,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 야자를 째고, 야한 이야기에 눈을 번쩍 뜬다. 혹은 노래 가사처럼 떡진 머리와 찌든 얼굴로 입시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하루 종일 책상에 엎드려 만사에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이토록 다양한 소녀들을 두고 '소녀다움'을 수줍음과 순진함, 연약함으로 규정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그런데 문제는 '소녀다움'에 대한 규정들이 실제 소녀들이 자신의 몸을 다루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국 중고등학생들 중 다이어트 경험 및 식이 장애 경험 비율은 여성청소년이 남성보다 월등히 높다. '소녀다운 몸'은 '소년다운 몸'과 다르기 때문에, 소녀들은 자신의 몸을 소년과 다른 방식으로 가꾸고 통제한다. 남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여학생들이 축구를 하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몸을 가꾸도록 '허용'되는지에 따라 '자연스럽다'라고 느껴지는 움직임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어깨가 넓어지지 않고 발목이 굵어지지 않고 살이 타지 않는 방식으로 운동을 한다. 그렇게 '소녀 같은 몸', 작고 여린 몸이 된 여성들은 조곤조곤 말하고 다리를 벌리지 않고 쿵쿵쿵이 아닌 총총총 뛰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된다. 그러한 움직임만이 '자연스럽다'라고 받아들여진다.
소녀의 몸은 보호받아야 하는 여린 몸이자, 누구나 침범할 수 있는 '쉬운 몸'이 된다. '소녀다움'의 이미지가 순진무구함인 동시에 성적으로 타락하기 쉬운 대상으로 소비되는 것은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순수함이 곧 '성적 매력'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교복에 대한 이상 성욕이나, '로리타'라고 불리는 소아성도착증, 여성 아동 및 청소년을 향한 성폭력은 '소녀의 몸'을 '무지하고 유순한 몸'으로 만드는 사회적 규범 속에서 허용된다. '소녀'를 대상으로 가해지는 이러한 이중적 욕구 안에서 소녀들은 욕망을 가진 다양한 주체가 아닌,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에 머물게 된다. 성적으로 무지한 '순결한 몸'이기를 요구받는 한편 성적으로 착취당할 위협에 놓이면서 소녀들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알더라도 말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성'에 복잡한 논의들과 여성의 몸을 다루는 구조에 대한 인지가 필요하지만, 개개인 스스로 '몸'을 다르게 바라보는 힘을 가질 필요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몸을 혐오하거나 억제하지 않고 새로운 방식과 새로운 시선으로 규정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소녀들은 어떻게 '소녀다움'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에서는 거제 여자상업고등학교의 십 대 소녀들이 '댄스스포츠'를 배우는 과정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소녀들은 물론 청순가련 연약하지 않다. 욕을 주고받기도 하고 박장대소를 하고 저마다 사정과 고민을 품고 하루하루를 치열히 살아가기도 한다. 동시에 이 소녀들은 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열성적으로 동작을 배우며, 춤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갈등을 겪고 서로를 이해하면서 밀접해진다. 몸을 혐오가 아닌 즐거움의 장소로 바라보고 그것을 만끽할 줄 안다. 크리스티 아데어가 <춤, 여성, 그리고 남성>에서 말했듯, 여기서 '춤'은 사회적 기대치에 도전할 방편을 제공하면서 기존의 세계가 요구한 것과는 다른, 새로운 동작과 언어, 문화적 관계를 창조할 기회로 작용한다.
땐뽀걸즈의 소녀들처럼, 우리는 우리의 몸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몸이란 사회 규범과 권력이 작동하는 장소인 동시에 삶을 탐구하고 변화시키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녀들의 몸이 욕망의 대상으로만 놓여있었다면, 그것을 전복하고 욕망의 주체로 설 수 있게 하는 것 역시 소녀들의 몸이다. 우리가 몸을 다루는 방식은 '내가 나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가장 밀접한 방식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과 세계를 바꾸는 제1의 운동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러려면 우선 자신의 몸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몸을 보채고 욕하고 '니가 그렇지 뭐'라고 한심해하지 않고, 몸이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긍정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내가 바라는 몸은 무엇이었는지, 왜 그것을 바랐는지 생각해보자. 그리고 몸을 '내 방식대로' 움직여보자. 이를테면 손가락을 원하는 대로 움직여보는 거다. 작고 미묘한 움직임들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발견해보는 거다. 혹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숨이 차게 춤을 춰보자. 춤을 추는 동안 내 몸이 어떻게 창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지를 발견해보자. 몸을 믿고, 몸에 대한 믿음을 매개로 원하는 내가 되어보자. '소녀'의 의미가 무한히 규정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대도 그대가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무한히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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