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공동체 관점에서의 고민과 위로가 필요할 때
https://artlecture.com/article/2921
“JUST STOP OIL” 티셔츠를 입은 이들은 기후활동가입니다. 석유가 기후 위기를 초래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는 더 이상 새로운 석유, 가스를 생산하지 말아야 한다고 시위합니다. 최근 이들은 세계적 명화를 테러의 대상으로 일삼고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첫 타깃으로 케이크를 집어 던지고 장미꽃을 뿌렸습니다. 지난 10월에는 런던 내셔널갤러리 빈센트 반고흐의 <해바라기>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었습니다. 이어 마담투소 박물관의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밀랍 인형 얼굴에 초콜릿케이크를 던지고, 독일 바르베리니 미술관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에 으깬 감자를 투척했습니다. 다행히 모두 액자와 유리·아크릴 수지 등으로 보호되어 직접적인 손상을 입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N-C5N60u_M&feature=emb_title
그들은 예술작품을 사용하여 시위를 벌이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예술 작품을 보고 ‘이렇게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보호하고 싶다’고 반응하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사람들은 왜 화석 연료 산업이 지구와 사람들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들의 SNS에는 “기후 위기로 사회가 붕괴에 직면했을 때 예술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Activists of “Just Stop Oil” glue their hands to the wall after throwing soup at a van Gogh’s painting “Sunflowers” at the National Gallery in London, Britain October 14, 2022.
시위를 마주한 사람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문제의 담론을 시작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 ‘결론적으로 예술작품을 망가뜨리지 않았고 환경보호라는 대의를 지지한다”며 시위를 옹호하는 반면,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을 볼모로 하는 부적절한 시위”, “이런 행동은 기후변화와 재난을 설명하기에 역부족이다”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이 시위로 인해 국제적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환경과 무관한 작품 훼손 행위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국내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프로젝트 ‘예술 텃밭 레지던시-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해 탐구하고 막연한 거대 담론을 구체화하고 우리 삶 속에서 예술적 실천을 만들어내고자 만들어진 프로젝트입니다.
시각예술가 김보람의 <움직이는 숲 Moving a Forest>는 기후 위기로 미래를 위협받는 나무들을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위해 기획한 보드게임 형태의 퍼포먼스입니다. 게임에 참여한 사람은 정치가, 과학자, 사업가, NGO 단체장이 되어 모험에 도전합니다. 보드게임에서는 경제활동을 통해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최소화하여 나무의 뿌리를 연결하고 숲을 늘려가는 환경보호 시뮬레이션을 시도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hLO9v_dLK8&t=247s
김보람은 이 작업을 확장하여 관객 참여형 씨어터 게임 공연 <움직이는 숲 – 불타는 집>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관객은 환경단체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숲을 살리기 위해 연구하는 미래자원본부 소속 생태연구소에 잠입합니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숲을 폐쇄하고 탄소 흡수능력을 증가시키는 유전자 변형을 강행하는 미래자원본부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입니다. 앱에서 제시하는 스토리에 따라 미션을 수행하며 숲을 지키고, 마지막에는 내가 마음이 가는 나무의 유전자 데이터를 소장할 수 있습니다. 20분 동안 관객은 공연에 참여하여 친환경 소재로 만들어진 가상 나무의 감정을 살피고 관심을 기울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김보람이 “누구나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각자의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듯이 우리의 공통된 경험과 공유한 기억이 환경에 대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후 위기 속에 예술가는 질문을 던집니다. 예술이야말로 이 시대의 불확실한 것들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하고 다음을 질문할 수 있는 매개체입니다.
얼마 전, 도심 한복판에서 믿을 수 없는 또 한 번의 비극적인 참사가 일어났고 많은 젊은이의 목숨이 희생됐습니다. 1주일에 걸친 국가 애도 기간이 지났고, 대한민국은 아직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문화예술 행사는 애도의 취지에서 연기, 취소되고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거리두기 정책으로 오랜 시간 어둠의 동굴을 지나왔던 많은 예술가에게 또 한 번 강제 자숙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당장 11월 8일에 예정되어 있던 마이클 볼튼의 내한 공연이 내년으로 연기되었고, 3년 만에 열리는 EDM 음악 축제 ‘스트라이크 뮤직 페스티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각종 음악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11월의 전시, 시사회, 음원 발매도 모두 미루어 졌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전시도 홍보활동이 전면 중지된 상황입니다.
