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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 Jan 24. 2021

도대체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가

얼마큼 알아야 스스로 전문가라 생각할 수 있을까

나는 얕고 넓은 지식을 열망하는데 사람을 만날 때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지식으로 상대의 관심사를 빠르게 찾아내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은 나에게 큰 성취감을 준다. 낯선 일을 시작할 때 두려움이 낮은 것은 나의 강점 중 하나다. 그동안의 직업도 이런 성향과 능력을 반영해 선택했는데 늘 고민이 되는 한 가지가 있었다. 과연 나는 어떤 전문성과 경쟁력을 갖고 있는가.


대학 시절 복수전공으로 문헌정보학을 공부했다. 처음 대학도서관을 입성해 온갖 전공서적을 마주 했을 때의 감동이란. 학과 이름도 ‘문헌정보학’이라니 사서는 세상 모든 지식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졸업할 때가 다가오자 사서로 남으려고 결심한 이들은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거나 경력을 쌓기 위해 계약직 직원으로 들어갔다. 그때 난 복수전공 탓에 사서로서 자질이 부족한 건 아닐까 생각해 공부를 더 해야겠다 결심했다. 그리고 이어서 2년을 더 공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경력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는 국립중앙도서관 계약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경험한 도서관 계약직이란 사서 인 듯 아닌 듯 경계에 있는 애매한 존재였다. 대부분 단순한 업무에 정해진 틀 이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든 경력이 있어야 정규직 면접 기회라도 얻을 수 있었기에 정식 사서공무원보다 훨씬 더 많은 계약직 직원들이 도서관 유령처럼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그 속에서 회의감을 들게 한 건 같이 일하는 사서들과 이용자들의 태도였다.


어느 날 시스템 오류로 온라인 대출이 불가한 도서가 있었는데 제대로 된 담당자를 찾지 못해 여기저기 돌려진 전화를 내가 마지막으로 받았다. 전화를 받자마자 쌍욕이 귀에 내리 꽂혔다. 그런 쌍욕을 직접 내 귀로 듣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문제를 해결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밀려오는 억울함은 감출 수 없었다. 일단 나는 담당자인 나에게 연결이 바로 되지 않은 이유를 모른다. 1년 단위 재계약 직원이니 담당자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라 추측할 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었고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상관에게 몇 가지 제안을 했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여기라는 것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도서관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저 정해진 틀에 맞춰 움직이면 되는 것이라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사서는 그저 관리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용자에게도 사서는 정보 전문가가 아닌 도서관 문지기였고 무엇보다 어느 누구도 그 이상을 원하지도 않았다. 난 공부를 이어갈 마음이 없어졌다. 묵묵히 내 자리를 지키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지도 않았다. 쓰던 논문을 접고 퇴직금도 없었던 계약직은 사직서를 냈다. 그리고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웹기획을 하고 싶었는데 개발자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곳에서 채용하길 망설였다. 더구나 나이에 비해 경력도 없었다. 그래도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최대한 공을 들여 웹에이전시 취업에 성공했다. 에이전시 특성상 다양한 분야의 일을 진행했는데 오히려 더 좋았다. 대부분 시간이 들고 아이디어를 쥐어짜야 하는 일이었지만 여러 분야를 습득해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하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팀과 협업하는 것도 좋았다. 하지만 간혹 커뮤니케이션의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었는데 역시 개발팀이 문제였다. 기획 단계에서 하나만 어긋나도 개발은 전체를 뒤집어엎어야 했다. 쏟아지는 전문용어 속에 시커먼 바람막이 차림의 개발자들과의 회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잘 모른다는 이유로 어설프게 일을 할 순 없었다. 일단 입은 닫고 귀를 열어 한자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 새로운 언어를 익히듯 공부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은 시기에 입사한 개발자를 찾아가 하나하나 확인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물질 공세는 물론 기획단계에서만 공유된 정보를 슬쩍 흘려주기도 하고 개발자의 편의를 위해 클라이언트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시기가 지나자 개발자 없이도 프로젝트 초기 단계를 기획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웹기획자의 개발 지식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고민이다. 이 문제는 기획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나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클라이언트와 실무자 사이에서 말만 옮기는 앵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개발과 디자인적 역량을 어디까지 키워야 하는 것인지 말이다.  


이런 고민은 자유기고가 활동을 하면서도 이어졌다. 불특정 다수가 보는 글에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진 않았지만 너무 아마추어같이 보여서는 곤란했다. 그나마 취재 후 쓰는 글은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수 있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글은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한 번은 현대인의 잘못된 자세와 관련된 질병과 예방법에 관한 글 의뢰가 들어왔다. 편집자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의 길지 않은 글을 원했지만 쓰는 입장에선 괜히 긴장되었다. 돈을 받는 작가로 일한 경력이 오래지 않아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나의 얕은 지식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웠다. 작가의 경력은 지식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걱정을 덜 하게 되는 것이라는 선배의 말을 위로 삼아 당당한 척 글을 보냈어도 행여 틀린 정보가 있을까 노심초사했다.


직업의 전문성은 결국 나와 타인 모두가 인정해야 생긴다. 스스로 나는 전문가라 칭해도 주변의 인정이 없으면 궤변을 늘어놓는 잘난척쟁이가 된다. 심하면 사기꾼이 되거나. 또 타인은 전문가라 평해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회사 앞에 장사가 아주 잘 되는 칼국수집이 있었다. 그곳에 사장님과 손발이 잘 맞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어찌나 손이 빠르시고 민첩하신지 늘 손님이 넘쳐나는 곳이었음에도 얼굴 붉히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어쩌다 그 아주머니께서 쉬시는 날엔 꼭 티가 났다. 주문이 누락되거나 유독 기다리는 손님이 계시거나 하는 일이 생겼다. 식당 종업원이 저렇게 전문적일 수 있다니. 아주머니도 늘 힘 있고 자신감 있게 손님을 대하셨다. 나의 전문성은 여전히 고민이지만 버라이어티한 포트폴리오를 꾸려가며 타인과 나를 모두 만족시키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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