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3 작성
홍성군 홍동면에 사회적자본이 심긴 것은 약 50년 전. 그 유명한 신민회의 뜻을 이은 사람들이 학교를 세우고, 학용품 협동조합, 서점 등 다양한 협동조합들을 만들며 사회적자본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세대가 지나면서 홍성군 홍동면은 사회적경제가 보편타당한 우리나라의 유일한 지역이 됐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변화라는라는 것은 한 세대가 걸리는 일이라는 거다. 부모세대가 자신들의 노력으로 도서관을 짓고, 그 안에서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다면 자녀세대는 자연스럽게 부모들의 행동을 따라 하게 되고, 그때야 비로소 새로운 문화가 정착된다.
이는 우리가 좋아하는 유럽의 사례와 일치한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데 몇 백 년이 걸렸고, 자본주의 속에서 사회적 책임이 싹트는데 백 년이 걸렸다. 협동조합이 등장하고 성공하기까지 최소 두 세대에 걸친 몇십 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람인만큼, 사회가 바뀌려면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 사람이 쉽게 바뀌나. 사람의 생각이란 건 한번 단단해지고 나면 변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변화시키려면 오랜 세월에 걸쳐 수 없이 많은 자기 성찰과 공부, 폭넓은 경험이 필요하다. 이마저도 매우 소수의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일. 대부분은 청년시절의 생각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렇게 천천히 바뀐 세대가 사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녀 교육을 하고 사회적인 활동을 하면 자녀 세대는 부모보다 조금 더 빨리, 많이 변하고, 부모 세대가 주류에서 물러났을 때 그 변화가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만약 한 세대가 지나는데 약 20-30년이 걸린다고 치면, 사회가 바뀌는데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렇듯 사회라는 것은 매우 천천히 변화한다.
여기서 한국의 문제가 등장한다. 한국 사람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는 너무 커서, 대부분의 사회적경제 활동가들도 자신들의 활동, 교육, 사업으로 세상이 확확 바뀌길 원한다. 정부 또한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보이는 사업들을 할 때 최대한 빨리빨리 큰 성과를 얻어내길 원한다.
내가 하고 있는 도시재생 희망지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희망지 사업이란 도시재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주민들이 도시재생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대비할 시간을 주는 사업이다. 여기서 나오는 능력이란 행정과 도시재생에 대한 이해, 주민공동체 활동 경험, 마을 문제가 뭔지 파악하고 본질적인 해결책 논의할 수 있는 문제해결능력 등이다.
시는 주민들의 활동을 보면서 이런 항목들을 평가하고, 괜찮다고 생각되는 지역에 50~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본격적인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다. 그리고 활동기간은 약 6개월이다. 말이 안 된다.
얼마나 관이, 사회가 사회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지 제대로 보여주는 사업이다. 앞서 말했듯, 사람이 변하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사업은 주민들이 6개월 만에 도시재생을 이해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익히고, 관과 협력하여 일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볼 때 6개월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도시재생에 대해 아주 약간 이해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관이 일하는 법을 인식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이것도 활동가가 피땀 흘려 일하고, 활동가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의해주는 의욕 넘치는 주민들이 붙어서 지역민들을 동원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6개월 동안 할 수 있는 건 "도시재생을 한다, 그런데 뭔지는 모르겠다.", "마을 문제를 관이 아니라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어떻게 해?", "아니 공무원들이 일을 해야지 이걸 우리가 왜 하는 거야?" 정도일 것이고, 서로 간의 약간의 안면 트임과 활동가와의 관계 정도가 겨우 쌓일 수 있을만한 기간이다.
민간사업이라고 다를 건 없고, 대부분이 이 모양이다. 그런데도 모두가 변화를 빠르게 일으키고 싶어 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싶어 한다. 사회가 자신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것을 답답해하고 미개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산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돌을 쪼개는 것은 태풍이 아니다. 작은 틈에 뿌리박고 오랜 세월을 버텨낸 나무뿌리다. 좋은 권투선수를 만드는 것은 세계 챔피언의 기술 특강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하는 기초체력훈련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무릎을 치는 순간의 깨달음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겪는 사소한 새로움들의 반복이다.
나를 포함한 이 시대의 청년들이 우리 다음 세대에 올바른 사회를 물려주려면, 힘들겠지만 멀리 볼 수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별다른 변화가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더라도, 시간과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다음 세대가 그 열매를 거두게 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4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며, 20년 전에 비해 훨씬 나아진 세상이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활동이 20년 후의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이다. 답이 없는 것 같지만 조금만 더 버티면서, 지금 눈앞의 활동에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