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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ㄱㅁ Sep 06. 2021

내가 기절한 이유가 우울증 때문이라니

약과 이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단행본 발간 기념 북토크를 마치고 기분이 좋아 선배와 거하게 양갈비를 뜯었다. 평소 마시지도 않던 알코올까지 곁들일 만큼 퍽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느즈막이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고 있는데 앗? 갑자기 속이 울렁울렁하고 배가 살살 아파왔다. 촌스럽게 비싼 양갈비 좀 먹었다고 이러는 걸까? 참다 참다 안 되겠다 싶어 다음 역에서 내리기 위해 지하철 문 앞에 섰는데,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누군가의 다급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더니 내가 지하철 바닥에 누워있는 게 아닌가. 벌떡 일어나 열린 문 사이로 비틀거리며 내렸다. 머리는 계속 빙글빙글 돌고 속이 메스꺼웠다. 결국 화장실까지 가지도 못하고 지하철 쓰레기통에 구토를 하고 말았다.(정말 죄송합니다. 환경미화원님...) 한동안 의자에 앉아 손을 주무르며 휴식을 취했더니 다시 상태가 멀쩡해지는 게 아닌가. 32살, 아직 이렇게 갑자기 쓰러질 나이는 아니지 않는가? 하긴, 그럴 나이가 어디 있긴 한가 싶다. 난생처음 겪는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 뒤로도 앉았다 일어나거나 누웠다 일어날 때마다 눈앞이 캄캄해지거나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질 뻔한 일이 잦았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구토를 하는 날도 생겼다. '나 어디 문제 있는 거 아니야?' 등줄기가 섬뜩해져 인터넷 검색창에 증상을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아무래도 내 병명은 '기립성 저혈압' 같았다. 기립성 저혈압은 갑자기 몸을 일으킬 때 순간적으로 핑 도는 증상을 호소하면서 때론 기절을 하기도 하는 병을 말한다. 하지만 내가 기립성 저혈압이 나의 병명이라고 추측한 데에는 증상보다는 원인에 있었다. 항우울제 복용.


얼마 전 바꾼 항우울제가 아무래도 부작용을 야기한 듯했다. 살을 10키로나 찌게 하더니 이젠 기절까지 시킨다. 병원에 가 증상을 말했더니 역시나 약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요즘 증상이 많이 호전되어 점차 약의 용량을 줄여가던 터라 이참에 조금 더 약의 용량을 줄였다. "올해 안에는 약 끊을 수 있겠어요." 곧 약과 이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또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한들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알죠?" 선생님은 매주 같은 말을 주문처럼 내게 주입한다. 처음에는 오히려 반감까지 불러일으키던 말이었다. '나한테 일어난 일을 어떻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어?' '이게 어떻게 아무 일도 아니야?' '더 나빠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고?' 하지만 주문은 통했다.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세상에 내가 어쩌지 못할 일도 있다는 걸.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고 포기해야 하는 일도 있다는 걸. 여전히 그 사실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지만 조금씩 체념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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