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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Apr 29. 2019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야?

남편의 직업과 나의 상관관계

A는 대기업 임원이고 남편은 중소기업 직원 이야. B는 가정주부고 남편은 대기업 임원이야. 누가 사모님 소리 들을것 같니?
결혼하면 남편 직급이 곧 네 직급 되는 거야.

20대 중반이었던 나에게 8살 위 선배 언니가 해준 말이다. 그날은 선배가 선 같은 소개팅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서로 보는 게 많아져 연애하기 힘들다는 한탄과 함께 던진 말이었다. 선배의 결론은 여자의 사회적 지위는 남자에 의해 결정되지만, 결혼 생각이 있다면 남자가 있을 때 하라는 아이러니하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동갑이었던 동기와 나는 고개를 내 저었다.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니거니와 그렇게 살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보니 ‘사모님’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의지와는 더욱 상관없는 문제였음을 미처 알지 못했다.



결혼하고 언제부턴가 따라다니는 질문 중 하나가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이야?’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질문이다. ‘아버지께서는 뭐 하시니?’ 스무살 이전 학창시절 내내 지겹게 들었던말이다. 나는 비교적 말 잘 듣는 학생이었고 문제가 될 정도로 공부를 못 하지도 않았다. 어떤 선생님은 나에게 칭찬을 하며 묻기도 했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할까. 담임도 아니고 학기 초도 아닌데 내가 잘한 일을 칭찬하면서 아버지 직업이 왜 궁금한 것일까.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그저 의아 했다. 우리 집의 경제적 생활 수준을 가늠하고자 하는 질문이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남편에 대한 질문은 다르다. 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 예정인 회사 동료가 있었다. 우연히 모인 자리에서 동료의 복직이야기가 나오자 상사 중 하나가 이상한 듯 말했다.

그 집 남편 돈 잘 벌잖아. 복직 안하는 거 아니었어?

남의 이야기에 깊은 고뇌에 빠졌다. 내가 복직한 이유 중에 남편의 직업 혹은 벌이가 있었던가. 받은만큼 일하자는 것이 나의 신조였지만 월급이 일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럼 나는 무엇때문에 아이를 떼어 놓고 출근한 것일까. 아이를 떼어 놓고 출근하는 건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질문은 꼬리를 물고 한도 끝도 없이 늘어졌다. 만삭으로 출근 지하철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었다. “옛날에는 이러고 일하러 다니면 다들 남편 욕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그죠?” 그때는 그저 웃으며 고릿적 이야기를 하신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부터 였다. 남편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굉장한 선입견이 생겼다. 남편의 직업으로 나를 평가하려는 것 같아 불편하고 나도 잘 모르는 사람이 남편을 평가하려는 것 같아 더 기분이 좋지 않다. 다음에 다시 물어본다면 대답해 줘야지 하고 다짐해 본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대사처럼.


“나는 당신의 아내(혹은 남편)이 뭐 하는지하나도 안 궁금한데, 왜 우리 남편이 궁금할까.”


사진출처 : https://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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