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ㅇㄱㅁ Oct 05. 2021

갭투자, 너무 쉽게 생각했다

2년 뒤가 걱정돼 벌써 잠이 오지 않는다


딱히 좌우명이 있거나, 주술을 믿진 않지만 언젠가부터 맹신하는 하나의 문장이 있으니 바로 '말하는 대로'. 유느님의 명곡이기도 하지. 아직 서른을 조금 넘긴 나이지만, 살다 보니 정말 인생은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마음먹은 대로 흐르는 것만 같다. 그걸 안 순간 나도 '말하는 대로'라는 이 문장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 뒤로 꿈꾸는 일이나 바라는 일은 꼭 친한 이들에게 말로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나름의 다짐이자 의지의 표현이랄까. 


그래서 집을 사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또다시 입을 털었다. 말하다 보면 이뤄질 테니까. "나 집 사고 싶은데 좋은 동네 아는 데 있어?" "너희 이모 부동산 하시지? 나 집 좀 사려고 하는데 소개시켜줄 수 있어?"라며 온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녔다. 그리고 정말 나는 '말하는 대로' 집을 사게 됐다. 소문낸 만큼 온 동네 축하도 듬뿍 받았다. 


마냥 행복에 겨워하고 있던 그 순간, 친우 한 명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근데, 2년 뒤에 세입자 나가면 네가 전세금을 줘야 하는 거야?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야. 네가 묻기 전엔 나도 별 생각이 없었어. 어쩌지?   


그렇다. 그 집은 완전한 내 집이 아니었다. 세입자 덕분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아슬아슬한 명의다. 지금 세입자는 청약이 붙어서 2년 뒤에는 나간다고 했었으니, 2년 뒤에는 빼박 새로 세입자를 구해야만 하는 처지다. 젠장 말이 쉽지. 기존 세입자가 나가는 날짜에 맞춰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서 돈을 바꿔치기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혹여나! 아주아주 혹시나!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정말 그 어마어마한 돈을 나와 공동 명의자인 박이 함께 만들어내야 하는데?! 오.마.이.갓! 나만 망하면 그래도 다행인데(?) 세입자의 미래까지 달렸으니 이건 문제여도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아찔하다 못해 손에서 땀이 났다. 곧바로 폭풍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갭투자 전세 만기' '갭투자 전세 대출' '전세보증반환대출' '퇴거자금대출' '주택담보대출' 여기저기 쑤셔보니 무슨 방법이 있긴 한 거 같은데 대출금이 얼마나 나올지도 모르고, 2년 뒤에 대출이 나오긴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아무리 검색하고 알아봐도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쥐꼬리 월급을 최대한 모으는 것뿐.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2년. 월급은 한정적이고 모을 수 있는 금액은 더 한정적이니 밤마다 잠이 안 왔다. 


결국 난 이직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돈 나올 구멍은 월급밖에 없는데 이 월급으로는 도저히 가닥이 안 잡히니 월급을 더 주는 회사를 찾기로 했다. 이력서도 쓰고, 포트폴리오도 새로 만들고, AI면접이니 게임 검사니 하는 것도 봤다. 어쩌다 내가 2년밖에 다니지 않은 회사에서 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올해 안에 이직은 가능할까? 암담하다. 갭투자, 남들 다 한다길래 무턱대고 나도 해봤는데 너무 쉽게 봤다. 덕분에 요즘 얼굴에 근심 걱정이 한가득이다. 다음 소문을 낼 때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마음을 다하여 문장을 짜봐야겠다. 예를 들면 "마흔 전에는 서울에 갭투자가 아닌 내가 살 집을 살 거야"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눈을 좀 낮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