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름에 대한 색다른 이야기-넷플릭스 드라마<센스 8>
타인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기면 어떨까. 초능력이라고 하니 좋아 보이긴 한다만, 비슷한 소재를 다룬 판타지 작품 속 주인공들은 십중팔구 불행했다.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어 상처를 받거나 주변 사람들이 기피하는 탓에 외톨이가 되는 뭐 그런 식이다. 누군가 나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상상해보면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생각을 읽는 쪽이든 읽히는 쪽이든 피차 불편하긴 매한가지인 데다, 약간의 비밀과 거짓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니 말이다. 세상은 비밀로 유지된다는 말도 있으니, 저런 능력은 축복보단 저주에 가까워 보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센스 8>은 타인과 생각은 물론 감정과 느낌까지 온전히 공유할 수 있는 태초 인류가 존재했다는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센세이트’라고 불리는 이들은 하나의 무리로 묶여 어느 날 문득 ‘연결’된다. 연결된다는 말의 즉슨, 텔레파시처럼 생각을 공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통이나 기쁨도 함께 느끼고 마치 빙의된 것처럼 대신 행동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센스 8>에 나오는 8명의 주인공들은 언어가 달라도 소통할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방문’해서 한쪽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다. 중요하거나 위험한 순간, 상념에 빠져있거나 외로운 순간, 심지어는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도 이들은 불쑥불쑥 연결되어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뭐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나 싶다. 보여주기도 알고 싶지도 않은 생각과 감정들을 주고받는 것은 그렇다 쳐도, 그런 식으로 시도 때도 없이 타인과 나의 경계가 없어지면 상당히 혼란스러울 테니 말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센세이트들은 자신들의 비범하고도 요상한 능력을 자아의 혼란이나 상실이 아닌 “자아의 확장”이라고 표현한다. 마구 뒤섞여 하나로 뭉쳐진 찰흙덩이가 아닌 각기 다른 색으로 이어진 구슬 팔찌처럼 주인공들은 ‘나’를 유지하면서도 연결되어있다. 그리고 이 ‘연결됨’은 주인공들이 악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가 된다. 이들은 단절되지 않기 위해, 서로 연결됨으로써 경험한 세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없애려는 적과 싸운다.
센세이트들이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 자아의 확장으로 자신의 존재를 명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가진 ‘차이’ 때문이다. ‘다름’에 대한 색다른 관점은 <센스 8>이 전달하는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인데, 그래서인지 8명의 주인공들은 인종과 국적, 성(sex)과 성정체성 등이 모두 가지각색이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다름’ 때문에 배제되고 거부당하는 경험을 한다. 멕시코의 배우로 활동하는 ‘리토’는 게이로 아우팅(outing) 당한 뒤 영화계에서 배척되고, 비상한 머리를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해커 ‘노미’는 트랜스젠더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머니로부터 뇌수술을 강요받는다. 한국 대기업의 ceo인 ‘박선’은 딸이라서 아버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망나니 같은 남동생의 뒤치다꺼리를 맡는다.(하필 아버지도 이경영이다.) SF 판타지 장르라고 할지라도 <센스8> 속 다름을 대하는 세상의 태도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조금도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주안공들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세상에서도 꿋꿋이 사랑할 것들을 찾아낸다. 센세이트로 묶인 후 주인공들은 갑작스러운 타인과의 만남을 잠시 낯설어하지만,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자신과 다른 얼굴과 목소리, 다른 정체성, 다른 삶의 방식들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관계에 있어 우위를 점하려고도 상대방을 차지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감 없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의 모양들, 과격하고 비겁하고 나약하고 가끔은 찌질한 삶의 순간들을 보여주고, 그 순간을 함께한다. 그리고 서서히 배워간다. 우리는 너무도 다르고,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강철 같은 사람에게도 흰 눈처럼 순한 면이 존재하고 냉철한 사람에게도 풀꽃 같이 섬세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꿈에도 만날 리 없다고 생각했던 먼 나라의 사람들과 눈을 마주하고 있는 자신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은밀히 닮아있다는 것을.
다름을 다루는 <센스 8>의 특별한 방식에 대해 위쇼스키 감독은 다음과 같이 인터뷰한다.
