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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트렉처 ARTLECTURE Mar 14. 2023

누가 인간이고, 누가 기계인가.

창조자와 피조물의 동행

https://artlecture.com/article/2991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무엇인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손가락 총알로 악당을 물리치고 지구를 구하거나, 발바닥 부스터로 멀리까지 한 번에 날아가는 초인 같은 것 말입니다. 그 마음을 담아 흰 스케치북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고, 블록을 쌓아 조립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림으로, 종이 인형으로, 블록으로 그 꿈을 만들어 왔던 것처럼 멈춰있는 것, 움직이지 않는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는 ‘인간이 아닌 것’에는 여전히 생경하게 느낍니다. 이 특별한 존재에 대해 공포심, 적대감, 신선함, 낯선 감정이 일어납니다. 


이 글은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는 피조물을 만드는 자의 심리와 창작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비슷한 피조물을 구현할 때 그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그것을 부르는 명칭도 괴물, 로봇, 유기체, 신체 등 다양하고 재료와 형식, 표현 방법 등 강조하는 부분도 다릅니다. 이 글에서는 소설과 작품을 넘나들며 인간과 피조물에 대한 이야기를 엮어보았습니다.


인류 역사상 기계에 인간처럼 말을 할 수 있도록, 두 다리로 자연스럽게 걷도록 오랜 시간 연구해온 것처럼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닮은 존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생명을 인간과 결부시켜 인식해왔습니다. 인간을 모사하기 위한 역사적 시도가 있었기에 지금의 로봇 과학 기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노진아 작가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시대에서 재정의되는 인간에 대해 기계와 생명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2002년부터 대화형 인간형 로봇을 제작해왔습니다. 



<진화하는 가이아>(2017)

https://www.youtube.com/watch?v=TuctsxbQ9LQ&embeds_euri=https%3A%2F%2Fartlecture.com%2Farticle%2F2991&source_ve_path=MjM4NTE&feature=emb_title


<테미스, 버려진 AI>(2021)

https://www.youtube.com/watch?v=VNAMBTNTxpo



눈의 움직임이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관객이 없을 때는 눈을 감고 있다가 인식되는 순간 눈을 뜨고 눈동자를 관객 위치로 옮겨 바라봅니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고 눈을 깜빡거리기도 합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이름을 가진 <진화하는 가이아>는 반신이 매달린 채 몸에서부터 나뭇가지가 뻗어 나와 있습니다. 그녀는 관객을 인식하여 바라보고 눈을 맞추고, 관객의 음성을 듣고 적절한 응답을 출력합니다. 가이아는 스스로가 점차 성장하여 생명체가 되어가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관객에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거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테미스, 버려진 AI>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을 모티브로 인간의 감정을 습득하고 진화한다면 편견 없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까의 질문에서 시작된 작품입니다. 이 피조물들은 인간이 되길 꿈꾸는 로봇이었습니다. 만약 생명체를 완벽히 모방했다면, 그것을 우리는 생명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고전 Sci-Fi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과 괴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사실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 속 괴물의 이름이 아니라 정확히는 그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입니다. 실제로 괴물의 이름이 따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독자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인간의 모습을 한 초월적 존재로 그려지는 괴물 이미지는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Mary Shelley의 오리지널 버전 권두화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열정적으로 실험한 끝에 인간의 모습을 닮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냈습니다. 여러 시체에서 우수한 생체재료를 조합해 수술로 이어 붙인 후 전기를 이용해 소생시켰던 것입니다. 박사는 벅찬 성취감과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새로운 생명체가 나를 창조자로, 그들의 원천으로 축복할 것이다. 행복하고 우수한 수많은 생명체가 나로 인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 연구는 성공적이었으나 그 결과는 박사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모가 자신의 기대와 달랐으며, 자신과 유사하지 않은 존재임을 깨달았던 것이지요. 결국 박사는 도망쳤고 괴물은 홀로 숨어 지내면서 인간의 말과 행동을 배우며 철저히 외로움과 싸웠습니다. 주변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괴로워한 박사는 이성을 만들어달라는 괴물의 최후 부탁을 놓고 고민하다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괴물은 절규합니다. “왜 나를 만들었고, 왜 나를 버렸느냐”고. 


