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나의 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나 Dec 27. 2020

내가 불편한가요?

누군가에는 불편했던 나의 말들

난 통제형 인간으로 자랐다. 여자이기 때문에, 동생 둘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이유로 많은 부분을 절제해 왔다. 어려서는 그렇게 스스로를 통제하다 성인이 되어서는 주변을 통제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동안 나의 주변은 이런 성격을 친절하고 다정하다 말해주었는데, 그게 얼마나 운이 좋았던 것인지 서른 살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입사해 시작한 기획일은 즐거웠다. 맡은 프로젝트의 모든 일정을 알고 관여하는 기획은 그야말로 천직이었다.  에이전시 특성상 야근이 잦았어도(라떼는 그랬다) 끼니만 잘 주면 큰 불만이 없었다.  그래도 종종 피곤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큰 위로가 되었던 건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동기였다. 그는 나보다 어렸지만 쿵작이 잘 맞았다. 발표 준비를 할 때는 내가 카피를 쓰고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템플릿을 만들어 같이 정리했다. 서로 하는 일에 박수 치며 칭찬해 주고  힘든 일이 생기면 같이 욕하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도 나를 사적인 자리에서 가끔은 언니라 칭하며 살갑게 대했다. 난 우리의 관계가 누구보다 돈독하다 생각했다. 그 생각부터가 잘 못된 것이었을까. 그에게 최측근에게나 하는 오지랖을 마음껏 부렸던 것 같다. 끼니는 잘 챙기는지,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는지, 불필요한 야근을 하는 건 아닌지.


시간이 흘러 난 출산 휴가와 육아 휴직을 했고 1년 만에 같은 자리로 복직했다. 그는 비슷한 시점에 이직을 했는데 난 그럼에도 우리의 관계가 지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몇 번의 연락으로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직감했다. 그는 원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와의 관계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왜지. 당황스러웠다. 인간관계 눈치는 모자라다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그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나의 말들이 불편했던 것이다. 나의 걱정은 잔소리였고 조언은 듣고 싶지 않은 충고였던 것이다. 그는 그저 거절이 서툰 사회초년생이었고 난 떠들기 좋아하는 회사 동료였다.


생각에 잠겼다. 내심 서운했다. 그가 나에게 싫다고 표현한 적이 있었나. 내가 기분 상하게 하는 말을 했던가. 사실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내가 불편했고 난 그걸 깨달은 이상 예전 같이 그를 대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연락을 줄였다.  어쩌다 오는 연락에는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이런 낌새를 눈치챈 그는 자주 연락 해오며 시시콜콜한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렇게 눈치를 봤었구나. 배신감과 짠함이 함께 밀려왔다. 난 서로 불편한 이 관계가 지속되는 게 싫었다. 결국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고 끝내는 것도 내가 하는 것 같았지만 연락이 올 때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었다. 난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우리 관계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예전 직장 동료로 남을 테니 우연히 만나면 인사나 하고 지나가자고. 그리고 그는 고맙다는 말을 끝으로 나와의 사적 인연을 끝냈다.


여전히 난 가족과 지인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나의 말을 받은 그들은 도움이 되는 건 고맙다며 받고 듣기 싫은 건 괜찮다며 거절한다. 난 이제 조금 더 기쁘게 받고 쿨하게 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