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농촌을 살리는 법
"기적 아닌 날은 없다"는 2007년 전남 영광군 묘량면에서 시작한 농촌형 마을복지 거점인 여민동락공동체를 10년간 이어가며 겪었던 일들과 만났던 사람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2019년에 취직을 하여 읍에서 살게 되었을때, 나에게 떠오른 시골의 삶은 영화 리틀포레스트였다.
다정한 이웃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자연, 그리고 팍팍한 도시와는 다른 시골의 여유로움을 기대하며 내려간 시골의 삶이란 어려움으로 가득했다.
시골에 살지만 농사는 짓지 않기 때문에 주민들과 어울릴 수 없었고, 오히려 '내 고향을 망치러 온 외지인'들로 보는 눈빛이 가득했다. 동료들과도 이렇게 지방에 기관하나 세운다고 해서 소도시가 살아나냐며 다소 회의적인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진정 농촌과 지방이 살아나기 위해 어떤 공동체를 꾸려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으로 친해진 세 부부가 묘량면에 내려와 지역사회에 뿌리내리며 생활공동체이자 일터공동체인 여민동락공동체를 만들어갔다. 초기에는 농촌 문화와 정서를 알지 못해 실수하기도 하고 편견과 오해가 쌓이기도 했지만 10년이 지나며 농촌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공동체를 일궈나갔는지 소개한다.
10원짜리 늙은 자판기는 이래저래 자기 식대로 손님을 맞이하기도 하고, 제끼기도 하면서 수명을 연장해 가는 중이다. 빼놓을 수 없는 단골 손님들이 제법 있다. 새벽 여섯 시쯤 되면 간혹 여민동락 자판기 앞은 손님들로 분주하다. 인근 공사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승합차에서 우르르 내려 차 한잔에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길거리 찻집이기도 하다. 대형 물류차 운전사 분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p60.
여민동락 설립때 부터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10원 자판기'를 보며 제3의 장소에서 읽은 메인 스트리트의 음료 판매대가 떠올랐다. 남녀노소 자연스레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서 중요한 역할은 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부분이 많았다. 10원 자판기에 종이컵 환경 부담금 명목의 10원을 넣으면 차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율무차를 즐기는 동네 꼬마들 부터 40대 청년들과 밭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할머니들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다. 누구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고 잔돈 부족으로 돌려받지 못한 돈이나, 너무 많이 생겨 모금함에 넣는 동전들로 나눔의 미덕을 실현할 수 있어 인상깊은 부분이었다.
우리 동네에 있는 카페를 떠올리면 각자 일행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 10원 자판기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떠올려 보니 외지인을 제외한 동네 사람들 끼리는 오랜 만에 봤다고 인사를 나누기도, 테이블을 건너 대화를 나누기도 하는 장소 였다. 기본적으로 동네사람을 알지 못하니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10원 자판기 앞이라도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도시 생활과 비교하면 가게 주인분들과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잦다. 무슨 일을 하는지 집은 어디인지 원래 고향은 어딘지 나이는 몇이고 결혼은 했는지, 이제는 익숙해진 호구조사 과정은 필수이다. 도시에서는 묻지 않는 것이 예의인 질문들도 시골에서는 거침없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 섞여 공동체가 되기 위해 조금 더 마음을 연다면 나의 신상을 파악하고 무해함을 확인한 주인분을 통해 다른 주민과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나누며 연결되기도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뿌리가 튼튼하면 당연히 꽃은 핀다 했다. 동락점빵을 세우고 자리를 잡게 한 건 여민동락이지만, 이를 키우고 살려가는 힘은 주민에게서 나온다. 협동조합으로의 전환은 동락점빵을 여민동락의 소유에서 마을의 공유로바꾸는 걸 의미한다. 그게 협동조합 성장의 옳은 방향이자 바른 길이다. p 109.
