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대한 로망은 제로지만 신혼여행에 대한 로망은 있었다. 남들이 안 가는 굉장히 독특한 나라로 배낭여행을 함께 가는 그런 로망이랄까. 무슨 개똥철학이냐 하겠지만 아프리카나 인도 같은 곳으로 가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인도는 남미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남미보다 더 좋은 나라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었고 어릴 적에 한비야 책을 읽으며 세계여행을 꿈꿨던 나는 인도여행을 꼭 가보고 싶었다. 아무리 겁 없는 나도 인도는 뭐랄까 혼자 가기 무서운 나라였던 것 같다. 그래서 취준생 시절 아빠랑 같이 인도+티베트 자유여행을 계획했던 적이 있다. 비행기 티켓팅까지 했지만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취소했었다. 몇 달 후에 티베트에 자연재난이 일어나는 거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서 나와 결이 비슷한 남편이 생기면 인도로 신혼여행을 가자고 하거나 아프리카로 가자고 하고 싶었다. 작년 말부터 결혼이야기가 오가면서 결혼 '식'보다 '여행'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아프리카 패키지여행 링크를 남편에게 계속 보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의 반응은 'ㅡㅡ'였다. 남편은 외교부에서 아프리카 지역을 얼마나 위험한 국가라고 명시하고 있는지 자료를 보내오며 위험해서 안된다고 했다. 내가 남미에서 살아 돌아온 게 용하다며 불안정한 국가는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결혼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 논리적인 남편을 설득이 어렵겠다 싶어서 우리가 각자 다녀오지 않은 나라들을 소거해 나갔다.
'식'을 올리고 여행을 가는 게 보통 사람들의 진행방식이지만 그게 뭐가 대수일까 싶어서 남편 시간이 여유롭던 2월에 신혼여행 느낌으로 길게 가기로 결심하고 뉴질랜드로 갔다 왔다.(뉴질랜드 여행은 기록을 꼼꼼하게 하지 않아서 복기를 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오로지 나의 기억과 사진에 의존해서 언젠가는 복기를 하고 말 것이다.) 2월에 다녀온 뉴질랜드도 정말 좋았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지 않는 나라라서 좋았던 것도 있고 물가도 괜찮았다. 자연을 즐기고 싶은 분들이라면 정말 강력추천할 정도로 좋은 나라였다. 겨울에 여름인 나라로 가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신혼여행은 뉴질랜드로 기억될 줄 알았는데 8월 초에 남편이 딱 일주일만 쓸 수 있어서 어쩌다 보니 식을 올리고 나서 가는 평범한 신혼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여행에 투자하는것을 주저하지 않는 나는 식을 올린 후에 또 제대로 된 신혼여행을 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들떴다.
우리에게는 터키, 아이슬란드, 캐나다 밴프, 하와이. 이렇게 네 가지 옵션이 있었다. 일단 터키는 남편의 논리에 의하면 불안정한 나라여서 패스, 아이슬란드는 직항이 없어서 휴가가 한정적이었던 우리는 패스였다. 그러고 나니 캐나다와 하와이가 남았다. 자연을 무척이나 애정하는 우리 부부는 밴프와 하와이 사이에서 고민하며 유튜브 브이로그와 블로그 정보를 훑어봤다. 캐나다 밴프는 친구 한 명이 신혼여행 선택지로 고민해 보라며 알려준 곳이었는데 꼭 가고 싶다고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최근에 캘거리 직항이 생겼던 터라서 나쁘지 않았지만 뉴질랜드와 너무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막 끌리진 않았다.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하와이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했던 터라 하와이 관련 브이로그들을 보는데 죄다 별로라는 말들이 많았다. 특히 침착맨 하와이 후기를 보면 그냥 휴양지로 나쁘지 않다 느낌이라서 망설여졌다. 사실 우리는 누구 말에 휘둘려서 선택을 하는 타입도 아니긴 하지만 좋지 않은 말이 먼저 들려오니 갈팡질팡 상태였다. 극 P 무계획형 인간 둘이 이렇게 여행지에 대한 정보 조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고민을 아주 많이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뉴질랜드와 밴프가 비슷한 느낌이 아니었다면 캐나다 밴프를 갔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비슷한 콘셉트의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서 네가 가라 하와이를 가기로 했다.
