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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셔먼이 사용하는 매체는 ‘사진’이다. 버펄로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순수회화를 전공하던 시절, 사진 수업을 수강하면서 사진 작업으로 전환하게 되었다고 한다.(1) 초기의 사진 작업은 1977년부터 제작된 <Untitled Film Stills> 연작이다. 70여 장의 흑백 사진 속에서 셔먼은 사진을 찍는 작가이자 사진의 대상인 피사체로 등장하며, 영화 속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을 재현한다. 이 연작은 작가가 직접 모델로 나선다는 것에서 자화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과한 분장과 고도의 연출이 시도되었기 때문에 셔먼의 본체는 화면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관람자 역시 셔먼의 거짓된 존재를 알아채기 어려워졌다.(2) 즉 셔먼이 카메라 앞에서 모델로 등장하는 것은 맞지만, 화면을 구상하고 연출하는 ‘작가’로서 관객 앞에 서게 된 것이며, 이것이 카메라를 통해 구사하는 셔먼의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장르이다.
사진은 회화와 달리 카메라 렌즈라는 기계적인 눈을 거쳐 탄생하기 때문에 작업의 결과가 즉시적이다. 따라서 등장 초기에는 사진이 회화에 비해 예술적이지 않다며 사진의 미적 가치를 거부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와중에 매체 미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복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원본과 복제물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전통적 회화에서 원본에 부여되었던 예술작품의 아우라(Aura)가 붕괴된다는 것을 주요한 테제로 삼았다. 즉 기술복제 시대의 도래로 인해, 기술의 영역에서 사진과 영화의 등장이 곧 예술에서의 질적 변화로 이어졌다고 보고 변화된 예술의 개념을 지적한 것이다.
그렇지만 벤야민 이후에도 사진을 둘러싼 원본과 복제의 문제는 끊이질 않았다. 약 반세기가 흐른 후 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1970년대부터 사진에 관한 글을 지속적으로 기고하며 사진을 미술사의 계보 안에 위치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녀는 사진의 미학적 지위에 대해 고찰하는 글, 「사진과 모조성에 관한 소고」에서 원본과 복제의 구분을 통해 미학적 지위를 선점하려는 행위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몇몇 예술가를 소개한다. 크라우스는 이때 셔먼을 예시로 들어 그녀의 작업이 ‘차이’를 완벽하게 붕괴시키고 근본적으로 파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3) 또한 셔먼의 작업을 두고 이미 복제물인 대상들을 복제하는 행위라고 설명하는데, 말 그대로 이미 영화나 광고,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복제되어왔던 상투적인 대상들을 작가가 직접 모방함으로써 다시 복제하는 일련의 과정을 따른다는 것이다.
만일 이때, 셔먼이 스테레오타입의 여성을 모방하는 인물로 본인이 아닌 다른 모델을 등장시켰다면 어땠을까? 크라우스는 이 경우에 셔먼의 작업은 사진이라는 복제 기술이 낳은 대중문화의 폐해를 비판하는 패러디 작업으로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셔먼은 이와 달리 작업에서 객체인 동시에 주체이다. 따라서 원본과 복제로 설명할 수 있는 사진과 전통 예술(회화) ‘차이’는 논할 필요도 없이 붕괴된 것이고, 사진이 가지는 모조성은 비평의 대상이 아니라 셔먼 작업 행위의 주요한 축으로 기능하게 된다. 즉 독창적인 예술 개념을 건들면서도 자신의 작업 세계를 관철하기 위한 매체로 사진을 선택했다는 것으로, 셔먼의 작업을 논할 때 매체의 탐구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다시 벤야민의 논의로 돌아가서, 그는 영화에서는 화면이 개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큰 맥락 안에 연속적으로 제시되므로 필연적인 느낌을 준다고 지적하는데, 영화관에서 관객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해도 눈앞 스크린에 서사가 펼쳐진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벤야민이 처음 이러한 분석을 내놓은 후 반세기 동안 사람들은 이 기술복제 시대에 충분히 적응해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캡처한 듯한 셔먼의 사진을 보고 사람들은 그다음 장면에는 무엇이 나올지, 또는 그 화면을 둘러싼 서사는 어떻게 전개된 것인지 등을 궁금해하는 것이다. 이는 셔먼의 작업이 어떠한 일화적(narrative) 암시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작업에 담긴 이야기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셔먼의 작업에 담긴 내러티브는 페미니즘 미술사의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Untitled>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셔먼은 사진에 담긴 메시지를 텍스트로 직접 제시해주지 않는다. 대신 화면을 살펴보면 학생이나 주부처럼 평범한 활동을 하면서도 외모를 과도하게 가꾸는 여성 이미지가 등장한다. 따라서 셔먼은 작업을 통해 영화나 포르노, 광고에서 여성이 어떻게 재현되고 소비되는지 ‘젠더’의 문제를 탐구한다. 