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여자들 사이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위인 여자를 정답게 부르는 말
사람 관계에서 호칭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자연히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호칭 정리에 신경 쓰는데 가끔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으면 그 관계 자체가 애매하게 느껴지곤 한다. 호칭은 그와 나의 관계 정의고 내가 상대를 어떻게 대할지 정해주는 가이드다.
내가 좋아하는 호칭 중 하나는 '언니'다. 여자들과의 유대를 소중히 생각하는 나에게 '언니'는 굉장히 친근하고 다정한 호칭이다. 언니라고 불리는 것도 언니라 부르는 것도 좋다. 나를 언니라 부르는 사람은 친동생이 거의 유일한데 동생이 언니라 부를 때마다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
나를 언니라 불러야 하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 나보다 2살 많은 남편의 동생이다. 난 2살 어린 동생을 아직도 오구오구하며 토닥일 때가 있는데 2살 어린 나를 언니라 불러야 하는 시누는 어떨까. 난 나대로 영화 아가씨를 연상시키는 '아가씨'라는 말이 퍽 난감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부르지 않는다. 그저 친한 사이도 나쁜 사이도 아닌 채로 물 흐르듯 고요히 지낸다. 차라리 내가 언니라 부르면 좋으련만.
내가 누군가를 '언니'라 부르게 되면 폭풍 질문과 함께 수다쟁이가 된다. 말의 시작과 끝을 언니로 장식하며 언니에게 세상 모든 답이 있는 듯 물어볼 게 많아진다. 그렇다 보니 '언니'의 남용을 꺼린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 언니라 부르면 뒤로 물러나게 되고 언니라 부르길 요구하면 입을 꾹 닫아버린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새로운 언니 집단이 생겼다. 아이를 낳고 생긴 '엄마'라는 특수집단이다. 일단 조리원에서 만난 언니들은 나의 인간관계 범주에 속했다. 아이의 이름이 없을 때라 통성명을 하며 관계를 시작했고 육아 시작 전 단계였기에 본인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하지만 그 이후 아이로 인해 알게 된 언니들은 조금 달랐다. 우선 기본적인 통성명을 하지 않는다. 그저 '누구엄마' 그뿐이다. 아이의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챙길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에 본인 이야기를 할 시간도 없다. 아이들 이야기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고 언제나 급하게 만나 급하게 헤어진다. 이런 엄마들 집단에서도 자연스럽게 나이가 공개되면 '언니'라는 호칭을 쓰게 되는데 난 아직 그러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엄마인 난 첫째 아이 엄마들 사이에서는 가장 어리다. 그럼에도 언니라는 말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우린 성인이고 서로의 정체성이 명확하기에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이 분명하다. 난 모두를 언니라 부르고 싶지 않아 모두를 언니라 부르지 않는다. 나의 인간관계인 듯 아닌듯한 이 언니들을 난 어디까지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와 맞지 않는다고 성격대로 관계를 끊을 수도 없다. 한동네에 살면서 언니들 덕을 보는 경우도 많다. 특히 형제가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하이퀄리티 정보다. 아이와 관련된 난감한 일이나 궁금한 것은 언니들과의 대화에서 대부분 해결된다. 고마운 언니들이지만 늘 아이가 함께인 관계니 어렵고 조심스럽다. 멀고도 가까운 언니다.
어쨌든 나에게 '언니'로 묶인 관계는 살면서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