내가 부케를 받았던 절친은 하와이에서 거북이와 물속에서 눈 맞춤을 하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며 하와이가 정말 좋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역시 날씨가 너무 좋다며 최고라고 했다. 음식을 기대하지 말라는 지인도 있었지만 '아사이볼'은 꼭 먹어보라는 친구도 있었다. 생각보다 주변에 하와이를 갔다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다 신혼여행으로 하와이를 갔다 온 사람들이었다. 남들처럼 하는 걸 싫어하면서도 남들처럼 살 때도 많은 나는 사람들이 신혼여행으로 많이 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3개월 전에 티켓팅을 하고 하와이를 가게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치밀하고 계획적인 사람들이 아니어서 하와이에서 필수품인 스노클링 장비도 출국 전날에 부랴부랴 구매했다. 짐도 출국 전날 싸기 시작한 우리는 28인치 캐리어 지퍼가 닫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출국 당일에 아웃렛에 가서 캐리어를 새로 장만했다. 아쿠아슈즈, 수모, 래시가드, 우산 등 필요한 물품들을 부랴부랴 구매해서는 공항에 겨우 도착했다. 준비성이 철두철미하지 못하지만 둘 다 똑같아서 싸울 일이 없는 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한다.
마티나 라운지 줄을 30분이나 선 다음에 들어가서는 1시간가량 있다가 나왔다. 전체적인 여행 아웃라인을 남편이 짰기에 그때까지도 나는 하와이 일정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빅아일랜드를 먼저 가고 호놀룰루를 나중에 간다는 정도? 라운지에서 음식을 많이 먹어서인지 기내식 쌈밥도 거의 남겼다. 언젠가부터 기내식을 정말 잘 먹지 못하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호기롭게 영화를 여러 편 봐야지 했지만 출국 시간이 저녁 시간이었던 탓인지 잠에 취해있다가 영화 한 편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얼렁뚱땅 하와이에 도착한 우리는 세관에서 기나긴 줄을 기다린 끝에 '한국돈 얼마 갖고 왔냐'라고 묻는 직원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다가 기분 좋게 세관을 통과했다. 오전 10시 40분 정도 도착한 우리는 3시간 후에 코나를 가야 했기에 하와이안 에어라인 쪽으로 가서 코나행 비행기를 발권해야 했다. 세관 줄이 생각보다 길어서 걱정했지만 3시간이 그다음 비행 편을 타기에 적당한 시간 같긴 했다. 미국 국내선 타는 곳은 우리나라 버스 터미널과 유사했다. 하와이안 에어는 수하물 2개에 45달러를 부과하길래 어차피 내 캐리어는 기내용으로 쓰면 될 거라 판단한 우리는 1개만 15달러에 부치기로 했다. 기내식을 거의 안 먹어서 배가 고팠던 나는 비행기에서 또 자고 코나 공항에 도착했다. 코나 공항이 에버랜드 같아서 진짜 공항 맞나 하는 의아함까지 들었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 들었던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드디어 실감이 났다. 아, 여기가 하와이구나. 날씨 좋음은 그때부터 느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와이는 '돈이 많으면' 지상 최대의 낙원인 곳이다. 꽤 많은 나라들을 여행해 봤지만 날씨가 이렇게 좋은 곳은 하와이가 압도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 그럼 8박 9일의 하와이 신행을 술술 풀어보겠습니다! 단언컨대 신혼여행 혹은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무조건 네가 가라 하와이 가십시오! 물가가 미쳤지만 인생에 단 한 번 가는 의미 있는 여행에 투자할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