면 소재지의 구멍가게가 문을 닫으며 주민들은 읍내로 나가지 않으면 생필품을 구매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여민동락은 노인복지센터 옆에 4평짜리 점빵을 짓고 자연마을 42곳을 돌아다닐 탑차도 마련해 '동락점빵'을 운영했다. 동락점빵은 단순히 물건만 파는 장터가 아니라 집집이 주민들의 살림을 살피고 안부를 확인하는 곳이다.
이 또한 제 3의장소에서 소개한 메인스트리트와 비슷한 특징을 보였다. 장소 자체의 목적 뿐 아니라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다양한 목적에 맞춰 교류의 장을 제공하고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다질 수 있다. 손에 힘이 없어 지난주에 산 사이다 뚜껑을 열지 못한 어르신을 돕기도, 식사를 하지 못할정도로 건강이 힘들어져 검정콩두유를 찾는 어르신을 주의깊은 눈으로 지켜보는 것도 동락점빵이 하는 일이다. 손해도 없지만 큰 이익도 없는 마을기업으로 안착한 동락점빵은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해 수익은 마을기금으로 환원되고 주민의 힘으로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어낼 수 있게 되었다.
작가는 '마을에 아픈사람이 많이 없어 요양 급여를 못 받으니 살림이 어렵지 않냐'는 이야기를 듣고 사회산업의 본질과 말단이 뒤집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복지다운 복지일텐데 오히려 아픈 사람이 많아야 지원을 받고 시설이 유지되는 구조에 회의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여민동락 할매손'이라는 공동체 기업을 세웠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재배한 모싯잎으로 송편을 빚어 파는데 초기에는 크기가 제각각인 떡 때문에 민원도 받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손으로 직접 만들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모양이 같냐며 공장제조의 의혹을 받을만큼 공정이 체계화 되었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아무리 일을 잘하신다고 해도, 협동조합은 하루 온종일 노동하면 안 된다. 정규 직장처럼 공장에 갇혀 일만 하게 되면 더더욱 안되다.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건강상 안 되기도 하지만, 농민들에게는 적어도 적당하게 자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어엿한 시간과 근력을 배려 해야한다. 또한 마을복지센터인 경로당에서 사람들과 벗할 수 있도록 해야하고, 마을 대소사에도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p 82.
여민동락 할매손은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도 일상생활과 기존 경제활동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느슨함과 여유가 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관계를 파괴하지 않고 지나치게 바쁘지 않으며 돈에 구속되지 않게 하는 공동체 중심형 복지를 통해 마을의 기존 형태를 훼손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민동락은 농민 어르신들을 단순히 돌봄과 살핌의 대상으로만 낙인찍는 것에 반대한다. 돌봄이 필요한 농민에겐 돌봄을, 그러나 수십 년 농사를 지어오신 농사 전문가이자 농사 문화재인 어르신들에겐 '문화재'에 걸맞는 예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p153.
꼭 필요한 곳에 복지 예산을 사용하기 위해 이러 저러한 기준으로 대상자를 구별하는 일이 많다. 소득 기준에 따라 금액을 지원 받고, 질병이나 부양자 유무에 따라 지원에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 나는 이러한 구분을 통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보다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제도라 생각했다. 그러나 작가는 이런 파편적 복지가 공동체의 고유한 기능과 관계를 해체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경계한다. 그래서 복지와 경제와 마을이 어떻게 만나 더불어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러한 고민이 생실 어르신 이야기에서 잘 느껴졌다. 아내가 치매에 걸렸지만 자식이 있어 제도적 혜택을 받기는 어렵고, 소액의 연금으로 기본 생활비와 약값을 충당하기 어려웠다. 여민동락에서는 이런 어르신에게 '텃밭 매니저'일자리를 제공했다. 2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논농사와 밭농사의 노하우를 알려주시는 농사 컨설턴트 역할이다. 밭을 살피고 철에 맞는 재배 작물을 결정하고비가오면 물길을 내 물 빼는 법을 알려주신다. 단순히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평생 해온 농사일을 나누고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공동체에서 여전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것이 공동체 중심형 복지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학교를 살리지 않으면 귀농귀촌도 어렵고 지역복지도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국가도 하지 못하는 일을 어찌 넘어설 것인가. 여민동락공동체가 있는 묘량면에 유일하게 남은 학교, 묘량중앙초등학교는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질 판이었다. 결국 활동의 궤도를 전면 수정했다. 최우선 과제로 '학교 살리기'를 결정했다. 이판사판 주민들과 함께 '작은 학교 살리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p202.
