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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Jun 27. 2021

재난과 치유

팬데믹을 주제로 한 동시대적 관점

https://artlecture.com/article/2353


곧 있으면 팬데믹이 사그라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게 되는 지금, 많은 전시들은 그에 대해 말하기를 멈춘 듯하다. 이는 팬데믹이 우리의 일상으로 버젓이 자리 잡았다는 반증임과 동시에 그만큼 많은 전시(기관)들이 해당 주제를 더는 하나의 이슈처럼 시의성에 기대어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 익숙해져서일까, 아니면 아직도 적응하지 못해서일까. 약 1년 6개월 간 팬데믹이 양산시킨 수많은 전시 종류에 비하면 전염병 자체를 주제로 다루는 전시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오랜만에 팬데믹을 타이틀로 등장시킨 국립현대미술관의 《재난과 치유》는 ‘현재진행형’의 팬데믹을 주제로 이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파고든다. ‘징후와 증상’, ‘집콕, 홀로 같이 살기’, ‘숫자와 거리’, ‘여기의 밖, 그곳의 안’,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의 다섯 파트로 구성된 전시는 그동안 우리가 못 본 체하고 살아왔던 전염병의 예고편으로부터 출발해 이제는 현실이 되어버린 그것의 여러 증상들을 진단하고 고찰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재난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또한 언젠가는 다시 반복되고 말 역사의 일부분에 불과할까. 전시는 명확한 정답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시를 통해 촉발된 질문들은 단순한 질문으로 끝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김지아나, COVIDUS-기울어진 계단, 2021




1. 징후와 증상


코로나 19를 비롯한 감염병은 생물학적이고 보건의료적인 사건인 동시에 사회, 정치, 경제적 현상이다. 경제의 발전, 급속한 산업화 및 도시화는 사람들 간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자연의 위계질서를 생성하고 자연환경을 ‘파괴’했다. ‘파괴’라는 다소 공격적인 표현에 공감하지 못할지라도 인간의 활동량 증가에 따라 자연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징후와 증상’은 신종 감염병이 출현하게 된 배경과 인간을 향한 자연의 끊임없는 경고, 그리고 예측/통제 불가의 팬데믹 상황 아래 놓인 인간의 모습 등 코로나 19 이후 발생한 현상들을 기록하고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인다.




요제프 보이스, 곤경의 일부, 1985, 삼성미술관 소장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의 <곤경의 일부>(1985)는 1985년 런던 안소니 도레이 화랑에서 전시되었던 <곤경>의 일부를 개별 작품으로 제작한 것이다. 실제 작가 자신이 2차 세계대전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했을 당시 그를 구했던 타타르 유목민이 사용했던 펠트를 이용한 작업으로 인간 생명에 대한 보호와 회복을 상징한다. 이는 코로나 19로 인해 더욱 복잡해진 인간-자연의 상호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한편, 인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생명권력(정치)의 끝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이진주, 사각 死角, 2020



대형 삼각틀로 이루어진 이진주의 <사각 死角>(2020)은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 즉 ‘사각지대’에 위치한 비가시적인 풍경과 그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이질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옆으로 확장되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비약적·비논리적이나 매우 정교하고 세밀하게 묘사된 사회의 파편들이다. 흰색 벽들 사이로 의사가 막 태어난 아기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때리는 모습, 곳곳에 놓인 외래종 식물들, 바닥에 떨어진 종교적 도상, 발끝으로 디디고 서서 벽에 난 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아이, 곤충 표본, 죽은 비둘기 등 다양한 오브제들이 존재하는 A면과 어지럽게 뒤엉킨 흰색 광목천들과 깊이를 알 수 없는 끈적한 느낌의 탁한 적갈색 물, 핏빛 속살을 드러낸 고무나무 등이 그려진 B면, 검은색의 어두운 배경 한가운데 눈을 감은 채 앉아 있는 한 여인과 미성숙한 여아가 그려진 C면은 불안과 혼돈, 안정이 반복되는 현실의 모습을 생경한 방식으로 그려내며 삶의 구석진 자리에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게 존재하는 진실의 구조를 생각해보게 한다.