즉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상을 본인의 몸으로 재현하면서 이것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또 다른 작업인 ‘역사 초상’ 시리즈를 보면 셔먼은 명화 작품의 주인공으로도 나타난다. 광고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과도하게 치장하고 있는 여성 이미지가 등장하는데, 이를 통해 시대마다 여성에게 부여된 전형적인 스테레오타입이 있었고 과거의 미술 작품이 그것을 생산하는데 일조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셔먼은 작품에서 전혀 새로운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대중매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현된 인물로서의 여성상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분장을 시도할 뿐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셔먼은 필연적으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다. 따라서 모든 작업은 일종의 연극적 요소를 가지며, 셔먼 역시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작업이 시작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자신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종종 가발이 벗겨지거나 화장이 서툴게 된 모습을 화면에 그대로 드러내기도 한다. 이러한 조작된 인위성은 오히려 셔먼의 작업이 퍼포먼스임을 더욱 강조하는 장치가 된다.
자신의 신체를 사용한 퍼포먼스적 요소는 흔히 아브젝트 아트(Abject Art) 라고 불리는 문제의 작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셔먼은 1980년대와 90년대 작품에서 토사물과 절단된 몸 등 현실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혐오스러운’ 화면 표현을 시도했다. 특히 <Untitled #153>에서는 시체를 연기하게 되는데, 이 순간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화면에서 셔먼의 존재는 지워지는 대신 재현된 시체로서의 ‘몸’만 남게 된다. 드라마에 나온 사건을 재현하고 있는 장면이긴 하지만, 원본과 복제의 차이가 무의미해짐에 따라 그로테스크의 미학이 화면을 지배하는 것이다. 이렇듯 직접 신체를 통한 행위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그녀의 작업은 단순한 사진을 넘어서 하나의 퍼포먼스로 해석할 수 있다.
매체, 젠더, 몸이라는 개념어를 사용하여 셔먼의 작업을 논하면서, 작가의 본체는 화면에서 사라졌다고 밝혀보았다. 이렇게 셔먼은 사진에서 자신을 지운 채 재현된 여성 스테레오타입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하나의 신체(시체)로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존의 부재는, 그녀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다. 그녀가 같은 내용을 가지고도 관객의 눈앞에서 직접 퍼포먼스로 보여준다거나, 다른 모델을 내세워 사진 작업을 했다면 위와 같은 해석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파악된다. 즉 셔먼의 작업은 한 마디로 매체에 호소하여 퍼포먼스의 방법론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에 셔먼은 자신의 작업을 인스타그램에 주로 올린다. 이전 작품과 비슷하게 스스로 모델이 되어 자신이 아닌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분장은 포토샵으로 대신하며 작업의 무대는 SNS로 대체되었다. 그녀가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기술은 발전을 거듭해왔고 사진 작업의 가능성은 더욱 확장되었다. 그리고 셔먼은 이 같은 ‘기술 만능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하여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 시대를 잘 맞춰가는 아티스트는 재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여전히 매체, 젠더, 그리고 몸 사이를 변주하는 중이다. / 글.어윤지
(1) 이임수, 「신디 셔먼의 사진: 현존과 부재의 기표로서의 얼룩」,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47. 2017, p.173.
(2) 마이클 아처, 『1960년 이후의 현대미술』, 오진경 역, 시공아트, 2007, p.210.
(3) 로잘린드 크라우스,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최봉림 역, 궁리출판, 2003, pp.329~331.
<참고>
로잘린드 크라우스,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최봉림 역, 궁리출판, 2003.
마이클 아처, 1960년 이후의 현대미술, 오진경 역, 시공아트, 2007.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최성만 역, 도서출판 길, 2007.
이임수, 「신디 셔먼의 사진: 현존과 부재의 기표로서의 얼룩」,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47. 2017.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56490
글 아트렉처 에디터_어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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