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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H Apr 18. 2022

회사가 지독한 문서주의에 빠지면 생기는 일

이럴 거면 결재라인에 직원 모두를 넣는 건 어때요?

급하게 자금 처리가 필요한 상황이 생겼다. 급한 건인만큼 오늘 바로 돈이 나가야 한다. 내가 재직 중인 회사는 서류를 올리면 서류가 최종 승인이 난 날을 기준으로 익일 입금이 원칙이다. 어쨌든 원칙은 그렇다는 거고 이건 오늘 당장 처리해달라고 분명 위에서 지시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자금이 당장 집행될 수 있는 건 아니고 어쨌든 양식에 맞춰 서류를 올려야 한다. 서류를 올리는 건 어렵지 않지. 그런데 문제는 이제 그 서류가 빠르게 승인이 나기 위해 결재라인에 있는 모두에게 일일이 연락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 문서 승인을 해달라고. 나만 마음이 급하다. 이 서류가 최종 승인이 나야만 자금이 오늘 안으로 지급될 것이니까.


그래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위에서 급하게 지시가 내려온 만큼 결재라인에 있는 모두에게 구두 승인을 받은 건이다. 그리고 이제 최종 승인만 나면 된다. 그럼 곧 자금 집행이 될 것이다. 급했지만 어쨌든 됐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해당 문서를 반려처리당했다. 이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그거 새로 쓰는 게 뭐가 어려워? 이것만 좀 추가해서 다시 올려줘. 

라고 이야기하는데 그래 서류를 작성하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다만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건 다시 처음부터 결재라인을 따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결재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거지.


우리 회사는 하나의 서류를 최종 승인 받는데 결재라인이 길다. 총 세명. 세 명이 길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회사의 전체 인원이 20명도 되지 않는다면? 그래 문서로 정리하는 거 중요하지. 하지만 문제는 직원들과 약속된 시간에 딱딱 결재 승인이 나지 않는다는 것. 또 다른 문제는 불과 며칠 전에 최종 승인 난 문서와 똑같은 양식으로 올렸는데 그때는 됐고 지금은 반려가 된다는 것. 그래서 실무진들의 모든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문제다.


내가 회사에서 올리는 문서는 대부분 자금과 관련된 것이다. 어디와 무엇을 진행하기로 했으니 입금이 필요하다, 무엇을 위해 어디에 얼마만큼의 돈이 입금되어야 한다. 물론 나는 그리고 다른 직원들은 그 어떤 것도 위의 승인 없이 진행하지는 않았다. 구두 승인을 받았고 서류를 올리라는 컨펌이 떨어진 후에 모든 것들을 진행한다. 그런데 막상 서류를 올리면 이건 왜 이렇게 했냐, 저건 왜 이렇게 못하냐 다양한 이유로 반려가 난다. 그리고 당연히 자급 집행은 기약 없이 밀려버린다. 윗사람들이야 서류가 그날의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려를 해버리면 그만이겠지. 결국 거래를 하는 업체에 사과를 하고 다시 일정을 맞춰야 하는 것은 우리들이니까.


사실 이렇게 자금 처리가 하루 이틀 밀린다는 건 그저 돈이 하루, 이틀 늦게 지급된다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약속한 시간에 입금이 되지 않는다는 건 해당 업체와 우리 회사 사이의 신뢰가 깨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모든 것은 돈을 위해 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의 장점이라면 유연한 업무처리와 상호 간의 빠른 소통이 아닐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문서주의에 빠져버린 회사도 있다. 물론 문서를 정리하고 검토를 받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하나의 문서에는 연관되어 있는 많은 일들이 있다. 문서 하나 새로 쓰는 게 뭐가 어려워? 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서로 인해 스트레스받는 것은 실무진들이라는 것을 경영인들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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