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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렁 Jun 03. 2022

언제나 열려있는 마을회관

영양의 제 3의 장소를 찾아서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도시들


  영양군은 경상북도 동북부 태백산맥 끝자락에 위치하며, 전체 면적의 85.4%가 임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산간 오지 지역으로, 4차선 도로가 없는 전국 유일의 지자체이기도 하다. 인구수는 1만6천명이며, 울릉군 다음으로 인구수가 가장 적고, 인구 밀도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다.  

  지역 인구의 대부분이 고령자이며, 인구밀도가 낮아 마을단위로 모여 살고있다.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논과 밭에 흩어져 일을 하며 식당이나 가게의 규모도 작아서 대부분 1~2명 혹은 가족 단위로 일을 한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은 고립이라는 문제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문제를 공동체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제1의 장소인 집과 제2의 장소인 회사와는 달리 '비공식적인 공공생활'을 위해 필수적인 곳을 '제3의 장소'라 한다. 이곳은 중립지대에 존재하며 수평적이고 수수하며 언제나 열려있다. 단골손님이 반갑게 맞이하며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일상의 진지함을 던지고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 곳이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소멸 위기에 가장 가까운 영양군의 제3의 장소를 찾아가며 소멸도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종합복지센터



영양군종합복지센터(출처: 네이버지도)

  제3의 장소와 그곳의 공공적인 역할에 대해 생각했을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종합복지센터'였다. 영양군 영양군종합자원봉사 센터는 15~10년간 이어져온 활동부터 올해 새롭게 시작한 활동까지 다양한 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목도리 뜨기, 양말목 공예 등 일반 봉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활동부터 붓글씨, 사진, 도배, 장판, 미용 등 개인의 기술을 활용한 봉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봉사단에서는 관내 마을을 선정하여 방문하고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진행하며 따로따로 고립된 지역과 소통하고자 한다. 또한 지역 내 청소년부터 65세 이상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활동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지역 축제에 참여하여 학생들과 솜사탕 나눠주기 부스를 운영하거나 윷을 만들어 마을회관에 나누어드리는 등 재미와 놀이를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반찬만들기 봉사모습

  그러나 반찬만들기 봉사에 참가하여 센터 사무국장님과 봉사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봉사센터는 제3의 장소로서의 기능을 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 면의 '생활개선회'와 '바르게 살기 운동', 부녀회 등 20여개 단체 4500여명의 회원이 등록되어 그중 10~15% 정도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봉사활동은 한번에 한 단체에서만 참여하여 여러 주민이 섞이지 못했다.

 코로나 등 현안에 대처하기도 하고 짜장면 배달하기 처럼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나서서 아이디어를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봉사 프로그램은 센터 직원들이 구성하는 것으로 공동체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형태는 아니었다. 그리고 직원들이 각 봉사단을 관리하는 형태로 수평적이지 않았다.

  봉사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오래 지내온 주민 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귀촌한 분들이었다. 영양은 길게는 100년간 이웃인 집들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동네인 만큼 새로 이주한 사람들과 기존 주민의 교류가 어려워 봉사 활동을 통해 친목을 다진다고 하였다. 귀농귀촌인들은 봉사센터에서 기존 주민들과 섞이기 보다는 그들간의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있었다.

  또한 직원들의 출퇴근시간에만 열려있어 센터 앞의 벤치와 공터 외에는 자유롭게 사람들이 모이기 어렵다는 것이 제3의 장소가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였다. 다함께 논의 하거나 봉사활동에 참여신청을 하는 것은 대부분 네이버 밴드를 통해 이루어져 실제 공간에서 만나는 일은 적었다. 그렇다면 영양의 진짜 제3의 장소는 어디일까?



마을회관


  눈에 띄는 활동을 하는 곳 보다는 제3의 장소가 갖는 특징에 좀 더 초점을 맞춰 동네를 살펴보니 곳곳에 숨어있던 마을회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동부1리와 서부2리에 있는 마을회관에 방문하여 주민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마을회관이 갖는 제3의 장소로서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중립지대와 수평성

 마을회관은 모두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이다. 원할때와서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고, 동장이나 마을회장님이 관리하기는 하지만 특별히 주인의 역할을 맡는 사람도 없다, 목적없이 와서 편하게 교류할 수 있는 곳이었다. 또한 고향이 영양이거나 영양으로 시집, 장가를 와 오래 산 주민들이 대부분이라 오래 알고지낸 사이로 서로를 친척이나 친구처럼 대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형님'이라 칭하기는 했지만 위아래 없이 서로를 편하게 대했는데, 대부분 70~80대인데 이 나이 먹고 굳이 위아래를 나누겠냐고 말씀하셨다.

