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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엽 Oct 02. 2024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한 소회

뭐가 그리 급한디...

과연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은 효과가 있을까? 아니 가능할까?


멀티태스킹이라는 개념만이 아닌 '실제'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이메일을 작성하고 주식차트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다. 화상통화를 하면서 SNS를 할 수 있고, 게임을 하면서 채팅을 나눌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 수많은 연구 결과는 '멀티태스킹은 당신의 업무의 질과 효율을 낮춘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업무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향상하고 업무에 대한 흥미와 동기부여를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멀티태스킹을 수행할 때 실제로는 한 가지 일에서 다른 일로 빠르게 전환할 뿐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멀티태스킹을 할 때 뇌의 활동은 모노태스킹 때 보다 느려지고 둔해진다고 말한다. 

더 극단적으로 '우리의 뇌는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MIT신경과학자 Earl Miller)

여러분의 실제생활을 성찰해 보아도 멀티태스킹의 효과는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을 회상할 수 있다. 많은 내용을 담은 인터넷 강의나 영상을 시청하면서, 책을 보거나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린 경험이 다들 있지 않나?

인터넷 영상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책의 내용이나 휴대폰에도 집중할 수 없음은 수이 판단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서 얻은 답변도 마찬가지다. 

디지털로 하는 학습은 재미있어?라는 물음에는 상당수가 재미있다고 응답한다. 

디지털로 하는 학습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아?라는 물음에는 대다수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한다. 

휙휙휙~ 빨리 감기나 화면넘기기로 진도를 빼거나, 형성평가나 진단평가는 대충 찍어서 맞추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마치 필자가 인터넷 연수나 강의를 들을 때와 흡사한 모습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학습이나 업무를 하는 그런 표면적인 모습뿐 아니라 마음도 흡사할 것이다. 어쨌든 빨리 하나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한 클릭, 나의 마음은 분산되어 집중이 도무지 되지 않는 그런 생각 말이다. 

진도는 다 나갔지만 개운하지가 않다. 무엇을 했는지 의심이 들고 확신이 서지 않아 불안감이 스며든다. 결국 한 시간 동안 나는 수많은 클릭과 타자로 진도는 다 나갔지만 뇌 속에 정교하게 자리 잡은 새로움은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이 '재미는 있는데 공부에 별로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아요'라고 학생들이 답하는 것과 상통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디지털 콘텐츠나,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학습은 수행의 정확도나 학습자의 학습여부를 공학적만 판단할 수 있다는. 출석을 했는지, 과제를 얼마나 수행했는지, 과제의 수행에서도 주관식 응답에 대한 평가는 절대로 불가하다. 미리 설정된 키워드가 포함되어 있는지 그것도 '서답형'의 평가만이 겨우 가능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ox형, 아니면 객관식이다. 객관식형 문제를 대규모로 학교에 도입했다고 알려진 프레드릭 캘리(Frederick J.Kelly). 훗날 그는 객관식 문제는 학교에서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요구와 변화의 양상에 따라 서술형 평가는 오히려 강조되고 늘어나는 추세인데 디지털 학습은 오히려 그 반대다. AI교과서라 이런 문제점을 해소할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대한민국이 아닌 그 어떤 우수한 디지털 콘텐츠를 접해봐도 학생들의 서술이나 그림, 도식 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정해진 답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학생들의 서술을 하나의 그림처럼 떠서 매칭시킨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를 다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멀티태스킹의 비효과성이다. 멀티태스킹은 효율성은 있으나 효과성은 리버스 한 수치를 보인다. 그리고 했던 일을 다시 반복해야 하기에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학습은 공학적이고 지능적이지만 그뿐이다. 한 인간의 사고를 인식하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매칭만 하고 수치적으로 측정만 할 뿐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학습은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학생들의 인지를 자극하는 발문,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시범, 교실이라는 신성한 곳에서 교사에게서 풍겨오는 그 학습에 대한 뉘앙스... 느낌, 정서... 이런 것을 차가운 기계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또 하나. 종이의 그 부드러운 감촉. 물론 교과서는 차가운 책에 가깝지만... 딱딱한 액정 스크린에 내려앉은 먼지처럼 사라지는 지식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을 견디고 일구어져 합의 내려진 지식이 활자로 하나하나 새겨진 종이책. 그 하얀 종이 위에 사각사각 써 내려가는 나의 생각에서 뻗어 나오는 상징들. 그것을 우리는 '학문을 한다'라고 표현한다. 

스마트기기에 손가락으로 휙휙 넘겨가며, 금방 날아갈 전자파를 '쪼일 때 학문을 한다'라고 말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유럽의 상당국가가 다시 종이교과서로 돌아가고, 어린 학습자에게 디지털 콘텐츠나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학습을 법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이 정도면 충분히 빠른데 무엇이 그리 급해서 학교에 그 차가운 기계와 숫자로만 된 데이터를 내리 앉히려 하는 걸까?

철학이 없는 행위는 결국 후회와 실패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한 더 많은 논의와 시물레이션, 그리고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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