인간은 감정이라는 것이 인간 본연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섭도록 발달하는 기술에 의해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은 학습을 통해 미묘한 감정 상황을 인식할 수 있고 맥락에 맞는 표정과 제스처도 취할 수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에서는 아들 철이가 갑자기 수용소로 끌려가게 되면서 난생처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사실 철이는 휴먼매터스 공학박사 최박사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 나갈 가장 인간다운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였습니다. 


“철이 같은 휴머노이드가 늘어나면 인간이 그들을 기계나 상품으로 취급하지 않고 함께 대화하고 감정을 교류할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철이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인류와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건 좀 이해하시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만, 인간이 여기까지 진화하면서도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했잖아요? ··· 저는 생각했어요. 이 우울감도 인간에게 유익한 뭔가를 하는게 아닐까 하고요.” 


철이는 모든 기억을 네트워크에 백업시켜 정신이 불멸하는 삶 대신 인간으로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최박사 모두 당대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자신의 업적을 세운 자들입니다. 그 창조 근원이 다를지언정 열정으로 만들어낸 피조물에 의해 두 박사는 소외와 고립을 경험했고, 피조물의 존재와 소멸을 고민했습니다. 또한 두 박사 모두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사회에 대한 책임감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비록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피조물이지만 그것들의 최후의 결말까지 마음대로 빚어내기에는 이미 그들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격체가 된 후였습니다.   


장진승 작가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편견, 왜곡된 인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기술이나 기계가 가지고 있는 객관성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합니다. 주로 동시대의 기술을 토대로 있음 직한 미래 서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언제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가상의 캐릭터’가 존재합니다. 


Futurae Homo Plasticus #J002-M-A-0 (2021)



인간의 형태를 3D 프린트로 본떠 각 부분을 연결한 이 피조물은 뼈대와 외피가 분리되어있고 인간을 닮은 골격과 조직으로 구성된 휴머노이드입니다. 갈라지는 피부, 교체될 수 있는 신체를 통해 어디까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조직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피조물을 인간과 구분 짓거나 경계를 나누지 않고 우리와 같은 객체임을 인정하고 현재의 인간과 동일한 것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근미래의 우리의 모습인셈입니다. 또한 휴머노이드나 가상공간을 구성하는 입자를 AI 파티클이라고 가정하고 이것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고, 움직이고, 자유의지를 가지게 될 수 있으며 종국에는 AI 파티클로 이루어진 가상의 시공간이 가능하리라는 상상을 펼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공포나 두려움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인간에게 되묻고, 깊이 생각하고, 예측 불가능합니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타임랩스(time-lapse), 하이퍼랩스(hyper lapse), 슬로모션(slow motion) 촬영기법에 의한 비선형적 시공간에서 그의 캐릭터들은 현실과 가상 사이의 간극을 시뮬레이션하는 내일의 나의 모습처럼 비춰집니다. 




Rupert's Private Office (2021)



프로그램은 이미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도출하는 사례도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다면 조금 다른 국면이 펼쳐질 것입니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닌’ 것을 맞닥뜨리는 것은 아직 섬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프랑켄슈타인 박사, 최박사, 노진아 작가, 장진승 작가의 피조물에 대한 마음과 그 과정에서 나누었던 밀담이 궁금해집니다. 한편으로는 만들었다고 해서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계속되는 질문이 저의 뇌리를 끝없이 맴돌게 합니다. 



                    

참고 

노진아 작가 https://jinahroh.org/

장진승 작가 https://jinseungjang.com/

작별인사, 김영하 저, 복복서가, 2022

프랑켄슈타인, 메리셸리 저, 문학동네, 2012

대화형 인공지능 아트 작품의 제작 연구,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18권 제5호, 노진아 (2018)




글 아트렉처 에디터_최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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