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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ㅇㄱㅁ Sep 23. 2021

눈을 좀 낮춰

20년 지기 친구란 게 말했다


영이는 꼬꼬마 초딩 시절부터 함께해온 나의 20년 지기다.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많이 남자친구를 만나본 나의 자랑이자, 가장 사랑에 진심인 친구다. 평소 연애나 남자 얘기를 잘 하지 않는 나도 영이와 함께면 항상 사랑 이야기를 한다. 


"연애가 너무 하고 싶다."

"그럼 눈을 좀 낮춰. 세상에 100점짜리 남자가 어딨어?"

"내가 왜 눈을 낮춰야 해? 그리고 나도 100점이 아닌데 내가 무슨 100점짜리 남자를 찾아?"


괜히 말했다. 사랑이 고프다는 내 말에 눈이나 낮추라니. 서운하다 못해 화가 났다. 영이 눈에는 내가 사람을 재고 따져서 사랑을 못하는 사람 정도로 보였나 싶어 서글펐다. 왜 영이는 내가 눈이 높다고 생각했을까. 그렇다면 눈은 어떻게 낮추는 걸까. 사람이 좋을 때 난 밀당 따위 하지 않고 "네가 좋다" 말했다가 보기 좋게 차이는 그런 사람이었는데, 왜 영이에게 내 사랑은 그리도 못나게 보였을까 마음이 쓰였다.


내가 좋아하면 그가, 그가 좋아하면 내가. 항상 나의 타이밍은 좋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는 일도 적었다. 잘생겼다고, 돈이 많다고, 날 좋아해준다고 해서 나는 그들이 좋아지지 않았다. 그게 눈이 높은 거라면 난 확실히 눈이 높다. 그리고 여전히 난 눈을 낮춰 잘생겼거나, 돈이 많거나,  날 좋아한다고 해서 남자를 만나고 싶지는 않다. 사람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도, 사랑을 하게 되는 속도도 다 다른 거니까. 


요즘 따라 주변에 결혼 소식이 많다. 사랑 끝이 결혼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여러 고비와 위기를 함께 넘기다 결국엔 결혼을 하게 된 그들이 항상 부럽고,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내가 나는 매번 안타깝다. 그리고 솔로의 삶이 길어질수록 내 뜻과 달리 내가 비혼의 삶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점점 무게가 실리는 것도 슬프다. 영이 말대로 내 사랑의 눈을 낮출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서글픈 일이니 차라리 난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중이다. 회사 명함 없이도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서브 프로젝트로 나의 역량을 키우고, 이리 뜯기고 저리 뜯기면서도 악착같이 모은 내 돈으로 날 위해 보금자리를 만들고,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내 주변인을 더 소중히 대하며 관계를 더 돈독히 다져간다. 


그래도, 오늘도 난 변함없이 사랑이 하고 싶다. 영이 코를 납작하게 해줄 내 사랑을 찾고 싶다. 이번 추석 보름달엔 더 정성껏 소원을 빌었다. 제발 올해엔 남자친구 좀 사귀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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