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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ㄱㅁ Sep 06. 2021

기도하는 마음으로 롤을 마는 원장님

직업을 대하는 태도


2주 전 충동적으로 앞머리 볼륨매직을 했다. 곱슬이 심한 나는 주기적으로 매직을 해야 하는데 때를 살짝 놓쳤더니 앞머리가 굽슬굽슬해 신경이 쓰이던 찰나, 지나가다 꽤 괜찮은 미용실에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앞머리 펌을 해주길래 무턱대고 들어가 머리를 했다. 결과는 참패. 커트는 숱과 층을 너무 쳐놓은 나머지 머리가 휘리릭 줏대없이 휘날리고, 앞머리는 분명 볼륨매직을 했는데 어째 곱슬이 그대로다. 게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앞머리고 옆머리고 지지직 다 태워버려서 지저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오마이갓. 내 머리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태연하게 덥석 카드를 받는 디자이너를 미용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냅다 씹어댔다. 아니 머리를 이따위로 하고도 네임택에 디자이너라는 호칭을 달 수 있단 말이야?! 창피한 줄 알아야지! 


들인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 버텨보려고 했지만, 참다 참다 아예 머리 전체를 엎을 마음으로 다시 원래 다니던 미용실에 갔다. 머리를 이곳저곳 들춰보던 원장님 손이 내 옆머리에서 멈췄다. "고데기를 얼마나 하신 거예요? 머리가 다 타버렸어요." 흔들리는 원장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죄인 모드가 되어 2주 전 나의 이탈을 고백했다. "아... 갑자기 앞머리 펌은 왜 하신 거예요..." 이것은 나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타버린 내 머리를 향한 쓰라린 탄식이었다. 아니 이게 자기 머리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참혹해 할 일인가? 그 뒤로도 원장님은 내 옆머리와 앞머리를 수십번 만지며 에센스인지 뭔지를 계속 뿌려댔다. 


"지영 씨도 기도하는 마음으로 롤을 말아요. 저는 지금 그렇게 롤을 말고 있거든요." "앞머리와 옆머리 손상이 심하니까 이쪽은 제가 사인을 주면 약 발라주세요." "시간 되면 바로 가서 머리 감겨야 해요. 체크 꼭 해주세요." 원장님은 이미 상할 대로 상한 내 머리가 더 망가질세라 틈틈이 와서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후로도 원장님은 내 머리카락과 혼연일체가 되어 화려하고 세심하게 머리를 매만졌다. 장인이 별거 인가, 자신의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진지하고 간절하다면 이 또한 장인이 아닐까 했다.


글을 쓰면 밥벌이를 해 온지 어언 7, 8년이 되었다. 지금 나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쓸까. 밤새 글을 다듬어가며 속앓이를 했던 시절도 있었고, 이 작가 저 작가의 글을 필사해보며 애끓어 했던 때도 있었다. 수십 년을 머리를 말고도 여전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롤을 마는 원장님을 보며 새삼스레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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