높고 낮음 없이 편하게 오고가는 대화


대화와 장난스러운 분위기

   대화는 제3의 장소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마을회관은 신발을 벗으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 되는 곳이었다. 또한 재미와 오락이 있는 곳이다. 주로 윷놀이, 고스톱, 노래 듣기 등을 한다고 하셨다. 윷놀이와 고스톱은 대화를 활성화 하는 게임이고 음악 또한 주로 트로트로 대화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부르고 이야기 주제로 삼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대화에도 심각한 내용은 없었다. 날이 더워 고추 따기가 어렵다거나 커피가 맛있다, 쑥떡이 잘 됐다 등 일상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놀이를 할때도 판돈은 100원이나 10원으로 하셨는데, 이런 놀이에 돈 크게 걸면 싸움난다며 웃으셨다.

제 3의 장소에는 놀이가 있다.



접근성과 편의

  영양군종합복지센터는 영양읍에 위치해 있고 봉사때마다 각 면과 리를 찾아가는 것과 달리 마을회관은 집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곳에 있다. 네이버 지도에 검색했을 때 영양읍 안에만 25개 정도의 마을회관이 있었다. 문도 거의 항상 열려있기 때문에 해 없는 아침에는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난 후 혹은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모인다고 하셨다. 서부 2리 마을회관에서는 2시 정도부터 놀이가 시작된다고는 하셨지만 엄격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야기 도중에 두 분이 더 오셨고 자연스럽게 의자에 앉아서 패를 돌리셨다. 동부 1리에서도 둥그렇게 앉아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시다 한 분이 도착하자 자연스럽게 윷놀이 판을 꺼내 놀이를 시작하셨다. 언제와도 항상 아는 사람이 있으니 거리낌 없이 혼자서도 갈 수 있고 공동체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영양읍 곳곳에 퍼져있는 마을회관들(네이버지도 캡쳐)


단골

  제3의 장소가 가진 특징중 하나가 단골과 같은 공적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동부 1리 마을회관에서 질문에 대답을 잘 해주시는 분이 계셨는데 알고보니 마을 회관 관리를 맡고계신분이셨다. 혼자 온 외부인과 신뢰를 구축하고 기존 주민들에게 소개해 주는 것이 단골의 역할 중 하나라고 한다. 나도 처음 마을 회관에 들어가 음료수를 나누어 드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니 '사야하는건 아니지?'하고 경계의 눈빛을 받았다. 하지만 마을 대표 할머니와 이야기 하며 대학원생임을 밝히고, '저기 대천리에 있는 센터에서 일한다, ㅇㅇ건재 사장님 집에서 산다' 하고 정보를 공유하니 바로 경계가 허무셨다. 그리고 그분이 뒤에 오신 다른 분들께 나를 소개해주며 학생 공부한다니까 대답 잘 해주라고 일러주셨다.



소박한 외관

 제3의 장소의 또다른 특징중 하나는 소박한 외관이다. 수수한 겉모습으로 눈에 잘 띄지 않으며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편한 옷차림으로 갈 수 있는 곳이다. 마을회관은 주변 주택과 비슷한 높이에 비슷한 외관을 하고 있어 마을 경관에서 튀지 않고 잘 어울려 있었다. 안에 계신 어르신들 또한 차려입은 사람 없이 평상복 차림이었다.  내부 모습도 일반 가정집과 같이 거실과 부엌이 있고 방이 2개 있는 구조를 하고 있어 아는 사람의 집에 놀러온 기분이 들었다. 또한 두 마을회관 모두 입구에는 종이박스가 모여있고 오토바이, 자전거, 의자 등이 놓여있어 주민들의 일상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는 마을 회관

또 하나의 집과 같은 편안함

  또 하나의 집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 또한 제3의 장소의 특징인데, 마을회관도 이러한 모습을 보였다. 일 끝나면 다들 모여 잠 자기 전까지 함께 있는 곳으로 사람들이 뿌리내리게 하는 곳이다. 또한 다 같이 마을 회관을 자신의 공간으로 여기며 나와 같은 방문자가 오면 커피를 내어주고 떡을 주시며 손님을 맞이 했다.  

