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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Mar 18. 2022

웹툰 작가가 각 잡고 그림 그리면 생기는 일

귀귀개인전

웹툰 작가가 각 잡고 그림 그리면 생기는 일 | 아트렉처 (artlecture.com)

https://artlecture.com/article/2691



내 나이대의 남자 중에 귀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귀귀라는 이름을 모르더라도 주인공 ‘정열맨’으로 대표되는 웹툰 ‘열혈초등학교’는 당시 유행하던 엽기, 지금으로 말하면 병맛을 제대로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예측할 수 없는 전개, 무논리한 흐름, 과격하고 과장된 묘사를 그려온 귀귀가 회화라니. 누구라도 의외라고 생각했을 거다. 이전에도 웹툰을 전시회에 활용한 예시는 종종 있었지만 귀귀의 전시회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다. 바로 착각 때문이다. 우리는 때론 큰 착각을 하곤 한다. 그림체가 이상한 만화가, 특히 그중에서 더 가볍게 느껴지는 웹툰 작가는 제대로 된 그림을 못 그리겠지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선입견.


다행히 웹툰 작가들의 다양한 매체 진출로 그런 선입견은 이미 깨진 지 오래지만, 나에게 귀귀만큼은 그 선입견이 오래 박혀 있었다. 그리고 직접 본 그의 전시는 한 마디로 좋았다. 추억 보정이나 작가의 명성을 관계없이 회화와 자신의 웹툰을 연결하는 방식과 시도가 재밌었다.


웹툰을 전시에 활용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전시회를 체험장으로 만드는 것이다. 웹툰 속에만 존재하던 캐릭터를 입체화하고, 그들이 다니던 공간을 재현함으로써 관객에게 웹툰 속 경험을 제공하는 건 웹툰의 인지도만 있다면 가장 확실하게 흥행하면서도 재밌는 전시가 된다.



<귀귀, Still Waiting, 2022>



하지만 회화는 모험이다. 웹툰보다는 직관성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사람들이 귀귀에게서 전통 회화를 기대하진 않는다. 오히려 전통 회화를 했다면 관심조차 없었을 거다. 귀귀는 QR코드를 타고 들어가 웹툰을 감상하게 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본인의 회화 작품 앞에 있는 관람객을 본인 작품의 근간인 웹툰으로 회귀시키고 다시 회화 앞에 서게 하는 것, 귀귀의 전시회는 회화-웹툰-회화라는 삼단구조를 가진다. 보통 이런 삼단구조는 강한 설득력을 발휘하기 위해 정반합을 이용한다. 다만, 귀귀처럼 이미 알려진 창작물을 기반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는 적용하기 힘들다. ‘반’을 던지기엔 관람객도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귀귀, 공주를 구하러 간 기사, 2021>



귀귀의 전시회는 표면적으로는 나폴리탄 괴담이다. 특유의 뉘앙스가 전면에 드러나지만 그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기 힘들다. 가령 ‘새벽 3시, 경비실에 불이 켜져 있으면 곧장 집으로 돌아가세요’와 같은 것이다. 위의 문장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저 글을 읽는 사람은 함의를 따지기 시작한다. 왜 새벽 3시인가? 경비실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만약 집으로 가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위와 같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나폴리탄 괴담은 이미 곳곳에 만연해 있다. 그리고 귀귀의 전시는 전반적으로 이런 괴담의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낯선 귀귀의 회화가 전면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만 거기서 끝내는 게 아니라 웹툰을 통해 무지와 난해한 두려움, 혹은 생경함을 풀어주고 작품을 새롭게 보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QR코드 속 웹툰을 보지 않고 작품을 넘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전시의 첫 번째 작품이 <공주를 구하러 간 기사>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내 기준 가장 괴담과 가까운 작품이었다).



<귀귀, J. 십자곤을 벼리다, 2022>



위와 같은 삼단구조에도 귀귀의 전시는 직관적이다. 그 직관성 때문에 과격하며, 때로는 파괴적이기에 무질서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귀귀의 전시에서 직관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직관성은 전시에 혹시라도 남아 있을 이질감을 없애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귀귀, 지팡이를 주웠으니 내일 팔랍니다, 2021>



회화-웹툰-회화 순으로 작품을 관람하게 되는 이 구조를 나는 의도된 직관성이라 부르고 싶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이 의도된 직관성에 의한 것이라고 할 때 작가의 세계관은 단순히 회화나 웹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즉, 관람객이 회화에서 웹툰, 웹툰에서 다시 회화로 넘어왔을 때 작품은 하나의 일관된 질서를 가지게 된다. 귀귀의 세계관 속 인물들은 때로는 정의의 심판(J. 십자곤을 벼리다)을 때로는 기괴한 불편함(발레리노)을 근본적인 웃음(지팡이를 주웠으니 내일 팔랍니다)을 준다. 그들은 현실에서는 모두 돌아이 혹은 범죄자지만, 금기를 아슬아슬하게도 아니고 아득히 넘어버린 이 세계관에서 만큼은 모두 정상이다. 삼단구조와 의도된 직관성은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만든다.


귀귀의 전시는 내 선입견을 확실하게 없애줬다. 최근 이렇게 재밌게 봤던 전시가 있나 싶을 정도였다. 너무 춥지도 너무 덥지도 않은 지금, 딱 보러 가기 좋은 전시다.


귀귀 개인전 | 아트렉처 (artlecture.com)



글 아트렉처 에디터_쇼코는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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