“어릴 때 본 영화나 드라마 속 트랜스젠더 캐릭터들은 본질적으로 비극적이었어요. 비웃음거리거나 피해자였죠. 아니면 전형적인 정신질환 연쇄살인마든가요. 그런 캐릭터들은 ‘다름’에 대한 우리 문화의 지배적인 분위기를 반영해요. 다름이란 두려워하고 조롱해야 하는 것, 가장 중요하게는 분열을 조장한다고요. 그래서 이 작품을 만들 때 다름에 대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다름은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를 하나로 묶어준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다름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공통점이거든요.”
우리는 모두 다르고 그래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은 아름답지만 사실은 조금 순진하다. 다름은 머리로 받아들이는 개념이 아닌 삶 안에서 충돌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달라서 더욱 연결될 수 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우리는 다름을 다루는 일에 너무도 서툴다. 굳이 몇 만 킬로 떨어진 곳에서 온 타인이 아니더라도 당장 내 옆의 타인이 가진 다름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해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우리다. 우리의 삶은 드라마 같지 않기 때문에 다름에 직면하는 일은 아름다운 표어를 외치는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다름의 가치에 대한 메시지가 자칫 공허한 공익광고처럼 여겨질 수 있는 지점에서, <센스 8>은 특별한 방식을 택한다. 바로 말이 아닌 ‘몸’을 보여주는 것이다. <센스 8>은 센세이트들이 서로 혹은 다른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깊은 교감을 나눌 때마다 나신으로 관계를 맺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각지각색의 몸들이 얽힌 풍경은 마치 하나의 그림 같다. 여러 사람이 나체로 뒤엉킨 장면은 유교 한국을 비롯한 여러 시청자들로부터 상당한 반감을 사기도 했지만 사실 ‘몸’은 다름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화두다. 벗은 몸만큼 우리가 단 한 명도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동시에 모두가 동등하게 같은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자신과 타인의 벗은 몸을 똑바로 마주해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우리에게 익숙한 나체는 명화나 미디어에서 등장하는, 비장애인 백인(주로 여성)의 매우 이상적인 몸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같은 지문을 가진 사람은 없는 것처럼 우리는 무수히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며 각자만의 몸‘들’로 타인을 보고 만지고 느낀다. 우리는 몸으로서, 몸을 통해, 몸과 함께 다름을 배울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다름’은 정제되고 균일한 언어로 만들어진 선언이 아닌 무질서하고 예측 불가한 몸으로 맺는 관계를 통해서만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름을 다루는 <센스 8>이 몸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다름을 혐오할뿐더러 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온전한 나’에 대한 애정과 존중을 기반으로 관계를 맺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우리가 몸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무수히 다른 몸들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그래서 <센스 8>이 보여주는 관계의 방식이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다시 말해 내 옆의 타인이 가진 엄청난 고유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 유일무이한 세계를 보고 듣고 말하고 마침내 끌어안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좀 많이... 손해가 아닐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광활한 이 세상에서 단 하나씩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희한한 확률의 우연성으로 서로 만나 눈을 보고 손을 잡고 온기를 나누고 자기만의 세계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일만큼 놀라운 일을 나는 아직 본 적이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다름으로 연결되어 사랑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이야기. 순진하고 유치하긴 하다. 하지만 <센스 8> 감독이 말했듯, 세상의 누구라도 사랑에 빠져 영원토록 행복하게 사는 이야기가 들려지지 않을 이유란 없다.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니 터무니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더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해피엔딩을 말해야한다. 그게 우리를 서로로 연결시켜주는 것이라면 더더욱.
조금 유치하지만, 나는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이 싫어지려 할 때 단추통에 빠진 바둑알의 입장을 생각해본다. 나와 똑같은 색, 똑같은 모양, 똑같은 얼굴들만을 매일같이 마주하다가 어느 날 동그란데 납작하고 구멍도 막 뚫려있고 무늬도 색도 무수히 다양한 존재들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낯설고도 놀라울까. 얼마나 신기하고, 또 궁금할까. 얼마나 알고 싶을까. 그런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게 잠시 괜찮아지기도 한다. 재밌어지기도 한다. 내가 느끼고 배우고 끌어안을 무수한 세계가 이 세상에 널려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