  특히 많은 여성들은 아내와 어머니와 같은 역할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아늑하게 시간을 보낼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제 3의 장소가 집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도 조금 더 마음이 편하고 기력을 되찾는 공간이 되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제3의 장소는 동성끼리 모이는 곳이 많은데 마을회관에서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공간이 분리되어있었다. 할머니들께 왜 할아버지들이랑은 안노시냐고 여쭤보니 굳이 이유가 필요하냐는 표정으로 '뭐 굳이.. 같이 안놀아' 라고 말씀하셨다.



마을회관의 역할


  마을회관이 제3의 장소로 작동하며 공공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사회의 그물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타인이 곧 환경이며, 대인관계의 질이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반영한다. (중략)
예전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거나 멀리 있는 사람들과 왕래할 수 없어진 노인들은 주변에서 일하거나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새로이 관심을 갖는다. 노인은 인간관계를 기대할 수 없고, 노력없이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젊은 사람들보다 모임이나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더 명확하고 절실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가 고립감이라는 악마로부터 자신을 구출하여 평온함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마을회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노인돌봄이라고 느꼈다. 마을회관에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챙기며 함께 머무르기도 했고 오래 얼굴을 비추지 않는 사람을 걱정하고 안부를 전하기도 하는 복지의 공간이었다. 각자의 논밭에서 일 하거나 거동이 불편해 일도 나갈 수 없어 교류하기가 어려운 노인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어울릴 수 있다. 또한 멍하니 티비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 대화를 하고 놀이를 하며 건강을 유지할 수도 있다.

 그밖에 봉사나 다른 활동을 같이 하시진 않냐고 여쭈었더니 거창하게 봉사랄건 하지 않지만 서로 도울 일을 돕는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명절에는 같이 음식을 해먹기도 하신다고 했다. 마을회관이 혼자서는 할 수 없거나 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일들을 공동체 안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소라는 것이 잘 느껴졌다.

 그리고 군에서 운영하는 노인 일자리로 아침에 쓰레기를 주으러 다니시는 '노란쪼끼' 분들이 집합하는 장소로 쓰인다고 한다. 마을회관은 접근성이 좋고 상징성이 있어 마을의 구심점이 되어주는 곳이었다.



진정한 '마을 공동체'가 되려면


  마을회관을 방문하며 가장 아쉬웠던 점은 다양한 연령대가 어울리기는 힘들다는 점이었다. 마을회관은 주로 이 동네에서 오래 거주한 어르신들이 모이고, 경로당도 같이 하고 있어 젊은 사람들은 함께 섞이기 어려웠다. 시골의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일터도 다르고 퇴근 후에 방문하는 장소도 다르다. 젊은 사람들은 안동처럼 더 큰 도시에 집이 있어 영양주민과는 따로 어울리지 않고 떠나기도 하고, 이미 친한 자신들의 무리끼리 식당이나 카페를 방문한다. 마을회관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이 단조롭고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어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지 않으니 새로운 활동도 생기지 않고, 지역의 변화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동력있게 움직일 사람도 부족했다.

영양군 커뮤니티센터 조감도

영양에서는 주민이 지역의 주체가 되는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LH의 지원으로 커뮤니티센터를 지었다. 완공 후 산나물 반찬가게, 공유 공구실, 북카페, 마을사랑방, 장난감 도서관 등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시설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넓고 큰 건물이 읍내에 들어서면 인프라를 기다렸던 젊은 사람들이 많이 방문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동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은 이러한 커뮤니티센터에서 주민들과 어울리기 어렵다.

  영양군의 또 다른 사업인 양조장 리모델링이나 오래된 보건소를 영양객주로 리모델링하여 호스텔로 활용하는 방안 또한 외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는 있으나 일하러 온 젊은이를 공동체에 녹여내기는 역부족이다. 큰 돈을 들여 지역에 랜드마크를 세우는 것도 좋지만 장기적으로 인구를 늘리고 사람들이 정착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을회관과 같은 제3의 장소의 개발을 통해 연령대 별로, 지역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을 연결할 수 있는 작은 공간들을 만드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레이 올든버그(2019). 제 3의 장소: 작은 카페, 서점, 동네 술집까지 삶을 떠받치는 어울림의 장소를 복원하기.(김보영,역)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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