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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Apr 25. 2021

'꼰대' 강박증

꼰대와 어른 사이 그쯤 어딘가

Y : 이러고 나가게? 클라이언트 미팅에선 슬리퍼 안된다니까?

H: 선배님 이거 슬리퍼 아니에요. 뮬인데, 모르세요?

Y: 아니, 누가 모른데? 뒤에 뚫려 있으면 다 슬리퍼지!


한숨 쉬며 고개를 돌리는 Y 눈이 마주친다.  Y 마음을 이해한다는  눈을 찡긋한다. 뒤가 뚫려도 앞이 막힌 신발이니 문제   없다고 생각하지만, 아침부터 찹찹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사무실을 들어왔던 H 문제였다. 고객과의 신뢰로 먹고사는 에이전시에서 '단정한 옷차림' 기준은 크게 진보되지 못했다. 더구나  팀의 클라이언트는 우리보다 조금 윗세대다. 사소한 문제로 계약이 오가는 마당에 쓸떼없이 책잡힐 일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대행사와 고객사는 파트너 관계이지만 실상은 갑을 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나의 옷차림이 우리가 하는 일과 무슨 상관인가? 사람이 일하지 옷이 일하나? 라고 말한다면  말은 없다. 나는 그러지 않았으니 너도 그러지 말라는 라는 구시대적 심리일 수도 있다.


난 우리 팀 막내 옷차림이 아침부터 초조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객관적인 기준에서 핫팬츠다. 회사에 명확한 복장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늘은 외근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보기 불편한 것도 아니다. 다만 함께 지나가다 마주치는 상사들의 눈초리가 불편했다. 이전에 내가 아직 신입이었을 때 팀장이 동기의 옷차림을 지적한 적이 있었다. 팀장 회의 때 신입사원들의 복장에 대한 의견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우리는 아니었지만, 마치 남에게 혼나기 전에 내가 먼저 혼내는 엄마처럼 팀장은 팀원들의 복장을 단속했다. 그런 팀장의 마음과 은근 고지식한 상사들의 기준을 알기에 우리 막내의 옷차림이 계속 눈에 밟힌다. 누군가 저 옷차림을 걸고넘어져 서로 기분 상하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과대망상을 하며 팀장 눈에 거슬리기 전에 내가 먼저 말해주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굳이 오지랖을 자처할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할 필요가 있나. 나의 과거 경험만을 가지고 현재를 통제하려는 것이 '꼰대'의 시작이거늘. 나는 챙겨준다고 한 말과 행동이 그는 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왔다 갔다 그 옷차림을 마주할 때마다 먼지 같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사회 초년생 때는 상사의 말들이 잔소리로 들렸다. 입으로는 '네'라고 대답했지만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게 그렇게 중요한가? 라는 생각을 늘 달고 살았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여전히 그건 좀 너무했어라는 것도 있고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지금도 대부분은 ‘네’라고 대답하지만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바락바락 대드는 강단이 생겼다. 아직 나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 여러 바람을 맞으며 생긴 단단함과  유연함이다. 당시에는 ‘꼰대’라고 욕하며 투덜 됐지만 그들의 말들이 나를 더 성장하게 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내가 틀린 적도 있었고 내가 맞다 확신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동안 권위적인 윗세대에 치이고 급변하는 새로운 세대에 치이며 절대 ‘꼰대’가 되지 않겠단 강박을 안고 살았다.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있나. 이미 ‘꼰대’의 반열에 올랐는가. 그 경계에 서있는가. 지금은 그저 내가 듣기 싫었던 말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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