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럽여관 Jan 06. 2022

[스타트업 저널 #2] 피버팅 너머 피버팅

유연하고 냉철하게 

첫 아이디어부터 완벽하게 설계되고 기획되고 실행되어 그 어떤 피버팅(pivoting)도 필요로 하지 않고 사업을 성공 가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아직 그런 회사는 본 적이 없다. 

*Pivoting: 현재 사업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의 니즈를 만족시키지 못할 때, 비즈니스의 방향을 바꾸는 일


약 1년여 경험을 해보니, 만약 완벽이 허상이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면 결국 몸집이 작은(돈도 사람도 없을 확률이 높은 상태) 스타트업의 성공 여부는 피버팅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린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좋은 피버팅은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유연한 사고 & 전략적 대응'이 가능한 브레인의 집합이 좋은 피버팅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팀의 자질이 의심된다면, 혹은 나 자신이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사업을 지속할 것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땐 기존 시장에 있는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백지상태의 사업 초기에는 단순하게도 그것이 차별성이고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켓플레이스로 기능하며 선생님과 학생을 연결해주고, 동시에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글쓰기 첨삭 기능에 프리랜서를 모집하고, 또 내부 인력을 충원해 콘텐츠와 기술을 개발하고.... 



결국에 닿고자 하는 지점이 높고 넓은 곳인 것과 시작부터 높고 넓게 하려고 하는 데에는 큰 차이가 있다. 아이템의 끝을 뾰족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배운 건, '김밥'만 파는 분식집이 떡볶이랑 만두를 팔 줄 몰라서 안 파는 게 아니라는 것. 김밥만 팔았을 때 얻어지는 브랜드의 밀도 높은 이미지와 두터운 단골층을 더 중요하게 보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의 경우, 1차적으로는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아이디어는 너무 큰데, 사람은 둘뿐이었다. 약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이 가능한 무료 마케팅 채널을 모두 관리하는 동시에 웹사이트를 업데이트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여러 정부 지원 사업 및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지원서를 써서 보내고, 투자 유치를 준비하고, 또 부지런히 사이트에 올라갈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지원 사업에 선정된 이후에는 필요한 교육을 듣고 서류를 준비하고 채용을 진행하고 월급을 주고..., 눈앞에 급급한 일을 해결하기에 바빴다.  


한 10년을 생존에 대한 고민 없이 일해도 된다면야 그렇게 일해서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데쓰밸리도 가기 전에 물거품이 되고 싶지 않으면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래서 아주 초기에 나 름 대 로 1차 피버팅을 크게 했다. (자잘한 피버팅은 사이사이 계속됨, lean lean lean) 자체적으로 학습 도구와 콘텐츠를 제작해 제공하는 웹서비스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학생과 선생님, 학습자와 학습 공급자를 연결해주는 마켓플레이스형 플랫폼이 될 것인지 고민했다. 후자를 하기에는 시장의 기존 플레이어들과 당장 차별화를 하기 어렵고, 또 무엇보다도 우리가 잘하는 일이 콘텐츠에 있다고 생각해 방향을 좁혔다. 


그리고 작년 하반기 내내 웹사이트 방문자 데이터를 분석하며 타깃 고객군 역시 전 세계 학습자 → 영미권 학습자 → 미국인 학습자로 점차 축소해나갔다. 가능한 한 빠르게 유료 모델을 런칭해 고객의 반응을 보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쉼 없이 콘텐츠를 쏟아내며 달렸다. 


하지만, 만 명이 넘는 우리의 학습자는 기대처럼 빠르게 혹은 강하게 유료 모델에 반응하지 않았다. 유료 전환이 더디고, 소소하게 일어났다. 이대로는 성장을 지속할 수 없다는 걸 직감으로 깨달았다.


뭐가 문제일까?


정부 지원 사업 마무리와 함께 몇 개의 발표와 데모데이가 끝나고 12월 말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을 돌리고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사업의 현재를 직시하고 문제를 파악했다. 문제점이 명확했다. 많은 학습자가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우리가 만든 것을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너무 많은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구독 금액이 비싸기 때문에, 원하는 콘텐츠가 없기 때문에 등등. 가능한 많은 것을 고려한 높은 수준의 피버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 지도 교수님이 내게 grit이 있다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했는데, 초기 데이터에서 예상한 것과 다른 패턴이 보여서 데이터 해석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공들여 진행한 일이 뜻처럼 되지 않았음에도 좌절하는 기색 없이, '또 하면 되죠'라고 답하는 나를 보고 교수님이 웃으며 해주신 말씀이다. 안되면 또 해보면 되고,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에서 일어난 일, 외부의 의견 따위로 인해 딱히 영향을 받지 않는 편인데, 나는 이게 일하는 사람으로서 또 성장하는 인간으로서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하여튼, 이 에피소드를 끌고 온 이유는, 내가 대체로 이런 사람이다 보니 나는 당연히 이 신호를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2021년에 세운 단기 목표를 달성했고, 그랬기에 이제 전에는 보지 못한 문제점을 볼 수 있는 지점까지 왔고, 이 시점에서 차분히 고민하고 신중하게 의사 결정을 하면 더 큰 도약이 가능해 보였다. 유저 인터뷰를 계획하고 준비할 단계였다.


그런데 동업자는 달랐다. 데이터를 보려고 하면, '하지만, 어떤 사람은, 몇 명은, 나는' 같은 추상적인 단어를 끌고 들어와 논점을 흐렸다. 사이트에 결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워했다. 여러 차례 이대로는 사업을 지속할 만큼 수익을 낼 수 없다고 어필하고, 일과 개인적인 감정을 분리해서 생각하라고 권했다. 끝내 사이트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지만, 이후에도 특정 페이지나 기능을 없애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감정적으로 방어적으로 대응했다. 점점 대화가 피곤해졌다. 


결국 돌고 돌아 문제는 사람이었다. 적합한 사람을 버스에 태웠는가?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게 됐다.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스타트업 저널 #1] 프롤로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