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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카도 Jul 21. 2024

불안이 주도하는 <인사이드 아웃 2>에 대한 단상


존경해 마지않는 봉준호 감독님께서 어떤 인터뷰에서 '불안'이라는 요소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신 적이 있다. 신경정신과 약을 복용하시며 불안을 오랜 시간 동안 친구처럼 안고 지내왔다고 하시면서 1시간 반으로 늘려서 한 편의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하셨다. 불안을 테마로 하는 장면을 찍을 때 영화적 흥분을 느끼신다고 하는 대목을 보며 통달하셨구나 싶었다. 나 역시 봉준호 감독님만큼은 아니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을 거의 달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 불안이라는 놈은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류의 불안이 아니다. 불안함으로 인해 생기는 갖가지 생각의 행위를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는 달까.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의 타래를 지닌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일례로, 나는 항상 어깨에 힘을 주고 산다. 그래서 어깨에 힘을 빼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필라테스를 오랫동안 다니면서도 '회원님 어깨에 힘을 빼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힘을 빼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시종일관 답을 했으니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음을 감지하고 두 팔을 늘어뜨리고 최대한 힘을 빼보려고 노력 중이다.  오죽했으면 남자친구가 내게 어깨에 잔뜩 힘을 준 추사랑 같다고 했을까. 불안 때문에 항상 어깨에 힘을 주고 살아서인지 몇 개월마다 한 번씩 간헐적으로 머리에 못이 박힌 것 같은 통증을 느끼곤 한다. 두통인가 싶어 타이레놀을 먹어봐도 소용이 없길래 불치병에 걸린 건 아닐까 싶어 신경정신과에 다녀왔던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검은 선에서 중앙을 찍어보라든가 서서 걸어보라든가 등등 어떤 행위를 시키시더니 '당신의 병명은 긴장성 두통입니다.'라고 하셨다. 몸근육, 뇌근육이 뭉치신 거 같다며 내 예민한 성격을 고치라고 하셨다. 평소 긴장을 하면서 예민하게 사는 분 같다며 그 예민함을 내려놓으라나?



그렇다. 나는 무척 예민한 사람이다. 한때 예민함이라는 키워드에 관련된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예민함에 대한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적도 있었다. 그 수많은 책들 중에 내게 위안을 준 책이 하나 있었으니 '예민함의 힘'이었다. 예민함을 결함으로 보기보다는 예민함의 잠재력에 주목하라는 요지의 책이었다. 예민함을 지닌 사람은 예술가가 될 잠재력이 있으며 일상에서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배려하여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 타인에 비해 세상을 다르게 감지하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혹시 누군가 예민함으로 인해 괴로워한다면 이 책을 읽고 크나큰 위안을 받길 바란다.


어찌 되었든 사족이 길었다. 2015년경,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고 감동을 먹었던 나는 <인사이드 아웃 2>가 나왔다는 말에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인사이드 아웃 1>이 좋았던 이유는 무한긍정의 힘에 대해 운운하는 긍정강박사회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오롯이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다. '빙봉'이라는 녀석 또한 겨울왕국의 '올라프'만큼이나 귀여웠다. 애니메이션은 본 게 손꼽을 정도로 보지 않았던 나는 <인사이드 아웃 1>을 보며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그래서 엄청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한 기대는 실망을 낳기 마련이었는지 <인사이드 아웃 2> 극찬까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결국은 그래서 '기쁨'이가 다시 돌아와서 '불안'이가 벌여놓았던 일들을 착착 해결하면서 모든 감정들의 공존으로 그렇게 살아가자 하는데요. <인사이드 아웃 1>이 좋았던 이유는 '슬픔'을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 흔해빠진 편견을 뒤집었기 때문이란 말이죠.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 2>는 우리 '불안'이라는 아이를 악당같이 표현했단 말입니다. 게다가 평소 '불안'을 달고 사는 제가 보기에 '불안'의 특성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안'을 주인공으로 전면에 내세워서 사춘기 소녀가 '불안'이라는 요소를 달며 우왕좌왕하다가 봉준호 감독님처럼 '불안'을 동반자로 생각하는 스토리텔링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불안'이란 녀석은 남을 배척할 정도로 나쁜 녀석은 아니거든요. 한때 제가 꽂혔던 알랭드 보통 작가님은 '불안'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죠.


불안 덕분에 안정을 도모하기도 하고 능력을 계발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면, 이런 점과 관련하여 다른 감정들의 쓸모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우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서 취업을 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불안은 인생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일는지도 모르죠. 하지만 가끔 불안이 없는 사람들이 부럽긴 하답니다. 근데 뭐 어쩌겠어요. <인사이드 아웃 2>에서도 좋은 감정만 오롯이 남겨두기보다는 좋은 감정, 좋지 않은 감정, 뭉툭한 감정, 둥근 감정들이 우르르 쏟아지면서 공존할 때 제대로 된 주인공의 자아가 형성이 되잖아요. 가끔 저를 갉아먹는 '불안'이 때론 매우 밉지만 봉준호 감독님께서 '불안'을 친구로 생각하듯이 저 역시 '불안'을 제 친구로 삼아보려 합니다. 어찌 보면 저도 모르게 '불안'에게 미운 정이 들었을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우리 '불안'이를 악당처럼 묘사하는 <인사이드 아웃 2>가 탐탁지 않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하루하루 불안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아니 불안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든 분들이 '불안'을 애정하길 바라는 바입니다. 행쇼라는 진부한 말 대신, 불쇼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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