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본 콘텐츠에 대한 단상
영화 <에일리언 : 로물루스>과 드라마 <돌풍> 강추
1. 영화 <에일리언 : 로물루스>
아이맥스로 봐서 더 실감이 났던건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미친 듯이 질러댔다.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 SF를 기대하고 갔는데 오들오들 떨다가 몸을 배배 꼬다가 옆에 앉은 남편을 때리다가 눈을 가리다가 혼자 난리 부르스를 떨었다. 익스트림 스포츠에 대한 겁은 없는데 귀신, 공포물에 대한 공포증은 상당해서 한마디로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다. 생각보다 호평이 많고 내 왓차피디아 예상평점도 3.5니까 나쁘지 않겠다 싶었는데 이런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나올 줄 몰랐다. 물론 예상 평점대로 3.5를 줬다. 어중간한 SF보다는 '공포감'을 한방에 선사한 이 영화가 낫다는 생각도 했다. 리들리 스콧이 만든 <프로메테우스>를 워낙 재미있게 봤기도 했고 마이클 패스벤더가 나왔던 <에일리언 : 커버넌트> 역시 나쁘지 않다 생각해서 평타는 치겠거니 하고 봤다. 물론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던 시퀀스도 있었다. 여주가 총으로 탕탕탕 쏘는데 촬영기법 자체가 너무 세련되었으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와 멋있다 장난 아니네 싶었다. 그 어떤 액션 영화에서도 못 느낀 감정을 공포영화에서 느꼈다. 공포 영화는 거의 안 본 내가 인상적으로 본 건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었는데 거장의 작품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페드 알바레즈 감독의 필모를 보아하니 공포영화의 장인이시던데 너무 무서울 것 같아서 필모 훑기는 하지 않기로 한다. 한때 SF 영화에 꽂혀서 웬만한 유명한 영화는 다 봤는데 플롯이 거의 비슷비슷해서 소재가 새롭지 않으면 딱히 매력을 못 느꼈었다. OTT 전성시대에 이 영화는 무조건 극장에서 봐야 할 극장용 영화라 생각한다. 체험형 영화랄까. 불쾌감+공포감+기괴함 3종 세트를 선사하니 스토리를 기대하기보다는 '공포심' 하나만 기대하고 가면 좋을듯하다.
2. 영화 <댓글부대>
'장강명' 작가님의 작품 <표백>과 <한국이 싫어서>를 워낙 애정해서 작가님 소설이 영화화된 걸 보고 싶었다. 극장에 걸려있을 때에는 딱히 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으나 넷플릭스에 떠 있길래 단숨에 봤다. 사실 원작은 안 읽어봐서 비교가 불가능하지만 충분히 흡입력은 있었다. 다만 내레이션을 딱히 선호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내레이션 말고 다른 구성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일단 손석구를 비롯한 여러 배우들의 생활형 연기가 워낙 좋아서 1시간 49분은 휘리릭 지나갔다. 생각보다 영화 내에서 최신 밈들이 많이 쓰여서 핍진성이 돋보였다고 생각했다. 곧 <한국이 싫어서>도 개봉하는데 사실 이 영화도 극장에서 볼 것 같지는 않다. 워낙 텍스트 자체가 훌륭해서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차이가 나면 괴리감이 클 것 같다.
3. 영화 <원더랜드>
탕웨이가 김태용 감독이랑 결혼하다고 했을 때, 영화계에서는 탕웨이가 아깝다는 말 못지않게 김태용 감독이니 가능하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 정도로 매력이 넘치시는 분이라 들었는데 감독님 필모 중 <그녀의 연기>와 <만추>, <가족의 탄생>을 정말 재미있게 봤던 사람으로서 고대하고 고대했던 작품이었다. 크랭크인은 오래전에 들어갔고 크랭크업도 되었는데 왜 이렇게 안 나오나 하며 기다렸던 사람으로서 대실망하고 말았다. 사실 극장에서 볼까 말까 하는데 평론가들 평이 너무 안 좋고 내 예상평점도 낮길래 OTT에 풀리면 봐야지 하고 있었다. 무비토커 언니가 오래된 화석 영화는 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며 별로일 거라 했는데 진짜 솔직히 너무 별로였다. 5번이나 끊어봐도 재미가 없었는데 극장에 있었다면 몸을 배배 꼬고 있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아마존 프라임에서 만든 드라마 <업로드>가 콘셉트는 비슷한데 더 잘 만든 것 같으니 차라리 그 요약본을 보라고 했다. 옴니버스 영화도 아니고 왜 그렇게 인물을 늘어놨는지 모르겠고 오히려 임팩트 있게 하나의 이야기만 우직하게 풀어냈다면 꽤 유의미한 스토리가 될 수 있었을 것 같다.
4. 드라마 <돌풍>
드라마는 작가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보좌관 출신 박경수 작가님 작품이라서 기대를 많이 했다. 일단 본인이 보좌관 생활하면서 보고 겪은 것들이 반영되었을 거라 생각하기에 현실 고증이 굉장히 탄탄한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사실 야욕이 가득한 정치드라마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방식에 놀라면서 이틀 만에 다 봤다. <내부자들> 봤을 때의 느낌이라 비슷하달까. 뻔하지 않아서 정말 좋았고 이런 욕망이 가득한 정치드라마라면 앞으로도 볼 의향이 있다. 작년에 본 <퀸메이커>는 대실망이었는데 <돌풍>은 제목처럼 휘몰아치는 전개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한다. 올해 내가 본 드라마 중 탑은 <삼체>였는데 <삼체>를 제치고도 남을 정도로 유의미한 드라마였다.
5. 드라마 <기생수 : 더 그레이>
연상호 감독님의 <부산행>과 <돼지의 왕>, <지옥>을 보면서 감탄했던 나는 <정이>를 보고 대실망했던 터라서 조심스럽기도 했다. 원작 만화 자체가 워낙 유명해서 원작을 능가하는 마스터피스가 나올지도 의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기생생물에 맞서 싸우는 인간들의 서사도 좋았고 인간의 그 득실거리는 욕망이 분출되는 방식도 좋았으며 그 와중에 마음 따뜻한 인간들이 연대해서 악에 맞서 싸우는 것도 좋았달까. 인간에게 상처를 받지만 결국 인간에게 의지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랄까. 그런 메시지도 정말 좋았고 꾸준히 마스터피스를 만들어내는 감독님의 행보가 경이롭다고 생각했다. <꿈의 제인> 보면서 구교환은 진짜 대단한 배우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구교환의 행보를 보면 제2의 하정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