박영균, 연결, 2021



  

이외에도 박영균은 감염병이 뒤덮은 현대 도시 속의 삶의 모습을 회화로 재현했고, 오원배는 메마른 붓질로 그린 인물들의 제스처와 분절된 관(pipe)를 통해 사회적 난제를 암시했으며, 성능경은 ‘손 씻기’라는 단순하고 기본적인 행위를 통해 여전히 종식되지 않은 전염병의 시대를 표현했다. 이들의 작업은 개인의 목표에 도취된 인간이 그동안 간과해 왔던 가장 기본적인 것들로의 회귀를 표방하며 일상의 중요성, 그리고 일상을 가능케 하는 ‘공존(公存)’의 가치를 되새긴다.





2. 집콕홀로 같이 살기


외출을 자체하고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는 의미의 ‘집콕.’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겨난 이후 자발적, 혹은 사회적 요구에 의해 ‘집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해 전염병으로부터 살아남겠다는 취지로 시작되었으나, 이제는 그에 더해 불필요한 인간관계를 덜어내고 자기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한다는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 한편, 이러한 선택적 격리가 만든 물리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서로 그 어느 때보다 긴밀하게 연결된다. 팬데믹 상황이 우리가 모두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일깨웠듯, 인간의 ‘함께 하고자’하는 욕망은 실제 공간을 넘어 가상의 공간에서도 지속된다. 화상채팅, 게임, SNS, 메타버스 등의 디지털 플랫폼에서 전개되는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킹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사회와 개인의 관계가 다원화/파편화되며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상실되고 불안정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들을 회화의 형식으로 재구성 해 온 써니킴의 <푸른 시간(Blue Hour)>(2019)과 <이동(Migration)>(2021)은 불가피한 이동과 격리가 계속되는 상황 속 작가의 내면에 존재하는 가까운 과거의 시간을 어렴풋이 재현한다사실과 허구그리고 기억과 망각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불투명한 풍경들은 현실을 가장한 허구의 모습으로 심리적 입체감을 획득한다.



안드레아 지젤, 무제(사회 안에서 살 것인가 바깥에서 살 것인가?, 2013




2013년에 제작된 안드레아 지텔의 <무제(Untitled)>(2013)는 마치 지금의 상황을 예견이라도 했던 듯 사회 안에서 살 것인가 바깥에서 살 것인가?(To live within or without society?)”라는 직설적인 물음을 던진다이러한 질문은 사회와 인간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 짓기 어려운 오늘날 개인의 선택에 따른 자주적 관계 형성의 문제로 비춰지는 한편 안이든 밖이든’ 간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는 측면에서는 무효하고 무용한 것이 되고 만다.



차재민의 <미궁과 크로마키(2013)>는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려진 손과 분절된 단위로 일하기에 접촉교류가 불가능한 이들의 노동 형태를 조명한다케이블이 연결된 텔레비전모니터가 곧 지지직하는 노이즈로 가득 차더니 카메라가 아주 천천히 모니터 후면에 연결된 케이블을 비춘다케이블을 그대로 따라 가면 창문을 거쳐 얼기설기 연결된 전봇대가 보인다케이블 노동자는 사다리를 타고 그 전봇대에 올라 마치 곡예를 하듯 안전띠 하나에 자신의 몸을 의지한 채 일을 시작한다이는 현장에서의 노동을 그대로 재연한 영상의 도입부다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노동자가 쉴 새 없이 골목과 골목을 쫓아 둘둘 말린 케이블을 늘어놓고크로마키를 따기 위한 초록색 화면 위에서 아무런 대상도 없이 손 노동을 하기도 한다이는 동작은 동일하지만 노동가치가 거세된 제스쳐로 노동을 흉내내는 일종의 퍼포먼스다작가는 이를 통해 육체적 노동을 가리는 추상화된 노동을 벗겨내는 동시에 자본주의 체제 아래 철저히 분리되어 온 노동의 본질을 재발견한다나이가 비대면 시대에 접촉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이들의 고역을 담담하게 묘사하며 노동의 불평등 문제를 상기시킨다.




