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만들기

임테기의 노예가 되는 건 한순간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둘째를 낳아야겠다 결심하니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생리 주기가 긴 편인 나의 배란일은 일 년에 열 번 남짓.  배란일을 맞춰도 정자와 난자가 수정될 확률과 정상 착상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그 와중에 생일이 9월 안쪽이었으면 하는 바램까지 있으니 지체할 시간이 없다.

가장 먼저 복용 중이던 피임약을 끊고 나의 평균 생리 주기를 기준 삼아 배란일을 계산해 본다. 예상일 중심 일주일을 가임기간으로 보고 2~3일 간격으로 거사를 치른다. 그리고 14일 뒤. 생리가 없다. 설마 한 방? 아니다. 계산이 틀렸다. 몇 년 동안 스스로 생리를 한 것이 아니니 주기를 다시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지 싶었다.

두 번째 달엔 좀 더 확신을 하고 디데이를 잡았다. 생리할 때가 다가오니 온몸의 세포가 일어나듯 모든 증상에 신경이 곤두선다. 아랫배가 당기는 것 같고, 몸이 피곤해 까라진다. 생리 예정일이 일주일이나 지났다. 혹시? 임테기의 노예가 되어 매일 아침 화장실로 향한다. 그러나 땡! 이번에도 빗나갔다. 이번 주기는 왜 이렇게 길고 난리. 불확실한 나의 난소와 자궁이 원망스럽다. 

세 번째 달엔 좀 더 체계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해 처음으로 배테기*를 구입해 보았다. 배테기는 일정한 시간에 매일 측정해야 한다. 배테기는 임테기*와 다르게 매번 두 줄이 보이는 것이 정상인데 두 선 모두 진하게 나타날 때가 배란일이다. 오전보다는 오후가 더 정확하다 하여 첫째를 데리러 가기 전 시간에 테스트를 하기로 정했다. 정확한 결과를 위해 종이컵에 소변을 받아 측정한다. 앞은 흐리고 뒤는 진한 두 줄이다. 오늘은 아니다. 그래도 빨간 두 줄을 보니 기분은 괜히 좋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매일 소변을 받는 심정이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회의감이 밀려온다. 종이컵도 아까워 첫째의 휴대용 소변통을 소독해 사용했다. 그렇게 몇 번의 소변을 더 받아 내고 드디어 선명한 두 줄이 보였다.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며 회식 금지령을 내린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한껏 기대에 부풀에 증상놀이*를 시작한다. 그러나 정확히 14일 뒤 붉은 피가 팡팡 흐른다. 나의 난소와 자궁은 매우 정확했다. 

첫 째는 결혼 두 달 만에 찾아왔다. 그때 난 주변에 아이가 있는 지인은 고사하고 기혼자도 찾기 힘들었을 때라 아는 게 참 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건강하다니 라며 자만했었다. 새삼 우리에게 와준 첫째가 기특하고 고마워진다. 임신을 계획한 지 고작 세 달 만에 마음이 피곤하다. 실패를 확인하고 다음 배란일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곤혹스럽다. 돌아가는 일상 속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쫓아다니니 마음 한편은 늘 심란하다. 인력으로 한계가 있는 문제라는 걸 잘 알면서도 마음 편히 기다리는 것이 어려웠다. 그나마 첫째를 보며 외로운 마음을 위로한다. 문득 더 많은 시간과 마음을 첫 임신을 위해 쏟는 사람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그렇게 난 난임부부의 마음고생을 아주 조금 실감하며 유튜브 난임 영상에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며 밤을 보냈다.  

어쨌든 우린 예전보다 바빠졌고,  밤마다 안 자려고 버티는 첫째도 있다. 배테기는 더 이상 사용하고 싶지 않았지만 에너지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했기에 다음 생리가 지나면 산부인과에 가서 날을 받아 오기로 하고 네 번째 달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마음이 내려놓는다고 놓아 지나. 생리일이 다가오자 마음이 다시 일렁인다. 임테기를 꺼내 화장실로 향했다. 얼마 뒤 화장실에서 급하게 나와 거실 창 밝은 빛에 테스트기를 들어 확인한다. 매직아이*인가? 두 줄인 듯 아닌 듯 애매하다. 저녁때 임테기를 하나 더 꺼내 확인한다. 아무래도 이건 한 줄이 아닌 것 같다. 회식 중이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근처 약국에서 얼리 임테기를 사 오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우린 다음날이 되기 전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다.

*배테기 : 배란일 테스트기

*임테기 : 임신 테스트기

*증상놀이 : 여러 임신 징후를 예민하게 반응하며 임신 여부를 가늠하는 것을 이르는 말

*매직아이 : 임신 극초기에 나타나는 임신 테스트기의 흐릿한 두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