이에 일각에서는 ‘애도의 방식’에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예술 활동을 멈추는 것이 과연 진정한 애도인가?” 예술로서 다른 사람과 슬픔을 나누고 위로하는 것 역시 하나의 애도 방식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시각입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수반됩니다. 공연이나 행사를 취소할 때 생기는 손실은 오롯이 주최, 주관 측이 감당해야 하므로 심각한 타격을 입습니다. 연이은 취소 소식에 “중단만이 유일한 추모방식은 아니다”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술은 누군가에게는 필수로, 누군가에게는 선택으로 여겨집니다. 가장 소중한 가치이자, 그저 취미생활일 수 있습니다. 예술을 두고 엇갈리는 시선들을 뒤로 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위로 받고, 책의 문장을 통해 사색하며, 따뜻한 색채의 그림을 보며 감동했던 경험입니다. 함께 고민하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iolaqsWQVY
2017년 4월 16일, 콜드플레이 내한 공연 당시 밴드는 <Yellow> 노래를 열창하다가 중간에 갑자기 멈췄습니다. 바로 3년 전, 비극적인 세월호를 위한 노래라고 말하며 10초간 묵념할 것을, 그리고 기억할 것을 제안합니다. 객석을 가득 메우고 열광하던 관객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노란 물결이 일렁였습니다. 콜드플레이는 노란 리본을 착용하고 무대에 올랐으며, 침묵의 10초 동안 무대 뒤 대형 스크린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나란히 떠올랐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뉴욕타임즈의 1면을 할애했습니다. (좌측)사망 기사와 통지서를 수집하여 약 천 명의 명단을 작성했고 그들의 삶의 특징을 묘사하는 문구를 함께 기록했습니다. “테레사 엘로이(63, 뉴올리언스)는 정교한 핀과 코사지를 만드는데 정통하다” 평범한 삶을 살던 이들이 희생됐음을, 동시에 이 명단은 다름 아닌 우리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측)하나의 점에서 시작해서 50만 개가 될 때까지의 코로나 재앙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개별 점들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목숨을 잃은 하나의 생명을 나타내며 첫 번째 사망부터 1년간의 긴 두루마리를 시간순으로 늘어놓았습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911테러 추모 기념관은(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 테러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입니다. 희생자와 유가족을 기억하고 상실, 회복,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상)희생자 3,000명의 인물 사진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이어져 있고 가족, 친구, 동료가 남긴 기록들과 개인적 유물들이 놓여 친밀한 일상적 기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옛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부지에는 거대한 분수가 들어섰습니다. 1분에 물 1만1천400리터를 쏟아내는 초대형 분수에는 테러 희생자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습니다. 물이 부딪히는 웅장한 소리와 묵직한 공기에 침묵하게 됩니다.
예술은 우리가 살아내는 현재를 배경으로 창작됩니다. 예술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시대적 특성, 변화,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글이나 말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매개체로 전달합니다. 나름의 방법으로 투쟁하고, 고민하고, 위로합니다. 그 노랫말이, 그 몸짓이, 그 표현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예술은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하고, 다음을 질문할 수 있는 예술의 역할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참고 자료
- Just Stop Oil 참고 자료
https://www.frieze.com/article/interview-just-stop-oil
- 뉴욕타임즈 텍스트비주얼
https://www.nytimes.com/2020/05/23/reader-center/coronavirus-new-york-times-front-page.html
https://www.nytimes.com/2021/02/21/insider/covid-500k-front-page.html
- 기후번화 레지던시 http://artstutbatclimatechange.com/
- 911 테러 추모 기념관 (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 https://www.911memorial.org/
글 아트렉처 에디터_최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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