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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가 다녀갔다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갔다가 찬물에 손을 급하게 씻고 가게로 들어갔을 때, 그녀는 흠칫 놀랐다. 문이 열리는 기척도 없었는데 한 남자가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세 시를 넘기는 그 시각에 그는 첫 손님이었다. 그리고 손에는 이미 동네책방 에디션으로 나온 황정은의 새 소설이 들려있었다. 그가 책을 살피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러나 자신이 책방 주인임을 알리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평범하지만 가장 정확한 인사말로.

 그는 얼굴을 돌려 인사 대신 소리 없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랜만에 받아 본 눈인사다.

 흰 낯빛에 새카만 머리카락를 가진 이십대 초반의 청년. 큰 키에 까만 바지, 까만 코트를 입고, 까만 에코백을 둘러맨 뒷모습이 흡사 새로 만들어진 연필 같아 보였다. 반듯한 모습으로 그는 보던 책들을 다시 살폈다. 손님의 고요한 움직임에 그녀는 다소 당황해 일부러 물을 끓이고, 음악 소리를 키웠다. 다섯 평 작은 공간에 손님과 주인이 서로를 의식하며 적막에 싸여있다. 그녀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상황이다. 책은 구경하지도 않으면서 자기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가는 손님도 힘들지만, 이렇게 아무 소음 없이 책만 살피는 손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네 주민이 아닌 듯 보이는 그에게 적막 깨기용으로 그녀는 물었다.

“저희 책방 알고 오셨어요?”

“출판사 블로그에 여기가 적혀 있어서......”

그제서야 손님은 책에서 눈길을 떼고 의자 모서리에 잠시 앉았다. 마주 보고 앉은 그 청년의 흰 얼굴엔 땀이 맺혀 있었다. 추위에만 민감한 탓에 난방을 너무 세게 한 모양이었다.

 봄바람이 일렁이는 얼굴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희고 갸름한 얼굴, 단정한 눈동자, 긴 속눈썹, 수줍어하는 표정, 말을 아끼는 태도.

 그녀에게 인지된 보통 청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상 하나가 그녀 바로 앞에 있었다. 황정은을 좋아하느냐, 책으로 나오기 전 연작 소설을 이미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열권이나 입고했다, 소설을 많이 읽느냐. 그녀의 물음에 그는 청년은 짧게 말했다.

“시를 읽어요.”

그 대답에 책방에 시집이 많지 않은 것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그래도 유명한 시집들은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관두었다. 시를 읽는 청년이었다. 어쩌면 쓰고 있는 지도 모를. 그의 형상이 시처럼 알 듯 모를 듯 읽히는 듯 했다.

 다시 일어서 책을 살피던 그는 올해 처음 만들어진 문학 평론 잡지를 골랐다. 그리고 계산을 하려는지 지갑을 열어 살폈다. 소설과 잡지, 두 권 가격만큼 현금이 안 되는지 미안한 듯 카드를 내밀었다. 희고 가늘고 기다란 손이 내게 다가왔다. 손마저 시 같구나.

 어깨에 맨 에코백에 책을 넣고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손님은 좀 오나요?”

“손님이 첫 손님이에요. 어쩌면 마지막 손님일 수도 있고......”

그는 다시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가게 밖을 나섰다.

 황정은의 신간 소설을 들이길 잘했구나 생각하다, 출판사에서 나온 책 굿즈를 챙겨주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굿즈를 들고 가게 밖 길가까지 나가보았지만 청년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책방에 다시 들를까.

 이상한 나라에 잠시 다녀온 듯한 기분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의 시집 칸을 살폈다.

 윤동주, 백석, 이상. 먼 시대의 시인들이 그리고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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