3. 숫자와 거리



해당 파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즉석에서 숫자 변화를 확인하고 계산하는 것은 보통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징후이다.”라는 파올로 조르다노의 말로 시작한다. 비록 감각할 수는 없지만, 숫자는 때론 그러한 대상들보다 명료하고 직관적으로 사태를 보여준다. 특히나 초침을 다투는 팬데믹 상황에서 숫자는 보이는 것 이상으로 훨씬 많은 정보와 의미를 내포한다.



이지원, 팬데믹 다이어그램, 2021



이지원(아키타입)의 <팬데믹 다이어그램(The Unequal Pandemic)>(2021)은 팬데믹 기간 동안 축적된 다양한 통계자료와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그래픽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열 개의 패널과 웹사이트로 구성된 이 작품은 여성 고용추이, 플랫폼 노동자 노동가입 현황, 콜센터 좌석 배치도, 서울지역 아동학대 월평균 현황 등의 다이어그램을 통해 사회적 불평등, 차별과 혐오 그리고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계층의 삶과 사회적 취약구조 깊숙이 침투된 불평등과 오류들을 드러낸다.




미야지마 타츠오, 카운터 갭, 1989-2019



미야지마 타츠오의 <카운터 갭(Counter Gap)>(1989-2019)은 시간이라는 무형의 개념을 눈에 보이는 ‘시간’으로 시각화하여 전달한다.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개념 아래 존재하는 LED의 디지털 숫자들은 랜덤한 속도로 사라지기도 하고 생겨나기도 한다. 이는 팬데믹이 만들어낸 격리와 거리두기가 오히려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고를 일깨우듯 모든 생명은 연결 되어 있다는 작가의 유기적 사고를 담고 있다.



최태윤, 마법 같은 수의 세계, 2021




최태윤은 그라피티, 드로잉, 설치, 프린트 작업이 결합된 벽화 작업을 선보인다. 작가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장 정확한 지표가 되어주는 숫자와 그것으로 이루어진 수의 세계에 주목한다. 현재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은 ‘숫자’로 상징되는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무조건 더 빠르고 크고 좋은 기술이 전부가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지속가능한지가 중요하다. 이성적, 논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숫자가 사실은 굉장히 자연적인 알고리즘에 기반해 있다는 사실은 수의 본질을 정의 내리려는 작업에 의해 밝혀진다.




4. 여기의 밖, 그곳의 안


코로나 19는 세계를 멈추게 했다. 그로부터 1년이 훌쩍 넘었으나 도시, 공항, 공원, 광장, 미술관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비대면의 삶은 물리적, 시간적 공간의 경계와 간극을 흐리게 하고 일상의 공간을 다르게 사유하게 한다. ‘여기의 밖, 그 곳의 안’에서는 질리언 웨어링, 서도호, 이혜인, 칸디다 회퍼 등이 참여하여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와 의미, 그리고 역할 변화를 보여준다.



칸디다 회퍼는 오랜 시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도서관, 극장, 혹은 박물관 같은 문화적 공공 장소의 내부를 유의미한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의 작품 <바젤 미술관 Ⅳ>에 등장하는 전시 공간과 그곳에 놓인 예수의 시신(을 그린 그림)은 살아 있는 생명이 부재하는 공공장소의 모습을 이중적으로 보여주며 프레임 안과 밖을 교차시킨다.



질리언 웨어링, 당신의 관점, 2013-현재, 단채널 비디오




질리언 웨어링의 <당신의 관점(Your Views)>는 오픈콜 프로젝트로 2013년부터 시작되었다. 팬데믹과 관계없이 시작된 이 작업은 풍경을 표현함에 있어 특정된 하나의 장면을 보여주는 전통기법이 아니라 전 세계에 분포한 이들이 창문을 통해 바라보는 각기 다른 풍경을 수집하고 축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초국가적인 팬데믹으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락다운이 진행되는 가운데 어떠한 스펙터클도 존재하지 않지만, 각자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잔잔한 일상의 풍경이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서도호, ScaledBehaviour, 2021



