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라는 처방전
리코더를 사랑하는 친구분이 빌려준 책 [인문약방에서 내리는 문학처방전(박연옥 지음/느린 서재)]. 이제 막 돋아나는 새 잎을 닮은 상큼한 초록빛 겉표지에 여린 노란 띠지가 눈에 띄었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이었다. 문학처방전이라니.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막 사온 새 책을 흔쾌히 빌려주신다고 하셔서 염치 불구하고 빌려와 찬찬히 읽다가 프롤로그의 글에서 멈추었다.
내 질병의 미심쩍은 부분을 내가 스스로 정리한 이야기로
이해하게 되면 고통은 좀 줄어든다.
한 번쯤 이 점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고
후련히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도 위로가 된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은 줄어든다.
고통은 무적이 아니다.
-인문약방에서 내리는 문학처방전, 8p-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말들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쉬이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럼 말들은 폭풍처럼 내 마음 이곳저곳을 쓸어가다가 슬슬 자리 잡아가며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운 좋게 꺼내놓을 수 있게 되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 꽉 막혀 내 속을 휘젓던 고통이 줄어드는 것을 느낀다. 우리가 수다를 떨어야 되는 이유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글로 쓴다면 그것은 더욱 체계를 잡아간다. 말로 토해내는 것과 비슷한 듯 다른 시원함이 있다. 우리가 일기를 쓰는 이유다. 얼마 전에 읽었던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이 떠올랐다.
글쓰기는 과거의 재창조, 포이에시스*의 표명이다.
프루스트는 자신의 내면에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해 내는 능력을 상세히 검토한다.
그는 인생의 의미가 외부에 있지 않고
주도적인 상상력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단어들을 만들어내고 감각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자신의 고유한 방식 속에
인생의 의미가 존재하는 것이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책세상, 184p-
*포이에시스:
그리스어로 ‘제작’,‘생산’을 의미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활동을 뜻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이 둘을 나는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했다. 말이 되었건 글이 되었건, 이야기는 정리하는 과정에서 재배치되고 편집된다. 형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부유하며 고통을 유발하던 것들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정체가 밝혀진 감정이나 과거의 기억, 감각들은 더 이상 그렇게 공포스럽거나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희석되는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다. 문학이 처방전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러니까 그건 이를테면 정화시켜 주고 신성하게
만들어주는 문학의 작용이라든가 인식과
언어를 통하여 열정을 식힐 수 있다는 사실 같은 것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한 도정으로서의 문학,
구원해 줄 수 있는 언어의 힘,
인간 정신 전체를 두고 볼 때 가장 고귀한 현상인 문학적 정신,
문학하는 사람은 완전한 인간이며 성자와도 같다 -
이렇게 관찰하는 것은 사물을 충분히
세밀하게 관찰하지 않는 걸까요?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지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51p-
나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그것이 소설 속 가상의 인물일지라도)를 듣고 읽는 것도 결국 ‘나’를 알아가는 길이 된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하기도 하고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느낀 감정이나 감각, 기억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 된다. 나와 너의 고통과 기쁨, 슬픔을 나눠갖는다. 선한 것만이 내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질겁하다가도 다른 이의 이야기나 문학을 통해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시인하게 된다. 그렇게 나의 좁은 세계는 조금씩 확장되어 간다. 이야기는 나를 정화시켜 주고 구원해 준다.
싱그러운 초록빛깔이 예쁜 책 [인문약방에서 내리는 문학처방전]의 작가는 말한다. “고통은 무적이 아니다. 이야기가 약이다.” 매우 공감되고 위로가 되는 말이다. 이제, 나는 작가가 처방해 주는 문학들이 어떤 것이 있을지 기대하며 찬찬히 책장을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