여민동락 공동체는 학교가 있어야 마을이 살고, 마을이 살아야 농촌이 산다는 생각으로 학교 통폐합 정책을 이겨낼 방안을 찾았다. 주민자치조직 학교발전위원회를 발족하고 자체 통학차를 운행하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주말체험학교를 진행하였다. 주민들의 회비로 학교 아이들의 방과 후 학원비를 지원해 마을 공동체가 함께 아이들에게 무상 적성교육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귀농귀촌지원센터'와 '빈집정보센터'를 열어 아이를 데리고 가족이 함께 귀농귀촌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결과 초등학생 12명 유치원생 3명이던 시골학교가 학생수 62명 유치원생 21명으로 살아났다고 한다. 학생이 늘어나니 학교에 실내체육관도 짓게 되어 이는 결국 마을 사람들이 다같이 누릴 수 있는 공공시설이 되었다. 교육청에서도 외면한 문제를 마을사람들이 함께 해결하기위해 협력하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낸 과정이 감탄스러웠다.
마을에서 지역으로의 확장, 쉽지 않은 여정이다. 뜻이 좋은 분들이 늘어나야 가능한 일이다. 전사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게 아니라, 머뭇머뭇 왔다가 은은하게 스며드는 식구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p248.
기존 주민들에게 복지를 제공하는 것도 공동체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지속 가능한 농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고 정착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고 느낀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이 주거 일 것이다. 내가 사는 곳도 부동산에서는 밭과 논, 임야를 거래하는 곳이지 집은 모두 군청 홈페이지에서 직접 계약을 진행해야한다. 그래서 처음 발령을 받으면 어떻게 집을 구해야 할지 막막하고, 월세는 그야말로 주인 마음대로인 경우가 많았다. 여민동락에서는 '빈집정보센터'를 통해 마을의 비어있는 집을 파악하여 귀촌하는 사람의 경제 상황과 원하는 주거형태에 맞춰 소개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가 살아나고 인구가 늘며 집 구하기가 어려워 졌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땅값도 함께 올라 정착에 드는 비용이 많이 늘어나는 문제점이 있다. 주거 문제는 공동체의 성장과 마을의 번영에 따라오는 단점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귀농귀촌한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자란 후 그대로 농촌 공동체에 정착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여민동락의 품에서 자란 아이 조차도 공동체를 벗어나 도시에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자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귀농귀촌을 하는 청년들, 특히 젊은 아가씨들은 결혼의 타겟이 되기도 한다. 귀농한 청년 혹은 기존의 주민과의 소개로 농촌에서 가정을 꾸리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외지인들의 정착을 위해 군 내의 젊은이들의 만남의 장을 개최하기도 했다(결과는 이러한 자리가 늘 그렇듯 남녀 할것 없이 각자 동성 친구들만 사귀고 돌아왔다.). 주위에서 온 가족이 함께 이주하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면 초등학교 입학전의 어린 아이들을 맡길 곳이 적당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소아과가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다는 안전상의 문제가 가장 컸다. 병원은 어쩔 수 없지만, 돌봄의 문제는 공동체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2017년에 나온 책이라 2022년인 지금도 여민동락공동체가 잘 유지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카페에는 여전히 많은 활동들이 올라오고 있었고, 2021년 12월에는 전라남도 ‘2021 좋은이웃 밝은동네’ 시상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상 지속가능성과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공동체 연금 또는 우리식의 공제조합”도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농촌의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문제 이지만 여민 동락은 공동체의 힘으로 느리지만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