서도호의 <ScaledBehaviour_runOn(2021)>은 건축적 모델링 프로그램의 스크립팅 언어를 이용해 제작되었다. 제작에 사용된 프로그램은 개미의 움직임이나 건축물 내부에 지어진 거미집의 형상을 참조하며 디지털 모형의 윤곽선을 만들어 내도록 지시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작업은 시각적으로 마치 혈관 속을 흐르는 혈액의 흐름, 혹은 바이러스가 발현하는 형태를 연상시키며 팬데믹 시대의 심리상태와 결합된다. 이는 집이라는 사적 공간을 포함하여 우리를 둘러싼 물리적, 건축적 공간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신체적 움직임을 형상화 한 것으로 내부구조의 연결과 단절, 그리고 변환을 반영한다.




5.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


‘유보된 일상, 막간에서 사유하기’는 인류가 코로나 19로 인해 일상이 멈춰버린 ‘막간’에 머무는 동안 우리가 인간 이외의 생명체에게 오랜 시간 동안 ‘가해 온’ 행위를 되돌아보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사유’하게 한다. 작가들은 ‘인간으로서’ 그들의 삶을 성찰하며, ‘인간이기에’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과 지금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인식체계 마련을 함께 고민한다.



이배, 불로부터(Issu du feu), 2021



5,6 전시실을 잇는 복도 공간에는 이배의 <불로부터(Issu du feu)>(2021)가 자리한다. 90년대 초 프랑스로 이주하여 유럽을 주 무대로 30여 년 간 활동해 온 이배는 다양한 숯을 이용하여 조각, 설치, 그리고 회화작품을 제작해 왔다. 오랫동안 우리 생활에 에너지원으로 사용된 숯은 전통적으로 정화, 영원, 청결 등을 상징하며 작가는 이처럼 다층적 의미를 가진 재료를 통해 자신의 정신적 원천을 찾았다. 죽음에서 삶으로, 소멸에서 생성으로의 순환을 상징하는 이배의 <불로부터(Issu du feu)>(2021)는 천연 소재인 숯 조각을 통해 팬데믹의 그늘을 벗어난 회복과 치유의 시간을 은유한다.


재독화가 노은님은 <나뭇잎 배 타는 사람들(1987)>과 <내 짐은 내 날개다(1989)>를 통해 자연과 삶에 대한 세계관을 보여준다. 원시적이며 단순화 된 형태의 사람과 자연, 이 둘이 합쳐지거나 양쪽의 경계를 오가는 특수한 형상은 인간과 그 외의 존재에 대해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작가의 경외적 표현의 산물이다.




허윤희, 빙하가 녹고 있다, 2021

 



허윤희는 공간의 대형 벽면에 사다리를 세워놓고 목탄으로 사라져 가는 빙하와 멸종되어 가는 식물의 이미지를 오버랩한 벽화를 그렸다.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막간에서 인간이 더 많이 소유하고 누리려는 마음을 잠시 멈추고, 더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매일 산책길에서 보는 나뭇잎을 드로잉하는 ‘나뭇잎일기’로 주목 받아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에 의해 파괴되어 사라져가는 자연에 대해 고찰했다. 그는 빙하가 사라지면 동식물이 서식지를 잃고 동식물이 죽어가면 그 결과가 결국 인간에게 돌아오듯, 코로나 19 상황에서의 기후 위기와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종들을 보며 이러한 문제를 더는 외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드로잉 퍼포먼스로 그린 벽화는 지우기 퍼포먼스로 마무리되며 이는 빙하의 사라짐, 즉 소멸을 상징한다.


《재난과 치유》에 참여한 국내·외 작가 35명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재난의 상황에서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성찰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변화된 일상 가운데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지금의 시대를 기록적으로 담아낸 다양한 작품들은 난국 속에서도 예술로써 사회적 소통을 이루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이 노력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하다. 예술은 과학과 기술이 제공하는 기반을 넘어 그것에 빛을 비추고 방향을 제시한다. 구체적이고, 지속적이며, 가치 있는 방식으로, 또 직접 보고 느끼게 함으로써. 고립과 절망, 혼돈과 경계의 시대 예술이 전하는 진정한 연대와 사유에 다시 한번 귀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글 아트렉처 에디터_임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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