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합격의 향연부터 '마지막상영'에서의 상영회까지 횡설수설 내맘대로
내 브런치의 첫 글이었어야 할 이 글을 이제야 쓴다.
2018년 상반기, 한창 정신을 놓았던 시기다. 다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교보문고에서 다시 일하게 되었지만, 오전 4시간 아르바이트라 많은 급여를 받진 못했고 동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깜냥 이상의 돈을 펑펑 쓰며 알콜에 매진했다. 매주 영화모임을 이끌기는 했지만, 모임 안에서의 인간관계는 갈수록 흔들려만 갔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일을 그만두고 청년일자리 인턴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인턴채용을 소개시켜준 알바 동료가 오히려 붙었던지라 자존감은 더 떨어졌다. 영화모임도 서서히(?) 진행하지 않게 되었다.불행 중 다행으로 추가합격으로 일하게 되었지만 당최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체계는 없었고, 그저 매일 매일 대학교를 가는 기분이었다. 나의 태도도 돈을 벌어가겠다는 정도였다.
그 와중 내부에 고발이 일어나 직장 분위기는 혼란스러워졌고 요즘은 이른바 갈라치기라고 하는 편가르기가 시작되었다. 섣불리 발대식에 나가서 선언문을 읽어버렸던 내 얼굴은 모자이크되어 뉴스에 나왔다. 실업급여고 나발이고 더 버티기가 힘든 상태였다. 그저 '어영부영'이 내 장기인줄로만 알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 새로운 활력을 찾아야만 했다. 결국엔 영화, 더 엄밀히 말하면 독립영화였다. 월차를 활용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최대한 즐겨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직장 내에 영화를 좋아하는 동료가 있어 더 동력이 붙었다. 2017년에도 했던 '시네마투게더'라는 프로그램도 또 하고 싶었고, 직장 동료에게도 소개시켜주었다. 이번에도 동료는 붙었지만, 나는 떨어진 상황이 반복되었지만 어김없이 '추가 합격' 했다. 2018년 나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 중의 하나는 '추가 합격'이라고 할 수 있겠다. 1순위는 박종환 배우였지만 3순위였던 고봉수 감독의 팀이 되었다. 사실 지금은 너무 쉽게 자가반복이 되는 것만 같은 그의 영화를 아주 좋아하진 않지만 당시에는 '델타 보이즈'를 본 지 얼마되지 않았던 터라 좋았다.
시네마투게더의 첫 모임 날, 첫 인상부터 뭔가 범상치않았던 사람이 있었다. 아주 한껏 넘겨올린 머리에 마른 얼굴형, 매서운 눈빛. 딱딱하고 정돈되어보이는 옷차림. 다크한 기운 때문에 '가까이하기는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는데, 감독님과 그 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로 보였던데다독립영화에서 일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뿜뿜이었다. 난 그저 쭈뼛쭈뼛했고, 그렇게 3일간의 시네마투게더 프로그램이 눈 깜짝할 새 지나갔다. 근데 왠걸? 그 사람이 다음 날 연락이 와서 따로 보자고 했다.
"내가 서울에서 대*만이라는 것을 하는데, 부산지부를 열어줬으면 좋겠다. 00님과 두루님 열정이 엄청나다. 정말 필요하다."라는 식의 말을 건넸다. 애초에 난 거절을 잘 못하기도 할 뿐더러, 그의 기운에도 조금 눌린 것도 있었고 더군다나 영화일을 하기 위해 도움이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어김없이 '어영부영' 수락했다. 00님과는 특별히 친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쩌다 그렇게 엮였고, 어쩌다 회의까지 하게 되었으며, 어쩌다 상영회 기획까지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명함이 너무 일찍 나와버렸다. 그럼에도 둘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아니었던지라 그 기획을 실행시키는 데에 있어서의 동력은 아주 옅었다. 명함이라도 돌려야 뭘 할 것 같은 마음에, 영화제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쉴새없이 명함을 건네기 시작했다. 나처럼 '어쩌다' 같이 하겠다고 한 것 같은 00님을 만나러도 찾아가고, 영화도 프로그래밍했다. 공간 추천도 받아 지금은 없는 마지막상영이라는 곳과 연이 닿았다. 난데없이 또래 애들이 상영회를 하겠다고 하면 많이 꺼릴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호의적이었다. 마침내 날짜를 정해 1월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과 함께 첫 상영회를 했다.
공간이 넓지도 않았고, 크게 홍보는 진행하지 않아 그 당시 주변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작은 상영회였다. 처음이라 백월 이미지같은 건 생각도 못했고, 상영 전 시간도 빠듯해서 상영본을 제대로 체크하지도 못했다. 급하게 준비한 대가로 상영 중 상영본이 쉴새없이 끊겼다. 끊겼다가, 멈췄다가, 다시 재생하고의 반복. 지인들이 아니었다면 다들 금방 뛰쳐나갔을 거다. 와주신 분들의 양해로 상영은 잘 끝이 났고, 상영 후에는 '대*만 부산지부'만의 이름과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간단히 묻는 시간을 가졌다. 이 컨셉없는 행사에 사실 무슨 의견이 나오겠는가. 숨막힐도록 어색했던 엉겁의 시간 후 기약없는 다음을 이야기하며 헤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문제가 생겼다.